오래 전에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는데, 이와 같은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말씀으로 드리려고 합니다. 그 도시에 아직은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소수의 교민들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민들이 수십 명으로 불어나자 한인모임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차에, 어느 한 분이 주축이 되어 매주 한차례, 평일저녁에 구역모임 형식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그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교민들 중, 90%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성당을 다니는 분들도, 절에 다니는 분들도,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분들도 상관하지 않고 모여, 기타를 치며 함께 찬송을 부르고, 성경공부도 하고, 친교를 하며 한국 사람들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비록 그 모임이 서툴기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신앙공동체로 발전해 갔습니다. 그러다가 모임을 이끌던 분이 불가피하게 한국으로 가면서 그 모임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때 그 도시에 유학으로 오셨던 목사님이 계신데 그 분을 모시고 구역모임에 나오던 분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창립 후, 한참동안 교회가 성장하여 매주일 50여명 이상의 교민들이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문제는 다름 아닌 목사님 문제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술을 마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는 한국에서 진보적인 교단에서 신학을 하시고, 도시산업선교 등의 현실 사회참여를 중요시하는 사역을 하셨던 분으로, 술에 대해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성경 어디에 술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느냐, 술 마시는 것이 뭐가 죄냐,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한인회 모임에 나가서 교민들과 함께 한잔, 성도들과 함께 전복 잡으러 가서 한잔, 자연스럽게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초신자들 이었습니다. 교회에 나가던 초신자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우리 목사님은 눈 높이 목회를 하는 분이야. 성도들과 어울릴 줄 아는 분이야. 멋진 분이야. 마음이 트인 분이야'라고 칭찬을 하지만,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목사나 성도나 별 다를 것 없고 오히려 목사님이 술도 더 잘 마시고, 말도 함부로 하는 모습을 보고, 시험이 들었습니다. 마음에 시험이 들자,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였습니다. 주일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교회가 싫어졌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교회로 가던 자동차의 기수를 돌려 믿음이 있다고 하는 분들은 개인 집에서 모였고, 믿음이 없는 분들은 골프장으로 산으로 들로 나아갔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50여명의 성도는 40명, 30명, 20명, 등으로 자꾸만 줄어갔습니다. 결국 거의 모든 성도들이 떠나고 교회의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도시의 교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과거 교회에 나갔던 사람들이 오히려 교회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저는 같은 목회자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들고 나서, 더 이상 할 말을 잃었습니다. 또 복음으로부터 멀어져 간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술이 죄냐, 아니냐'를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술' 자체를 '죄'라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또 성경 어디에도 '담배'자체를 '죄'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술 한 잔 마셨다고 해서, 담배 한 모금 피웠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술 한 잔 마셨다고, 담배 한 모금 피웠다고 해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술과 담배는 죄를 끌어 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이 열리면 다른 것이 물밀듯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술이 있으면 여흥이 있고 여흥 속에 방탕함이 나타나게 되고 절제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담배 피는 모습이 경건하게 보이십니까? 얼마나 칙칙한지 모릅니다. 냄새는 고사하고 지금 건강의 문제로 길거리로 쫓겨나는 것을 보십시오. 왜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자리에 있어야 됩니까? 너나 나나 다를 것이 없다. 이러한 모습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그 목사님은 '술 마시는 것은 죄가 아니다'고 생각해서 아무 거리낌 없이 술을 마셨습니다. 본인은 술 마신 것에 대해서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그러나 그 술로 인하여 다른 형제를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크나큰 범죄행위가 됩니다.

(롬 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우리는 서로서로를 세워주는 역할 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형제들 앞에 거침이 되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롬 14: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1) 형제를 망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건강한 교회를 세우려면 이유여야를 막론하고 주위에 있는 형제를 망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교회란 의미는 우리 교회 건물을 말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와 우리 각자 한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무튼지 우리교회와 우리 각자가 건강하려면 주위에 있는 형제를 망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형제를 실족케 하는 것은 엄청난 형벌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실을 (마18:6)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또 계속해서 (마18:7)에서 형제를 실족게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13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부딪칠 것'과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말라는 것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형제들이 넘어지지 않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형제에게 거침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피우는 것, 등의 모든 행동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행동으로 인하여 형제를 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또 20절 상반 절을 보겠습니다.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식 자체는 불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롬14:5)에서 살펴본 적이 있지만, 우리의 마음에 확정한대로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또한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고 마음껏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먹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든지, 다른 형제를 시험 들게 한다든지, 형제를 망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무너지게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돌이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8:13)에서 형제가 실족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결심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그는 다멕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자가 되었지만, 그는 고기 먹는 것에 절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9:19)에서 자신이 모든 자에게 자유하였지만, 오히려 모든 자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자신이 우상의 제물로 받쳐진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시험 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고기를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한사람이라도 구원의 길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고기를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먹는 것 때문에 형제를 실족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시는 것 때문에 형제를 망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을 중요시하는 곳이 아닙니다. 1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백성답게 올바른 행동을 하는 '의'와, 평화로운 상태인 '평강'과, 끊이지 않는 기쁨이 넘치는 '희락'을 중요시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목숨 걸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합니다.

먹기 위해서는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치 먹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 년 내내 성지 순례하듯 좋은 음식점만 찾아다니기며 먹는 것에 대단히 신경을 씁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뭘 먹을까? 녹즙이 좋다니까 녹즙 먹어야지, 없으면 난리가 납니다. 아니 그런 것도 제대로 준지를 못하냐고 이건 아니지요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또 뭘 먹을까? 그리곤 삼계탕이다 보신탕이다 보신음식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곤 저녁이 되면 한잔 마셔야겠는데, 어디 근사한데 없을까? 이게 불신자들의 모습입니다.

24시간 내내 먹는 것, 마시는 것만 묵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삶의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먹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먹는 문제에만 신경 써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형제들을 살리기 위해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의 믿음을 세우기 위해 의와 평강과 기쁨을 추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첫 번째로 공동체 안의 형제를 망하게 하지 말라, 형제에게 거침돌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소극적인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