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1장부터 8장까지 로마서 전체의 1/2을 공부해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서의 주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자 여러분 로마서의 주제가 뭐였지요?
하나님의 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입니다.
첫 부분은 서론으로 1:1-17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왜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가? 죄 때문에( 1:18-3:20) 세 번째는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가? 구원 에 관해서(3:21-5장) 네 번째는 하나님의 의를 얻은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성화에 대해서(6장-8장)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주권과의 관계는? (9장-11장) 여섯 번째는 하나님의 의가 크리스천의 삶에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가? 우리가 구원 받고 난후에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12장-15:13) 마지막 결론 15:13-16:27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 이제 5번째 Section 인 Sovereignty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밝히면서 바울이 자신의 골육인 이스라엘의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롬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어찌된 일입니까?
8장 마지막과 9장의 시작을 보면 분위기가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8장이 창공을 나는 분위기라면 9장은 침울한 골짜기를 헤매는 분위기입니다. 바울은 바로 자신의 동족을 위한 근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좋은 것, 이 특권을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는 지금 막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아픈 것 입니다. 안타까운 것입니다.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배척한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마음입니다.
우리들은 나의 의견과 조금만 달라도 얼굴빛이 변합니다. 조금만 내게 섭섭하게 해도 벌써 적대심을 갖습니다. 어찌~~감히 네 따위가 그럴 수가 있는 거야? 그러나 이런 모습은 크리스천의 올바른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네 왼 뺌도 내 밀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오리를 가자고 억지로 끌거든 10리를 가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즉 긍휼과 자비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자신을 향하여 조롱하고 저주하는 무리를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 여든 거기서 내려와 너를 구원하라고 외치는 무리를 향하여, 자신의 남은 옷 조각을 차지하려고 제비를 뽑는 군졸들을 항하여,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바를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바울도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긍휼한 마음으로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3 학년 반의 한 남자 아이한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클래스에서 잠깐 졸다가 깨어 보니까 밑이 척척한 것이었습니다. 전에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 그런 일은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 다른 아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면 오줌싸개라고 놀리기까지 했었는데 … 이제 자기가 오줌싸개가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절규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큰 일 났어요. 이제 이 사건을 아이들이 발견하면 저는 창피해서 학교도 못 올 거예요. 어떻게 좀 해 주세요.”
곧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시끌벅적해 지려는데 마침 한 여자 아이가 교실 뒤에 있던 금붕어 어항 물을 갈아 주겠다고 들고 나오다가 그 남자 아이의 책상에 부딪쳐서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그 남자 아이는 온통 물벼락을 맞고 … 다른 아이들은 서로 달려 와서 책상 주위를 걸레질을 하며 도와주었습니다. 선생님까지도 다시 오셔서 체육복을 내어 주면서 얼른 갈아입으라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오줌 싼 남자 아이는 영웅이 되고 … 어항을 들고 가던 여자 아이가 오히려 욕이란 욕을 다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바보 … 멍청이 … 칠칠치 못하게 …” 그러나 한 사람 만은 그 사건이 실수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후에 그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에게 물어 봅니다. “너 왜 그랬니?” 그 여자 아이는 그제야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응 … 나도 바지에 오줌을 싼 적이 있거든 …”
여러분 긍휼은 불쌍한 사람을 보고 참 안됐다고 느끼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닙니다. 불쌍하게 느끼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또 그러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마음이 풍성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바울이 원하는 바가 바로 이러한 마음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백성이 구원받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전도에 성공합니다. 이런 마음 가지면 교회가 아름답고 평안이 이루어집니다. 내가 욕을 먹고, 내가 화살을 받음으로서 교회가 평안해지고,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다면 이 십자가를 내가 지고 가리라. 이런 마음이 풍성하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이런 분을 지도자로 뽑아야 하고, 이런 지도자들을 키워나가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제 목회의 바람중 하나입니다.
자 이 9장이 무엇을 말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지요? 하나님의 의와 이스라엘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KEY입니다.
9-11장에 나타나는 핵심이 바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을 꼽으라면 바로 이 로마서 9장-11장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구속사에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목회자, 신학교 교수님들, 저보다 훨씬 더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한 분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제 견해가 100% 옳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무도 1Q0% 옳다고는 확신은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해석하기가 어려운 부분인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절씩 강해해 가면서 본문이 이스라엘을 행해서 무엇이라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서 눈여겨보기를 원합니다.
과연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말하고 있는지, 그러므로 가장 중심 되는 테마는 어떻게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계획에서 그의 인격 그 분의 본성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9장-11장을 전체적으로 보면 9장은 이스라엘의 과거를 다루고 있습니다. 10장은 현재 상태의 이스라엘이며 11장은 미래의 이스라엘에 대해서 일어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어떠한 관계를 맺고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9장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관계- 즉 왜 이스라엘을 모든 나라 중에서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10장에서는 하나님의 공평하심-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9장에서 하나님의 주권- 즉 자신의 기쁘신 대로 행하시고 선택하실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10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11장에 와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계속)
하나님의 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입니다.
첫 부분은 서론으로 1:1-17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왜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가? 죄 때문에( 1:18-3:20) 세 번째는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가? 구원 에 관해서(3:21-5장) 네 번째는 하나님의 의를 얻은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성화에 대해서(6장-8장)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주권과의 관계는? (9장-11장) 여섯 번째는 하나님의 의가 크리스천의 삶에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가? 우리가 구원 받고 난후에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12장-15:13) 마지막 결론 15:13-16:27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 이제 5번째 Section 인 Sovereignty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밝히면서 바울이 자신의 골육인 이스라엘의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롬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어찌된 일입니까?
8장 마지막과 9장의 시작을 보면 분위기가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8장이 창공을 나는 분위기라면 9장은 침울한 골짜기를 헤매는 분위기입니다. 바울은 바로 자신의 동족을 위한 근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좋은 것, 이 특권을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는 지금 막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아픈 것 입니다. 안타까운 것입니다.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배척한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마음입니다.
우리들은 나의 의견과 조금만 달라도 얼굴빛이 변합니다. 조금만 내게 섭섭하게 해도 벌써 적대심을 갖습니다. 어찌~~감히 네 따위가 그럴 수가 있는 거야? 그러나 이런 모습은 크리스천의 올바른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네 왼 뺌도 내 밀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오리를 가자고 억지로 끌거든 10리를 가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즉 긍휼과 자비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자신을 향하여 조롱하고 저주하는 무리를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 여든 거기서 내려와 너를 구원하라고 외치는 무리를 향하여, 자신의 남은 옷 조각을 차지하려고 제비를 뽑는 군졸들을 항하여,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바를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바울도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긍휼한 마음으로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3 학년 반의 한 남자 아이한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클래스에서 잠깐 졸다가 깨어 보니까 밑이 척척한 것이었습니다. 전에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 그런 일은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 다른 아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면 오줌싸개라고 놀리기까지 했었는데 … 이제 자기가 오줌싸개가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절규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큰 일 났어요. 이제 이 사건을 아이들이 발견하면 저는 창피해서 학교도 못 올 거예요. 어떻게 좀 해 주세요.”
곧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시끌벅적해 지려는데 마침 한 여자 아이가 교실 뒤에 있던 금붕어 어항 물을 갈아 주겠다고 들고 나오다가 그 남자 아이의 책상에 부딪쳐서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그 남자 아이는 온통 물벼락을 맞고 … 다른 아이들은 서로 달려 와서 책상 주위를 걸레질을 하며 도와주었습니다. 선생님까지도 다시 오셔서 체육복을 내어 주면서 얼른 갈아입으라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오줌 싼 남자 아이는 영웅이 되고 … 어항을 들고 가던 여자 아이가 오히려 욕이란 욕을 다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바보 … 멍청이 … 칠칠치 못하게 …” 그러나 한 사람 만은 그 사건이 실수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후에 그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에게 물어 봅니다. “너 왜 그랬니?” 그 여자 아이는 그제야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응 … 나도 바지에 오줌을 싼 적이 있거든 …”
여러분 긍휼은 불쌍한 사람을 보고 참 안됐다고 느끼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닙니다. 불쌍하게 느끼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또 그러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마음이 풍성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바울이 원하는 바가 바로 이러한 마음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백성이 구원받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전도에 성공합니다. 이런 마음 가지면 교회가 아름답고 평안이 이루어집니다. 내가 욕을 먹고, 내가 화살을 받음으로서 교회가 평안해지고,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다면 이 십자가를 내가 지고 가리라. 이런 마음이 풍성하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이런 분을 지도자로 뽑아야 하고, 이런 지도자들을 키워나가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제 목회의 바람중 하나입니다.
자 이 9장이 무엇을 말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지요? 하나님의 의와 이스라엘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KEY입니다.
9-11장에 나타나는 핵심이 바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을 꼽으라면 바로 이 로마서 9장-11장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구속사에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목회자, 신학교 교수님들, 저보다 훨씬 더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한 분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제 견해가 100% 옳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무도 1Q0% 옳다고는 확신은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해석하기가 어려운 부분인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절씩 강해해 가면서 본문이 이스라엘을 행해서 무엇이라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서 눈여겨보기를 원합니다.
과연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말하고 있는지, 그러므로 가장 중심 되는 테마는 어떻게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계획에서 그의 인격 그 분의 본성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9장-11장을 전체적으로 보면 9장은 이스라엘의 과거를 다루고 있습니다. 10장은 현재 상태의 이스라엘이며 11장은 미래의 이스라엘에 대해서 일어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어떠한 관계를 맺고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9장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관계- 즉 왜 이스라엘을 모든 나라 중에서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10장에서는 하나님의 공평하심-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9장에서 하나님의 주권- 즉 자신의 기쁘신 대로 행하시고 선택하실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10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11장에 와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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