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그레함 목사가 시애틀에서 진행되는 행사로 참가하였던 어느 날 밤에 있던 일입니다. 갑자기 마릴린 몬로 (Marilyn Monroe, 돌아오지 않는 강 "The River of No Return"등 여러 영화 여주연 영화 배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씨애틀은 서부에 있고 마릴린 몬로는 그때 동부에 있어 시차가 있는데다 밤이 늦어 그날 저녁에 전화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전화를 걸어야지 하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바로 그날 마릴린 몬로가 자살한 밤 이였습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는 그 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그때 바로 전화 한 통화를 하였더라면 좋았을텐데. . .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두개의 생명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육신의 생명” 또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영의 생명” 입니다. 그 두 생명은 서로가 우리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 21-25)
자살한 마릴린 몬로는 육신의 생명으로 보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누렸습니다. 미모, 물질의 풍요로움 등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육신 안에 거한 속사람인 영의 생명은 사망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좌절과 고독과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린 비참한 버려진 외로운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훼밍웨이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노벨상 저자)도 인생의 고독 속에 의미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입에다 총신을 물고 자신의 손으로 방아쇠를 잡아 당기어 자살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미국에서는 매년 삼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생을 포기하고 자살하여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인생을 포기 하는 것일까요? 왜 이들은 아파하고 외로워하며 좌절하는 삶을 살아 갈까요? 그것은 내 속에 거하는 죄 때문입니다. 내 속에 거하는 사망의 법에 사로 잡혀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삶에서 돌아오시라고 합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이러한 사망의 삶에서 돌아와 생명의 삶으로 돌아오라는 축복으로의 초청인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born again)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3-8, 16-17)
당신은 어느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망의 법입니까, 생명의 법에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나 홀로 걸어갑니까? 혹시 사망의 법인 좌절과 외로움, 절망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삶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위에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땅에 것만을 좆아 가지는 않습니까? 내 속사람 즉 진정한 내 자아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의 소리를 듣기를 왜면하고, 겉사람에 이끌리여 삶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이 사망의 법에서 죽고 생명의 법안에 사는 생명에 거하지 않겠습니까? 내 옛 사람은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부활의 새생명의 삶을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생명의 법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생명을 누리지 않겠습니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에서 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혹시 생명의 삶을 마음이 이끌리시면 이번 주일부터 가까운 교회에 찾아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삶을 걸어가지 않으시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두개의 생명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육신의 생명” 또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영의 생명” 입니다. 그 두 생명은 서로가 우리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 21-25)
자살한 마릴린 몬로는 육신의 생명으로 보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누렸습니다. 미모, 물질의 풍요로움 등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육신 안에 거한 속사람인 영의 생명은 사망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좌절과 고독과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린 비참한 버려진 외로운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훼밍웨이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노벨상 저자)도 인생의 고독 속에 의미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입에다 총신을 물고 자신의 손으로 방아쇠를 잡아 당기어 자살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미국에서는 매년 삼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생을 포기하고 자살하여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인생을 포기 하는 것일까요? 왜 이들은 아파하고 외로워하며 좌절하는 삶을 살아 갈까요? 그것은 내 속에 거하는 죄 때문입니다. 내 속에 거하는 사망의 법에 사로 잡혀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삶에서 돌아오시라고 합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이러한 사망의 삶에서 돌아와 생명의 삶으로 돌아오라는 축복으로의 초청인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born again)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3-8, 16-17)
당신은 어느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망의 법입니까, 생명의 법에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나 홀로 걸어갑니까? 혹시 사망의 법인 좌절과 외로움, 절망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삶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위에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땅에 것만을 좆아 가지는 않습니까? 내 속사람 즉 진정한 내 자아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의 소리를 듣기를 왜면하고, 겉사람에 이끌리여 삶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이 사망의 법에서 죽고 생명의 법안에 사는 생명에 거하지 않겠습니까? 내 옛 사람은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부활의 새생명의 삶을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생명의 법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생명을 누리지 않겠습니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에서 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혹시 생명의 삶을 마음이 이끌리시면 이번 주일부터 가까운 교회에 찾아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삶을 걸어가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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