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청소년) 연예인들의 성(性)적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분석평가센터(소장 김기헌, 이하 센터)가 조사한 ‘청소년 연예인 성보호·근로권·학습권 실태분석’에 따르면 이들 10명 중 1명은 연예활동 중 신체 특정부위(다리·가슴·엉덩이 등) 노출을 경험했고, 여성 청소년 연예인들의 경우 60%가 강요에 의한 노출이라고 응답했다.


▲다이어트 또는 성형 권유를 받은 적 있는 청소년 연예인의 비율.

또 연예활동 중 9.1%가 무대나 촬영장에서 애무·포옹·키스 등 선정적 행위를 경험했고, 4.5%는 음담패설이나 비속어, 성적 희롱, 유혹 등 선정적 암시가 담긴 표현을 경험했다. 여성 청소년 연예인들 중 56.1%는 다이어트를, 14.6%는 성형수술을 권유받는 등 이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도 드러났다.

센터는 지난달 21일부터 8월 5일까지 청소년 연예인 및 연예지망생 103명(남성 53, 여성 50)을 대상으로 이를 설문 조사했다.

성 관련 콘텐츠 각종 매체에서 홍수

TV나 영화 등 각종 매체에 포함된 성적 내용 비율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40개 프로그램 중 75%에 달하는 30개에서 성 콘텐츠 내용이 포함됐으며, 전체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케이블TV(9.1%)와 뮤직비디오(6.1%)에서 특히 그 비율이 높았다.

미디어 채널별 성 콘텐츠 특성으로는 신체 특정부위 노출과 결혼하지 않은 남녀간의 성관계 장면이 전체의 79%를 차지했다. 드라마나 리얼리티 프로 등에서 청소년 출연자들에게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하거나 부적절한 성적 질문을 일삼는 행위도 많았다.

이같은 성적 침해는 그대로 이들 청소년 연예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 청소년 연예인 및 지망생들의 경우 조사대상 중 64.3%가 불면증을 호소했으며, 우울증 약을 복용하거나(14.3%) 연예인 생활에 대한 회의(14.5%)를 느끼고 있었다.

특히 가치관이 완전히 형성되지 못한 시기에 겪는 이같은 성적 침해는 심리적 외상이나 자존감 훼손으로 연결돼 그 여파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센터는 우려했다. 또 이들 청소년들은 낮은 지위로 인해 성적인 피해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암묵적으로 수용하면서 왜곡된 성 의식이 생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시청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영향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또래 청소년 연예인들의 선정적 행위를 시청하면서 성 의식이 왜곡되고, 이같은 장면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청소년들이 최근 빈번해진 아동 성폭력 같은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미디어를 통한 왜곡된 성 의식은 사회적 확산을 통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는 법·제도 전무… 조속 마련을

현재 국내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한 방송 규제는 주로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마련돼 있어 출연하는 청소년들에 관한 보호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법 제5조에는 ‘방송은 건전한 가정생활과 아동 및 청소년의 선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음란·퇴폐 또는 폭력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나와있을 뿐이다.

방송광고 심의규정이나 3대 지상파 방송사의 윤리강령 등에도 청소년 연예인의 성적 침해 보호에 대해서는 포괄적인 내용만 거론하고 있다. MBC 방송강령의 경우 8조 2항에서 방송이 어린이나 청소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하여 범죄, 폭력, 성, 음주, 흡연 등에 대한 묘사는 되도록 최소화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지침은 없다.

센터는 “영리 및 상업 목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청소년 연예인들에게 선정적 행위나 표현을 강요할 수 없도록 규제하거나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방송광고 심의규정 등에도 청소년 연예인들의 과다노출 등 성적 침해를 규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방송 등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인권침해의 원인을 같이 연구하고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의 성적 침해 방지 선언이나, 남성적이고 위계적인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해 가이드라인을 제작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희롱 예방등을 ‘갑’의 위치에 있는 방송 관련 종사자들에게 교육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해외에서는? 가이드라인 규정 마련중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34조는 ‘아동을 외설스러운 공연 및 자료에 착취적으로 이용하는 행위 규제 등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의무를 국가가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유엔이나 EU,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나 일부 국가들에서는 아동 및 청소년 방송 출연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영국의 경우 어린이학교가족부에서 아동 및 청소년 방송 출연 보호조항을 개정하고 있다. 영국 아동 및 청소년법에는 생명이 위험에 노출되는 공연 등에 어린이·청소년 연기자가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이를 성적인 내용에도 확대하려는 것이다.

유엔에서는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어린이에 대한 과도한 착취를 중단해달라고 방송사 및 제작사에 요구하고 있으며, EU는 각종 프로그램과 광고에서 소수자(아동·청소년 포함)의 신체·정신적, 도덕적 발전을 보호할 수 있는 규칙을 강조하고 있다. 유니세프는 미디어 제작자들을 위한 핸드북을 제작, 어린이 출연시 부모 동의 및 충분한 휴식과 교통 제공 등을 제안하고 있다.

헐리우드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탤런트 에이전시법(Talent Agency Law)을 제정, 라이센스 제도를 통해 에이전트 활동을 규제하고 있다. 규정 항목 중 ‘파견 금지’는 연예인의 건강·안전 혹은 복지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장소에 연예인을 파견하지 못하도록 규정했으며, ‘불건전한 자 채용 금지’는 성매매여성, 도박꾼, 알콜중독자, 뚜쟁이 등을 출입시키거나 고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 계약 전 노동위원회 승인을 받도록 해 불공정 계약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법제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