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두레교회)
제가 옥 목사님보다 세 살 아래다. 그래서 늘 형님 형님 하고 불렀다. 옥 목사님께서 절 친동생처럼 챙겨주시고 격려해주셔서 늘 큰 힘이 됐다. 사람들은 옥 목사님을 평신도를 깨운 목사님으로 부르지만 사실 우리 같은 목회자들 더 깨웠다고 생각한다. 옥 목사님 살아계실 때 그 분은 우리의 목회 기준이셨다. 그런데 너무 빨리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곳에서 옥 목사님은 편안히 안식하고 환영받으실 테니 좋으시겠다. 남은 우리들은 그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마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누가 말하기를 너무 좋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필요해서 빨리 스카우트된다고 했다. 그래서 옥 목사님도 너무 사람이 좋아서, 하늘나라에 필요해서 빨리 데려가신 것 같다. 이제 남은 사람들이 옥 목사님 하시던 일을 이어야 한다. 옥 목사님은 사랑의교회만의 목사님 아니고 한국교회 전체, 그리고 세계교회 전체의 목사님이시다. 그 분이 하시던 일을 우리 후학들이 이어가길 바란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옥 목사님,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땐 저도 옥 목사님이라고 불렀지만 몇 사람만 있는 격 없는 자리에서 나와 하영조 목사는 그를 형님, 옥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을 다시 부르고 싶다. 형님이 소천하고 나서 사람들이 너무 좋은 소리만 해서 나는 형님의 흠을 말하겠다. 내가 보기에 형님의 가장 큰 흠은 별로 흠 잡을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게 옥에 티였다. 그래서 언제나 형님을 고결한 완벽주의자라 불렀다. 한 번은 형님이 한국교회 100주년 설교 원고를 보내 그걸 나더러 체크해보라 하셨던 적이 있다. 설교문을 읽어 본 후 완벽한 설교라고 했더니 형님은 버럭 화를 내시며 ‘세상에 완벽한 설교가 어디 있느냐’면서 다시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몇 자 적었더니 형님께서 ‘내가 이걸 해야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형님의 설교는 교회사에 남을 만한 완벽한 설교였다. 그러나 형님은 늘 그 설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나는 안다. 왜 그 분이 집회 약속을 하신 후 그 약속을 깨셨는지를. 교회 일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완벽한 설교가 아니면 그 설교를 들고 강단에 오르지 않으려 하시는 그 완벽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설교가 자신이 정한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자책하시며 고통스럽게 자신을 탓하셨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까지도 완벽하지 않으면 우리 앞에도 나타나지 않으셨다. 이 완벽함이 형님의 육체의 가시였는지 모른다.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뵐까 했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시는 형님임을 잘 알기에 조용히 기도만 했다. 형님, 옥 형님, 그렇게 목회하셨으니 얼마니 힘드셨어요. 목회 하루하루가 최선을 다하는 고통이셨고 설교 한편 한편이 고통의 산물이었죠. 설교 걱정을 하지 않으시고는 살 수 없었으니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그 와중에도 한국교회를 돌보셨으니…. 지금까지 사신 것도 전 성령님의 도우심이라고 생각해요. 이젠 제발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우리들 걱정돼도 모른 체하시고 말이에요. 부족한 제자들 믿으시고 그냥 쉬시면 안 될까요. 그곳에서 교회 걱정, 양떼 걱정일랑 마시고 이 땅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잔잔한 물가를 거니시며 그렇게 쉬시면 안 될까요. 형님, 옥 형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랑합니다.
김진경 총장(연변과학기술대학교)
참으로 큰 일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다. 이제는 그리던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리라 믿는다. 옥 목사님,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행복이 부럽다. 인내심이 많으시고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덕을 베푸신 김영순 사모님과 평생을 함께 하셨으니 말이다. 훌륭한 자녀들도 두셨다. 게다가 후임 오정현 목사님은 친아들 못지않게 옥 목사님을 모셨다. 오정현 목사님이 옥 목사님 모시는 걸 보면서 질투까지 났다. 두 분은 한국교회에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셨다. 많은 성도들이 당신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보였다. 당신께 양육 받은 많은 제자들이 전 세계에서 가슴을 아파하며 아쉬워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는 당신은 정말 엄청나게 행복한 사람이다. 당신은 승리하셨다.
오늘 목사님 환송하며 돌이켜보니 목사님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중국에 대학을 세우겠다는 내 말을 듣더니 당신은 ‘사랑의교회를 세울 때 목표했던 건 제자훈련과 북방선교였다. 제자훈련은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북방선교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오늘 하나님의 뜻으로 나를 만났다고 하셨다. 이제 연변과학기술대학은 중국에서 일류대학이 됐다. 옥 목사님이 없었으면 결코 평양과학기술대학도 없었을 것이다. 이 시간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도 옥 목사님을 위해 환송예배를 드리고 있다. 사랑하는 옥 목사님, 천국에서 웃으며 만나요.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이 강단에서 혼신 다하시던 목사님 모습이 생생하다. 이 땅의 교회를 긍휼이 여기셨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셨다. 아직도 기억한다. 이 몸이 죄인이라고 하셨던 목사님의 그 절규를, 주여 우리를 살려주소서라고 하셨던 그 외침을. 당신은 우리의 스승이시자 형님이셨으며 영원한 친구였다. 옥 목사님께서 개척한 강남은평교회 시절 부목사로 옥 목사님과 함께 심방도 가고 새벽에 탁구도 쳤던 기억이 난다. 그 땐 참 건강하셨다. 어느 날 나에게 부산으로 가라 하셨을 때, 섭섭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목사님께서 그 일로 3일 밤을 설치셨다는 말을 듣고는 그 섭섭함이 풀렸다. 그 후 사역으로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목사님은 나보다 더 아파하시며, 목회는 인내야 라고 하셨다. 나의 진정한 멘토셨다.
이제 우리는 목사님을 더는 뵐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지만 그 분은 이 땅에서의 사역을 충분히 감당하셨기에 그토록 사랑하셨던 주님을 만나 위로를 받으실 것이다. 목사님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며 천국에서의 쉼표다. 주님께서 한국교회를 위해 제2, 제3의 옥한흠 목사를 주실 것을 믿는다. 개인적으로 65세에 은퇴하면 그 분을 형님이라고 부르려고 작심했는데 그 말을 듣지 못하고 떠나가셨다. 형님, 옥한흠 형님, 이제 누구와 상의하고 누구와 제 마음을 나눠야 하나요. 이제 안식하세요.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옥한흠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큰바위얼굴이었다. 소리 없는 큰바위얼굴. 목회자들의 영원한 멘토였다. 그 빈자리 너무 크다. 우리 곁에 계실 땐 몰랐는데 천국에 가셨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숨이 멈추는 듯 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목사님은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사무실과 서재는 항상 정리 정돈돼 있었다. 그 분의 설교는 복음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강대상 위와 삶이 항상 일치했던 분이셨다. 하나님께서 당장이라도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갈 신부 같았다. 형님처럼 든든했다. 병 중에도 그 분이 숨 쉬고 살아계신 것 자체로 든든했다. 존재 그 자체가 희망이요 의미였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차례다. 우리가 그 분의 바통을 이어받아 목사님의 인격과 삶 기억하며 뛰어갈 것이다. 목사님을 보내는 지금 목메어 기도한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고.
릭워렌 목사(새들백교회)
옥한흠 목사님은 귀하고 뛰어난 영적 거인이셨다. 우리도 매우 슬프다. 그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기에 이 땅의 사람들은 그를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기릴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다. 겸손한 분이셨고, 신실한 분이셨다. 예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셨던 분이셨다. 지금 세워지고 있는 사랑의교회 새 성전은 옥 목사님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훌륭하게 산 분과 그렇지 못한 분의 평가는 시간 지나며 확실하게 달라진다. 옥 목사님을 데려가신 하나님께 우리가 왜 왜 하고 질문도 했지만 우리가 태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은총이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임을 이해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더 좋은 곳으로 부르셨을 것이다. 지난 5일 간의 장례식 동안 옥 목사님은 참 성공하신 목회자셨다는 걸 느꼈다.
목사님이 잘 하셨던 일 중에 제일 잘하셨던 건 바로 사랑의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두 번째 잘 하신 일은 후임을 잘 결정하신 일이다. 옥 목사님은 가셨지만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다. 옥 목사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보내지 않았다. 사랑의교회와 모든 친지들이 옥 목사님의 일생의 사역과 그가 남기신 신학과 신앙, 목회, 제자훈련을 길이 빛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옥성호(故 옥한흠 목사의 장남)
너무도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셨다.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를 데려가셨다.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지금 심장이 뛰고 있는 것만도 기적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자 마음 속은 분노와 허탈감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기도했는데 어떻게…. 하나님 깊은 뜻같은 건 알고 싶지 않다고, 그냥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를 지금 데려가셔서 하나님께 이익 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데려가셨나.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시라면, 흙으로 사람 만드신 사랑의 주라면 지금 아버지의 쪼그라든 폐를 다시 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니 살려 달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를 데려가셨다. 아버지께선 ‘내가 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날 일이키실 것이다’고 하셨다. 그 확신은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반드시 일으키실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를 데려가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시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 분의 육신을 살려 달라 했지만 하나님은 아버지의 정신을 살리길 원하셨다. 살려달라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살리시기로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정신이었다. 삶 전체로 보이신 그 정신. 그리고 아버지의 육체에는 쉼을 주셨다. 내가 할 일이 있다면 나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하나님께선 ‘너희가 옥한흠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기도가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여전히 계속돼야 한다. 아버지는 지금 천국에서 웃고 계실 것이다.
제가 옥 목사님보다 세 살 아래다. 그래서 늘 형님 형님 하고 불렀다. 옥 목사님께서 절 친동생처럼 챙겨주시고 격려해주셔서 늘 큰 힘이 됐다. 사람들은 옥 목사님을 평신도를 깨운 목사님으로 부르지만 사실 우리 같은 목회자들 더 깨웠다고 생각한다. 옥 목사님 살아계실 때 그 분은 우리의 목회 기준이셨다. 그런데 너무 빨리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곳에서 옥 목사님은 편안히 안식하고 환영받으실 테니 좋으시겠다. 남은 우리들은 그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마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누가 말하기를 너무 좋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필요해서 빨리 스카우트된다고 했다. 그래서 옥 목사님도 너무 사람이 좋아서, 하늘나라에 필요해서 빨리 데려가신 것 같다. 이제 남은 사람들이 옥 목사님 하시던 일을 이어야 한다. 옥 목사님은 사랑의교회만의 목사님 아니고 한국교회 전체, 그리고 세계교회 전체의 목사님이시다. 그 분이 하시던 일을 우리 후학들이 이어가길 바란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옥 목사님,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땐 저도 옥 목사님이라고 불렀지만 몇 사람만 있는 격 없는 자리에서 나와 하영조 목사는 그를 형님, 옥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을 다시 부르고 싶다. 형님이 소천하고 나서 사람들이 너무 좋은 소리만 해서 나는 형님의 흠을 말하겠다. 내가 보기에 형님의 가장 큰 흠은 별로 흠 잡을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게 옥에 티였다. 그래서 언제나 형님을 고결한 완벽주의자라 불렀다. 한 번은 형님이 한국교회 100주년 설교 원고를 보내 그걸 나더러 체크해보라 하셨던 적이 있다. 설교문을 읽어 본 후 완벽한 설교라고 했더니 형님은 버럭 화를 내시며 ‘세상에 완벽한 설교가 어디 있느냐’면서 다시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몇 자 적었더니 형님께서 ‘내가 이걸 해야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형님의 설교는 교회사에 남을 만한 완벽한 설교였다. 그러나 형님은 늘 그 설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나는 안다. 왜 그 분이 집회 약속을 하신 후 그 약속을 깨셨는지를. 교회 일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완벽한 설교가 아니면 그 설교를 들고 강단에 오르지 않으려 하시는 그 완벽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설교가 자신이 정한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자책하시며 고통스럽게 자신을 탓하셨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까지도 완벽하지 않으면 우리 앞에도 나타나지 않으셨다. 이 완벽함이 형님의 육체의 가시였는지 모른다.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뵐까 했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시는 형님임을 잘 알기에 조용히 기도만 했다. 형님, 옥 형님, 그렇게 목회하셨으니 얼마니 힘드셨어요. 목회 하루하루가 최선을 다하는 고통이셨고 설교 한편 한편이 고통의 산물이었죠. 설교 걱정을 하지 않으시고는 살 수 없었으니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그 와중에도 한국교회를 돌보셨으니…. 지금까지 사신 것도 전 성령님의 도우심이라고 생각해요. 이젠 제발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우리들 걱정돼도 모른 체하시고 말이에요. 부족한 제자들 믿으시고 그냥 쉬시면 안 될까요. 그곳에서 교회 걱정, 양떼 걱정일랑 마시고 이 땅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잔잔한 물가를 거니시며 그렇게 쉬시면 안 될까요. 형님, 옥 형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랑합니다.
김진경 총장(연변과학기술대학교)
참으로 큰 일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다. 이제는 그리던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리라 믿는다. 옥 목사님,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행복이 부럽다. 인내심이 많으시고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덕을 베푸신 김영순 사모님과 평생을 함께 하셨으니 말이다. 훌륭한 자녀들도 두셨다. 게다가 후임 오정현 목사님은 친아들 못지않게 옥 목사님을 모셨다. 오정현 목사님이 옥 목사님 모시는 걸 보면서 질투까지 났다. 두 분은 한국교회에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셨다. 많은 성도들이 당신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보였다. 당신께 양육 받은 많은 제자들이 전 세계에서 가슴을 아파하며 아쉬워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는 당신은 정말 엄청나게 행복한 사람이다. 당신은 승리하셨다.
오늘 목사님 환송하며 돌이켜보니 목사님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중국에 대학을 세우겠다는 내 말을 듣더니 당신은 ‘사랑의교회를 세울 때 목표했던 건 제자훈련과 북방선교였다. 제자훈련은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북방선교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오늘 하나님의 뜻으로 나를 만났다고 하셨다. 이제 연변과학기술대학은 중국에서 일류대학이 됐다. 옥 목사님이 없었으면 결코 평양과학기술대학도 없었을 것이다. 이 시간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도 옥 목사님을 위해 환송예배를 드리고 있다. 사랑하는 옥 목사님, 천국에서 웃으며 만나요.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이 강단에서 혼신 다하시던 목사님 모습이 생생하다. 이 땅의 교회를 긍휼이 여기셨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셨다. 아직도 기억한다. 이 몸이 죄인이라고 하셨던 목사님의 그 절규를, 주여 우리를 살려주소서라고 하셨던 그 외침을. 당신은 우리의 스승이시자 형님이셨으며 영원한 친구였다. 옥 목사님께서 개척한 강남은평교회 시절 부목사로 옥 목사님과 함께 심방도 가고 새벽에 탁구도 쳤던 기억이 난다. 그 땐 참 건강하셨다. 어느 날 나에게 부산으로 가라 하셨을 때, 섭섭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목사님께서 그 일로 3일 밤을 설치셨다는 말을 듣고는 그 섭섭함이 풀렸다. 그 후 사역으로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목사님은 나보다 더 아파하시며, 목회는 인내야 라고 하셨다. 나의 진정한 멘토셨다.
이제 우리는 목사님을 더는 뵐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지만 그 분은 이 땅에서의 사역을 충분히 감당하셨기에 그토록 사랑하셨던 주님을 만나 위로를 받으실 것이다. 목사님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며 천국에서의 쉼표다. 주님께서 한국교회를 위해 제2, 제3의 옥한흠 목사를 주실 것을 믿는다. 개인적으로 65세에 은퇴하면 그 분을 형님이라고 부르려고 작심했는데 그 말을 듣지 못하고 떠나가셨다. 형님, 옥한흠 형님, 이제 누구와 상의하고 누구와 제 마음을 나눠야 하나요. 이제 안식하세요.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옥한흠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큰바위얼굴이었다. 소리 없는 큰바위얼굴. 목회자들의 영원한 멘토였다. 그 빈자리 너무 크다. 우리 곁에 계실 땐 몰랐는데 천국에 가셨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숨이 멈추는 듯 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목사님은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사무실과 서재는 항상 정리 정돈돼 있었다. 그 분의 설교는 복음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강대상 위와 삶이 항상 일치했던 분이셨다. 하나님께서 당장이라도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갈 신부 같았다. 형님처럼 든든했다. 병 중에도 그 분이 숨 쉬고 살아계신 것 자체로 든든했다. 존재 그 자체가 희망이요 의미였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차례다. 우리가 그 분의 바통을 이어받아 목사님의 인격과 삶 기억하며 뛰어갈 것이다. 목사님을 보내는 지금 목메어 기도한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고.
릭워렌 목사(새들백교회)
옥한흠 목사님은 귀하고 뛰어난 영적 거인이셨다. 우리도 매우 슬프다. 그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기에 이 땅의 사람들은 그를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기릴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다. 겸손한 분이셨고, 신실한 분이셨다. 예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셨던 분이셨다. 지금 세워지고 있는 사랑의교회 새 성전은 옥 목사님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훌륭하게 산 분과 그렇지 못한 분의 평가는 시간 지나며 확실하게 달라진다. 옥 목사님을 데려가신 하나님께 우리가 왜 왜 하고 질문도 했지만 우리가 태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은총이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임을 이해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더 좋은 곳으로 부르셨을 것이다. 지난 5일 간의 장례식 동안 옥 목사님은 참 성공하신 목회자셨다는 걸 느꼈다.
목사님이 잘 하셨던 일 중에 제일 잘하셨던 건 바로 사랑의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두 번째 잘 하신 일은 후임을 잘 결정하신 일이다. 옥 목사님은 가셨지만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다. 옥 목사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보내지 않았다. 사랑의교회와 모든 친지들이 옥 목사님의 일생의 사역과 그가 남기신 신학과 신앙, 목회, 제자훈련을 길이 빛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옥성호(故 옥한흠 목사의 장남)
너무도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셨다.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를 데려가셨다.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지금 심장이 뛰고 있는 것만도 기적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자 마음 속은 분노와 허탈감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기도했는데 어떻게…. 하나님 깊은 뜻같은 건 알고 싶지 않다고, 그냥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를 지금 데려가셔서 하나님께 이익 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데려가셨나.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시라면, 흙으로 사람 만드신 사랑의 주라면 지금 아버지의 쪼그라든 폐를 다시 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니 살려 달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를 데려가셨다. 아버지께선 ‘내가 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날 일이키실 것이다’고 하셨다. 그 확신은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반드시 일으키실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를 데려가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시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 분의 육신을 살려 달라 했지만 하나님은 아버지의 정신을 살리길 원하셨다. 살려달라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살리시기로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정신이었다. 삶 전체로 보이신 그 정신. 그리고 아버지의 육체에는 쉼을 주셨다. 내가 할 일이 있다면 나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하나님께선 ‘너희가 옥한흠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기도가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여전히 계속돼야 한다. 아버지는 지금 천국에서 웃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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