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 다니는 자동차 차체에 몇 개의 스크래치(scratch)가 생겼습니다. 못이나 자동차 열쇠로 긁고 간 자국 같습니다. 만일 교회 주차장에서 그랬더라면 목사가 시험(?)들 뻔했는데, 다행히도 작은 쇼핑 몰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가끔 자동차 앞 부분에서 소리도 나던 참에 딜러를 찾아갔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담당자는 차를 맡기고 가면 일단 나중에 전화를 걸겠으며, 만일 수리 보장이 되는 것이면 알아서 고치겠지만, 혹 돈이 더 드는 것이면 승인 받고 고치겠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물론 검사비 45-90불은 수리 여부와 상관 없이 받는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2시간 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소리가 나는 원인을 찾아 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다니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분명 소리가 났던 것을 생각할 때, 그냥 가기에는 아쉬웠습니다. 몹시 아프다가도 병원에 와서 검진하면 언제 아팠냐는 듯 모든 수치가 정상일 때의 안심과 불안이 공존하는 그런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정비사와 동승하여 주행해 보자고 했습니다. 분명 내가 운전하는 동안에 그 소리가 다시 들릴 것 만 같아서였습니다.

어디든지 가보라는 남미 계 정비사의 주문대로 길을 나섰습니다. 주행 중에 마음대로 커브를 틀 수 없어 가까운 한인 교회 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좌우 핸들을 마음대로 꺾으며 소리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비사가 아직도 이 교회에 K 목사가 시무하냐고 물었습니다. 유학 시절 그 교회에서 협동 목사로 사역했던 나로서는 외국인 정비사가 교회를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는 나의 반문에 K목사는 자기 단골손님이라며 사실은 그 보다 이 교회에 다니는 R장로님을 잘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자동차 소리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즐거운 추억처럼 옛일을 풀어내는 정비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내용인즉은, 고등학교 때에 R장로님이 운영하던 정비소에서 세차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학교 졸업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기에게 정비를 배워보라고 친히 권유하여 그 후 장로님과 그 아들들의 정비소에서 기술과 실력을 익혔고 마침내 딜러에 와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자기 인생은 그 분 때문이라는 투였습니다. 평소에 존경하던 장로님이었던지라, 그 이름이 오가는 것이 반가웠고, 정비사가 아직도 고마워하며, 무척이나 존경하는 어투로 말하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딜러에 돌아 온 뒤, 정비사는 만일 소리가 나면 언제든지 다시 와서 자기를 찾으라고 대해주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뒤, 대금 지불 창구에 가서야, 검사비는 정비사의 몫이었는데, 그것을 전액 면제해주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R장로님이 모르는 시간에 R장로님 때문에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씨앗을 뿌렸을 뿐, 나중에 어디서 누가 거둘 줄은 몰랐을 것인데, 그 열매 중 일부를 제가 거두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면제 받은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 뿌린 씨앗과 그 열매 때문이었으며, 그 정비사가 내게 전해 준 R 장로님의 인격, 신앙,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알츠하이머 병으로 고생하고 계시지만, 어쩌면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R 장로님이 오래 전에 뿌린 동일한 열매들을 맛보며 즐거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궁금합니다. 훗날 누군가 나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에,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내 이름을 거론할까? ---- 자녀들에게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자랑스러운 신실한 이름이었으면 좋겠고, 한 번 뿌린 씨앗은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뿌린 씨앗 때문에 누군가 많은 사람들이 풍성한 기쁨의 열매를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눈물로 씨앗을 뿌릴지라도 말입니다.

그레이스 교회 원종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