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받는 유익함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도우심으로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33-34)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당시의 부정·부패하고 타락한 종교를 개혁하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쳐서 낙심하고 절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캄캄한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무수히 많은 별들이 금방 쏟아질 것처럼 반짝입니다. 그러나 그 별들을 받치는 기둥은 보이지 않지만, 별들이 떨어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운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자기도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고 마음에 평안함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주장하시고, 우리의 삶을 돕고 계십니다. 특별히 우리의 우리가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인간은 참으로 약한 존재입니다. 한 때 유럽을 정복했던 나폴레옹은 위대한 군인입니다. 용감한 장군 이였고 세계를 지배했던 그가 집에 돌아오면 고독감과 외로움을 이길 수 없어 부인 조세핀의 무릎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용감하고 의지가 강한 것 같은 그 사람도 인간인고로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볼 때 인간에게 가장 약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육신입니다- 옛 속성이며 옛사람입니다. - 이곳을 통해서 죄가 비집고 들어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되고 심령이 약하여 집니다. 이때 사단은 우리를 법정에 세웁니다. 그리곤 우리가 행한 죄의 목록과 증거를 제시 합니다. 보소서 이 사람이 행한 일들을..이러고도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이런 인간을 어떻게 사랑한다고 하십니까? 어떻게 이런 자들을 보호해 주십니까? 네가 이런 죄를 짓고도 네가 이런 일을 행하고도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는냐” “너는 죄를 지었으니까 이제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라고 우리를 정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우리가 행한 실수, 죄, 허물을 낱낱이 드러내 놓고 하나님 앞에 고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면목이 없어지고,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진리는 이것입니다. 바로 그때 주님이 우리의 변호 자가 되십니다. 세상에서 제일 능수능란하신 분이요. 또한 우리를 진정으로 사항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이 또한 우리 편입니다. 이건 게임이 안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있는 바울이 선포하는 말씀을 보십시오, 33-34절 말씀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지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사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부문이 참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습니까?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압니다. 우리 안에는 온갖 탐욕이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오늘도 변함없이 끊임없이 저와 여러분을 송사합니다. 정죄합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너는 거짓 신앙인이다. 너는 위선자다.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 " 사단은 이런 송사와 정죄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고 궁극적으로 주님에게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의 확신이 무엇입니까? 누가 송사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 결코 송사를 당하지만 정죄를 당하지만 그 송사가 정죄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의롭다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의인이다”라고 선언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만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변호 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요한일서 2:1절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사단이 송사하고 여러분을 정죄할 때마다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 그분이 아무도 나를 정죄할 자가 없다고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함으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46편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오직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받는 유익함은 우리의 모든 문제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믿고, 신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35-39)

우리의 신앙생활에 확신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적이 있다면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시험일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무서운 시험이 덮치면 평안할 때 가졌던 확신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35-37절 말씀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얼마나 무서운 여건입니까? 세상에서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것들이 여기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어느 것 하나도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환난]이란 이 말은 원래 로마시대에 곡식을 타작할 때 사용하던 [트리볼림]이라는 타작 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일종의 도리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땅에 곡식을 깔아놓고 도리깨로 힘껏 내리치면 곡식알들이 전부 떨어집니다. 환난은 마치 신자들을 땅에 눕혀놓고 도리깨로 내리치듯이 호되게 다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곤고]는 정신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Stress를 말합니다- 어떤 스트레스요? 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결코 생기리라곤 생각지 못한 사람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믿고 신뢰 했던 사람과 Fellowship 깨지는데서 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터질 것 같죠- 미칠 것 같은 정신적인 고통을 곤고라고 합니다.

[핍박]은 노골적인 박해입니다.

[기근]은 굶주림이요, [적신]은 헐벗음입니다.

로마 당시만 해도 예수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많은 성도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황무지로 쫓겨 갔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굶주림과 헐벗음을 견디지 못해 죽어갔습니다. 이와 같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무서운 시련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고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최악의 조건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큰 소리 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그러나 그것은 지금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절)

그는 우리의 힘으로 이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 승리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주는 사랑의 능력은 이 모든 문제를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 믿음이 꺾이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가 고난당하는 그곳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1986년 겨울, 모퉁이돌 선교회 책임자인 목사님이 중국에서 [왕명도]목사님을 만나서 취재한 간증입니다.
왕명도 목사님은 18개월 동안 감옥에 있다가 중국정부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하면 살려 주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감옥에서 나왔다가 마음의 고통 때문에 다시 감옥에 들어가서 “내가 예수를 모른다고 한 말을 취소한다”고 해서 다시 21년 3개월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그분 사모님도 15년간을 징역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81년도 석방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감옥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전도하여 구원시키고 세례를 주니까 전국에 소문이 나서 할 수 없이 여기서 세례를 주느니 나가서 세례를 주든지 하라고 해서 석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에게 이 목사님이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는 “왕 목사님이 가지고 있는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라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더 사랑할 수 있게 기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중국인들을 미워하지 않느냐”라고 질문을 하였는데 그 때 왕 목사님은 “미워할 수가 없더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기 때문이랍니다. 진정 그는 고난과 핍박에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고난과 핍박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 함께하신다는 확신 때문 이였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모든 문제들로부터 승리케 하십니다. 1974년이었습니다. 남북회담이 한창 진행될 때에 북쪽 대표들은 함흥지방을 재개발 지구로 선정해서 공사를 했습니다. 그 때 24명의 지하교인이 발각되었습니다.
그들을 지도하던 사람은 김태용 목사님이었습니다. 1974년이면 적어도 20년 이상을 숨어서 그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 온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탄압을 받은 것을 보면 더 대단했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처리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두려움을 주기 위해서 함흥 시민을 전부 모아다 놓고는 도로공사용 롤러로 깔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 때 24명의 그리스도인이 그 상황 속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어가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저들은 공사용 롤러에 깔려 죽었지만 그러나 그 환난과 핍박이 이들의 믿음의 확신을 꺾을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모든 문제로부터 승리케 하시기 위해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비극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원망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38-39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에서 아무도 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