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시간동안 로마서 전체의 삽입 부분에 관한 9-11장을 공부해 왔습니다. 9장은 이스라엘의 과거에 관한 것이고 10장은 현재의 이스라엘에 관한 것임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오늘 공부할 11장은 바로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성경을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그분의 신실하심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공부할 11장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언약을 지키시는 모습에서 다시 한 번 확인을 얻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한 국가로서 그들은 바로 기적의 백성입니다. 자신들의 누구로부터 왔는지를 정확히 꼽을 수 있는 백성이며 수천 년을 박해와 핍박을 그것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엄청나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남은 백성입니다. BC 586년에 바벨론 침공으로 무너져 내린 이후 제대로 된 독립을 누려본 적이 별로 없는 백성이,1948년 유엔으로부터 독립을 얻어서 2000년을 나라 없는 백성으로 전전하다가 나라를 얻은 것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 때문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그렇고 다윗과의 언약인 삼하7:16 이 그것을 뒷받침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보면 아직도 성취가 안 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주어지는 질문은 언제 이 약속이 이루어 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11장에 나와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9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선택 된 것은 그들에게 어떤 탁월성이 있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한 것임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10장에서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잠시 구속사에서 제처 놓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공적으로 배척한 마태복은 16장에 바로 이 교회에 대한 암시를 하셨고 사도행전 2장에서 이 영적인 특수 유기체를 만드셔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면 의문점은 그럼 이스라엘은 영원히 제외 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거기에 대해서 결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11장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9장서 보았고 10장서 하나님의 공평하심, 누구나 구원 받도록 하신 사역을 보았으며 11장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봅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롬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육신의 이스라엘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은 왜 이스라엘이 영원이 아닌 잠시 제외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세 가지 들면서 결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그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자기 자신이 증거하고 말합니다.

(롬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만일 하나님이 모든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면 아마도 자신도 버리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버림을 받아야 한다면 자신 만큼 하나님 앞에서 악한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핍박자중에 핍박자였고, 훼방자 중에 훼방 자였기 때문입니다. 초대 집사인 스데반이 순교 할 때도 그는 옷을 맡음으로서 그가 죽을죄를 지은 죄인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행7: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뿐만아니라 다메섹으로 기독교인들은 잡아서 죽이기 위해서 병사를 이끌고 앞장을 섰던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 행세를 하였고 예수님을 핍박하는데 앞장을 섰던 자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유대인을 버리기로 작정 하셨다면 1번이 바로 바울이 된 사울일 것입니다.

2. 두 번째 증거로는 남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롬 11: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롬 11: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롬 11: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롬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영왕기상 19장을 보면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나옵니다. 그가 갈멜산에서 바알 신을 섬기던 제사장 450인을 불러서 누가 참신인지 내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내기는 죽음의 내기입니다. 너희가 믿는 바알 신이 참신이면 내가 목숨을 내놓고 내가 믿는 여호와가 참신이면 너희는 내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는 그러한 내기입니다. 결국 전후 무후한 이 내기에서 엘리야는 참신 하나님을 보이고 승리 합니다. 그 후 모든 거짓 선지자를 기손 시내에서 다 죽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우상 숭배는 없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신실한 주의 백성이 나라를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때 이세벨 왕후가 엘리야를 잡아 죽이라는 명을 내립니다. 이에 실망한 엘리야는 지칠 대로 지처서 신앙의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 도망하는 중..하나님께 원망합니다.

왕상19: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답을 하십니다.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역사 속에 보면 소수의 신실한 자들을 항상 남겨 두십니다. 바알의 때도 그랬고, 바벨론 포로 때에도 다니엘과 그 세친구가 있었으며 예수님 때에도 신실한 무리들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남은 자에 대한 정의는 분분해서 많은 혼동이 있어 왔습니다. 암스트롱이란 사람은 이 남은 자가 바로 영국이며 앵글로 섹슨족이라고 주장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남은 자가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며- 또 여호와의 증인 144000명이 바로 남은자라고 주장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남은자라로 믿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을 잘 보면 바울이 말하는 남은자란 바로 이스라엘 백성 중 신실한 자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들은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5절) 모든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새 언약도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먼저 주신 것입니다.

롐31:31절 (렘 31: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렘 31: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렘 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새언약은 하나님이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교회에게 주신 언약이 아니라 먼저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으로서 눅22:19-20절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 새`언약의 적용을 교회에게 처음 하신 것이지 이스라엘과 맺은 새 언약을 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이 언약은 약속은 부조건 적이고 일방적인 약속이기에 - 즉 은혜로 주신 약속이기에 결코 폐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신실 성이 이를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로마서 11장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89:30-35에 보면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치 아니하며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은 징계를 통해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지 버리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면 부모 자녀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면 분명히 이루시는 분이지 변개하시거나 파기 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롬 11: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롬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 11: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롬 11: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선민이지만 너무 교만하여서 자기 멋대로 사니까 하나님께서 눈은 가리셨고, 귀를 닫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축복이 오히려 저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밥상이 올무와 덧이 된다는 것은 바로 만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돈만 추구하고 명예만 추구하고 쓸데없는 것만을 추구하고 사는 것이 저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데 사업이 잘되고 건강하고 또 하는 일마다 형통한 것이 축복입니까? 저주 입니까? 참 축복은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체험하며 주님 앞에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