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2006-10-09 08:17





▲권영국 목사(새누리선교교회)
많은 사람들이 고통 당하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병이 바로 비교의식이란 병이다. 비교의식이란 병은 사람들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가는 고질적이고도 치명적인 병이다.

나의 지난 25년여의 해외 목자생활을 뒤돌아 볼 때 나를 힘들게 하였던 것들 중에 하나가 비교의식이었다. 배고픈 것도 힘들고 사업의 실패도 힘든 일이고 자녀를 기르는 일도 만만치 않고 밤잠 설치며 공부하는 일도 많은 수고를 요구한다. 사실 미국 이민생활 자체가 긴장의 연속이다. 이민목회도 사실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힘든 일보다 나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괴물이 있었다면 그 놈이 바로 비교의식이란 괴물이다. 내가 내 자신을 친구나 다른 목사님들과 비교하기 시작 할 때 모든 만족과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더군더나 아내가 나를 다른 목사님들과 비교하면서 충고아닌 충고를 할 땐 비참한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몇 년전에 감동 있게 보았던 영화 "아마데우스 "는17 세기 궁중음악의 최고의 권위자인 살리에르의 이야기이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 보는 눈이 있다. 그러나 천재 살리에르는 또 다른 천재 모짜르트를 서서히 죽어가게 하였다. 모짜르트가 술집에서 한손으로는 기생의 엉덩이를 두드리면서 또 한손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즉석에서 작곡한 그 곡을 살리에르가 읽었을 때 그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갔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짜르트의 곡은 살리에르가 한달 내내 씨름하면서 수십번을 고쳐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성실했던 살리에르는 바람둥이 애숭이 모짜르트에게 자기보다 뛰어난 천재의 재능을 부여한 하나님에 대하여 분노하였다. 그는 비교의식이라는 괴물에게 시달리다가 마침내 모짜르트를 간접 살인으로 죽이고 그 자신도 정신병원에서 죽어갔다. 만약에 살리에르가 어린 모자르트를 키워주고 축복해 주었더라면 그의 생애가 얼마나 행복하며 위대한 생애가 되었을까.

사람이 어떻게 비교의식을 극복할 수 있을까? 창조의식만이 비교의식을 이길수있다. 사람은 상품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걸작품이다. 상품은 비교가 가능하다. 그러나 작품은 유일한 것이다. 이 지구상의 65억 인류중에 나와 똑 같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한배에서 나온 쌍둥이도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나의 외모, 피부색깔, 키, 인생길은 창조주의 최선과 심혈을 바친 작품이다. 명품이다.

나무들은 서로 견주지 않는다. 소나무이든 꿀밤나무이든 개의치 아니한다. 낮은 언덕에 심겨졌든 높은 산위에 심겨졌든 불평하지 않는다. 어디에 심겨졌든 그 심겨진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옮기지 아니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인생도 그 심겨진 곳에서 시련이 와도 이혼하지 말고 더 뿌리를 깊이 내리고 가정의 꽃을 피워내야 한다. 다른 가정과 비교하지 말고 우리 가정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야 한다.

시계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초침 분침중 어느 것이 더 잘 났는가. 시계의 모든 부속품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들러리나 조연이 없다. 인생도 모두가 다 주인공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부여하신 독특한 역할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

이제는 비교의식이라는 괴물의 저주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더이상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허무한 인생을 살아서는 안된다. 내가 내자신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이민자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 새누리선교교회 권영국 목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