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성기도는 단순히 ‘소리내 울부짖는 기도’일 뿐인가. 한국 특유의 ‘한(恨)’ 정서로 통성기도를 이해하고, 이를 ‘공동체적 탄원기도(Communal Lamenting Prayer)’로 정의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명실 박사(장신대)는 최근 초동교회에서 열린 제36회 한국실천신학회(회장 김윤규 박사) 정기학술대회에서 한국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통성기도의 영성 안에서 한의 정서를 성공적으로 수용한 점을 꼽으면서 이같은 논지를 전개했다.
한국 기독교 초기에는 교회가 억압당하는 자들의 눈물과 고통, 한의 정서를 외면하지 않았으며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의 위로와 피난처 역할을 담당했고, 성장이 멈추고 ‘공격적 선교’로 비난받고 있는 한국교회가 이러한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성기도, 민족 특유 한(恨)의 영적 분출구
통성기도는 한국교회 선교 초기 국가와 자신들의 비참한 운명을 생각하며 교회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면서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김 박사는 이를 ‘독창적인 한국의 예배학적 실천’이라 규정하고, 이는 이성이나 논리가 아닌 깊은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있던 감정의 폭발로 인한 것이라 설명했다.
결국 통성기도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기도 안에서 그들의 쓰라린 감정들을 표현하고 풀어내 온전히 치유되도록 돕는 기도의 한 방법이고, 이것의 뿌리가 되는 ‘한(恨)’ 정서가 한국 기독교인들의 예배 영성과 실천에 영향을 미치게 된 셈이다.
그러므로 통성기도는 단순히 ‘큰 소리로 기도하기’를 넘어 내용상의 특색을 나타낸다. 바로 ‘탄원기도’였다. 첫 통성기도는 ‘1907년 평양대부흥’ 때 나타났는데, 당시 모인 사람들은 일제의 침략을 놓고 나라에 대한 염려와 애국심으로 기도 중에 하나님께 크게 울면서 침략에서 나라를 지켜줄 것을 부탁했다.
평양대부흥이 영적 변화에 초점을 둔 개인적 회개운동이었다는 일반적 이해와는 달리, 본래적 통성기도는 나라를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공동체적 탄원기도’였다는 해석이다. 물론 기도 가운데 개인적 염려들이 포함돼 있지만, 이 염려들 대부분이 국가 공동체의 운명과 직접 연결돼 있어 둘은 따로 생각할 수 없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교회에 열정적으로 모여들어 통성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김 박사는 “통성기도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전통적인 한풀이를 위한 굿이 아니라, 기독교적 방법 안에서 그들의 한맺힌 고통과 분노를 해결하려던 영적 방식이었고 공간이었다”고 분석했다.
글자만 봐도 알 수 있다… 通성기도, 痛성기도?
통성기도의 ‘성’은 소리(聲)를 의미하는 데 모두 동의한다. 그렇다면 ‘통’은? 보통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공통의, 공동 사회의(通)’ 뜻과 ‘아픈, 분개의(痛)’ 뜻이다. 김 박사는 “어떤 한자가 사용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지만, 두 의미를 함께 가져오면 통성기도의 진정한 의미를 더 잘 정의할 수 있고, 역사 속 통성기도의 역할을 잘 설명해 준다”고 주장했다. 두 한자를 모두 사용하면 통성기도는 ‘공동적인, 공동체적인 탄원기도’의 의미다. 그러므로 통성기도의 기본이 되는 ‘소리’는 큰 고통 안에서 통곡하는 소리, 간절한 간청 안에서 울어대는 소리가 된다.
김 박사는 “통성기도는 이처럼 심리적 평정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 그 진정한 의미를 성서적·신학적·역사적으로 조명해 새로운 장을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공격적으로 소리지르는 기도 대신, 공동체적 탄식의 의식이나 감각이 살아있는 공동체성 회복의 기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출애굽 사건과 예레미야 33장 3절 등 성경에서도 풍부하게 발견된다.
김 박사는 “우리는 역사와 무관한 통성기도를 드릴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 속에서 탄원기도로 하나님의 개입을 구하고,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탄원을 모든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나와 외쳐야 할 것”이라며 “또 우리 사회에 범람한 많은 범죄들을 신앙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함께 나아가 고발해야 하는 등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함께 지고 가는 것이 진정한 통성기도의 영성이자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정리했다.
김명실 박사(장신대)는 최근 초동교회에서 열린 제36회 한국실천신학회(회장 김윤규 박사) 정기학술대회에서 한국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통성기도의 영성 안에서 한의 정서를 성공적으로 수용한 점을 꼽으면서 이같은 논지를 전개했다.
한국 기독교 초기에는 교회가 억압당하는 자들의 눈물과 고통, 한의 정서를 외면하지 않았으며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의 위로와 피난처 역할을 담당했고, 성장이 멈추고 ‘공격적 선교’로 비난받고 있는 한국교회가 이러한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성기도, 민족 특유 한(恨)의 영적 분출구
통성기도는 한국교회 선교 초기 국가와 자신들의 비참한 운명을 생각하며 교회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면서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김 박사는 이를 ‘독창적인 한국의 예배학적 실천’이라 규정하고, 이는 이성이나 논리가 아닌 깊은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있던 감정의 폭발로 인한 것이라 설명했다.
결국 통성기도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기도 안에서 그들의 쓰라린 감정들을 표현하고 풀어내 온전히 치유되도록 돕는 기도의 한 방법이고, 이것의 뿌리가 되는 ‘한(恨)’ 정서가 한국 기독교인들의 예배 영성과 실천에 영향을 미치게 된 셈이다.
그러므로 통성기도는 단순히 ‘큰 소리로 기도하기’를 넘어 내용상의 특색을 나타낸다. 바로 ‘탄원기도’였다. 첫 통성기도는 ‘1907년 평양대부흥’ 때 나타났는데, 당시 모인 사람들은 일제의 침략을 놓고 나라에 대한 염려와 애국심으로 기도 중에 하나님께 크게 울면서 침략에서 나라를 지켜줄 것을 부탁했다.
평양대부흥이 영적 변화에 초점을 둔 개인적 회개운동이었다는 일반적 이해와는 달리, 본래적 통성기도는 나라를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공동체적 탄원기도’였다는 해석이다. 물론 기도 가운데 개인적 염려들이 포함돼 있지만, 이 염려들 대부분이 국가 공동체의 운명과 직접 연결돼 있어 둘은 따로 생각할 수 없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교회에 열정적으로 모여들어 통성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김 박사는 “통성기도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전통적인 한풀이를 위한 굿이 아니라, 기독교적 방법 안에서 그들의 한맺힌 고통과 분노를 해결하려던 영적 방식이었고 공간이었다”고 분석했다.
글자만 봐도 알 수 있다… 通성기도, 痛성기도?
통성기도의 ‘성’은 소리(聲)를 의미하는 데 모두 동의한다. 그렇다면 ‘통’은? 보통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공통의, 공동 사회의(通)’ 뜻과 ‘아픈, 분개의(痛)’ 뜻이다. 김 박사는 “어떤 한자가 사용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지만, 두 의미를 함께 가져오면 통성기도의 진정한 의미를 더 잘 정의할 수 있고, 역사 속 통성기도의 역할을 잘 설명해 준다”고 주장했다. 두 한자를 모두 사용하면 통성기도는 ‘공동적인, 공동체적인 탄원기도’의 의미다. 그러므로 통성기도의 기본이 되는 ‘소리’는 큰 고통 안에서 통곡하는 소리, 간절한 간청 안에서 울어대는 소리가 된다.
김 박사는 “통성기도는 이처럼 심리적 평정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 그 진정한 의미를 성서적·신학적·역사적으로 조명해 새로운 장을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공격적으로 소리지르는 기도 대신, 공동체적 탄식의 의식이나 감각이 살아있는 공동체성 회복의 기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출애굽 사건과 예레미야 33장 3절 등 성경에서도 풍부하게 발견된다.
김 박사는 “우리는 역사와 무관한 통성기도를 드릴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 속에서 탄원기도로 하나님의 개입을 구하고,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탄원을 모든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나와 외쳐야 할 것”이라며 “또 우리 사회에 범람한 많은 범죄들을 신앙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함께 나아가 고발해야 하는 등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함께 지고 가는 것이 진정한 통성기도의 영성이자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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