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세대교체, 교회연합, 2세 사역, 부흥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들고 시카고 지역 목회자 40인을 만난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시카고 한인교회의 여론을 수렴하고 한인교회의 미래와 나아갈 바를 조명하고자 함이다. 40인 인터뷰는 시카고 교계의 발전을 위한, 가능한 모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세, 목회자의 교단적 배경, 목회 연수 등에 관계없는 순으로 게재된다.
서른다섯번째 인터뷰는 에버그린장로교회 한윤천 목사다. 한 목사는 친가로는 4대, 외가로는 5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다. 일제 치하인 1900년대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하며 이승만 대통령과 독립운동도 함께 한 외증조부 김득주 옹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연세대 재학 당시부터 도시산업선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이후 82년에 시카고로 유학와 맥코믹신학교에서 M.Div.를 마치고 PCUSA 목회자로 안수받았다. 인디애나 사우스밴드에 있는 노틀담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사해문서에 관한 연구로 Ph.D. 학위를 받았다.
맥코믹신학교에 다니면서 시카고 베다니교회와 한미장로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겼다. 목회자로 안수받은 이후, 미국인 아내와 함께 미국교회에서 성인부서를 맡아 섬기다 다시 한인교회로 돌아와 미드웨스트장로교회에서 EM 목회를 했다. 그후 전도사로 섬겼던 한미장로교회의 부목사를 역임한 후, 에버그린교회를 개척했다. 에버그린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모교인 맥코믹신학교의 실천신학 석좌교수로 4년간 가르쳤고 이사를 6년간 역임했다. 목회하는 동안 교회 내 분쟁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롬바드 메노나이트 피스센터(Lombard Mennonite Peace Center)에서 공부하며 분쟁조정자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목사님은 전도사, 부목사, 미국교회 목회, 한인교회 2세 목회, 1세 목회를 다양하게 경험하셨고 사해문서 연구분야로 박사를 받으신 후, 맥코믹신학교에서는 실천신학을 가르치셨는데 이력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신학 공부와 교수 활동이 목회하는 데에 어떤 연관이나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전공한 사해문서 연구는 현장 목회와는 크게 관계가 없었지만 성경을 보는 저의 관점을 넓혀 주었고 신앙의 기본 중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성경을 가르침에 있어서 성도들에게 좀더 깊은 관점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가르친 분야는 예배와 영성 분야였는데 현장목회와 매우 연관된 부분이었습니다.
-이민교회는 특히 신학과 목회의 유리 현상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신학의 부재로 인해 교회 안에 많은 문제점이 배태되어 있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신학과 목회가 유리되어선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신학관이 잘 정립된 목회자는 크건 작건 교회를 건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목회자는 교회를 성장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건강하게 하진 못합니다. 건강하지 못하게 성장한 교회는 어떤 프로그램이나 무브먼트로 모이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 프로그램이 많고 이 프로그램에 성도들을 참여시키면서 교회를 유지시켜 갑니다.
특히 이민교회는 바른 신학관과 목회관을 가진 목회자들이 목회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한인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이민신학에 관해 연구해 왔고 훌륭한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론 주류사회에 대한 반발로서의 신학에 머무른 경우도 있어 안타깝기도 합니다.
미국교회와 이민교회, 미국신학과 이민신학을 연결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민신학도 말씀에서, 한인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말씀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고백이 추상적이거나 개인적인 묵상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는 신학에 있어서도 적용되면 좋겠습니다. 이민신학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성경의 모든 구절이 다 이민신학의 길을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서를 보면 이것이 이민교회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민자들이 처한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성경적 기술 자체가 이민신학의 근간이 되어야 하는데 우린 자꾸만 이것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해서 이민신학을 주류사회로 가는 길 혹은 주류사회에 반발하는 길로 정의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예수님은 주변인으로서 오셨습니다. 우리도 미국사회에서 주변에 있습니다. 특히 소형교회 목회자들은 우리가 주변으로 성육신해 오신 예수님처럼 목회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최저생계를 유지할 사례비 받기도 어렵고 수십년째 성장하지 않는 교회에서 목회한다면 혹자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는가”라 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공생애 3년동안 확실히 그런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성육신적 목회에 더욱 자부심을 갖고 성도들도 이런 자부심으로 신앙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게 안되니 다들 성장한 교회만 찾거나 아예 윌로크릭으로 빠져 나갑니다. 그러나 대형교회로 가거나 윌로크릭으로 가도 여전히 우리는 주변인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현재 자리에만 자족하고 안주하자, 주류사회 진입을 포기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주변인으로서의 이 자리가 얼마나 복된 자리인지 깨닫길 바라는 것이고 이것이 이민신학이 가져야 할 참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이해를 현 신학교육이 제대로 감당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저는 언어상의 이유로, 혹은 문화적인 이유로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신학교에선 먼저 교회 조직에 관해 가르쳐 줍니다. 그 교회 안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일입니다. 교회에 부임해 보면 어느 교회든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가 있습니다. 부임하자마자 목회자는 매듭을 풀기 위한 분석과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포석을 두는 것입니다. 부임 직후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무하는 내내 이 문제에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예배에 관해서도 가르쳐 줍니다. 예배도 개혁해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당회와 의논하고 성도들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실험적인 예배를 통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추수감사절에 장구를 치며 고전찬양으로 예배 드렸습니다. 물론 성도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목회자들이 이렇게 실험적인 예배를 통해 연구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면 좋겠습니다. 신학교에선 이런 것을 가르쳐 줍니다.
-부임 직후부터 이뤄지는 급격한 변화나 개혁은 종종 목회자와 평신도 간의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목회자는 어느 교회로 부임해 가든지 내가 그 교회에 고용됐다는 생각을 해선 안됩니다. 고용이 아니라 청빙되어 가는 것이며, 특히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그러다 설령 쫓겨난다 하더라도 목회자로서의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생계유지 하려고 목회를 시작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제를 교회 안의 갈등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갈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또 갈등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해결을 위해서 좀더 성숙해져야 한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서로의 양보가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양보하지 않으면 누가 양보하겠나”라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새벽기도를 하고 왜 교회에 나옵니까? 서로 내려놓지 않고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와 장로가 갈등을 겪다가 결국 장로가 교회를 떠났다면 그것은 목회자가 이긴 것이 아니라 사실 진 것입니다. 갈등이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갈등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한인 2세 사역과 1세 사역을 다 해 보셨는데 한인교회 내의 2세 사역의 어려움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한인교회의 2세 사역이 발전하려면 2세 사역이 1세들에 속한 것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2세 사역을 ‘내 자녀’라는 입장에서만 봐 왔습니다. 2세들에게 충분한 자치권을 허락하고 그들이 한국적 문화를 따르지 않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먼저는 2세들이 독립적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2세 교회가 밖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2세들은 어린 시절부터 한인교회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몸으로 겪으며 성장했기에 그런 상처와 충격, 영향이 없을 수 없습니다. 1세들의 분쟁은 교회를 너무 사랑하기에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분쟁 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2세들은 그 사랑의 에너지를 교회 안으로 사용하지 말고 교회 밖으로 사용해서 사회봉사와 섬김에 노력하도록 1세들이 길을 열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 지역의 몇몇 2세 교회들이 이런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강조하신 해법들이 현실적으로 한인교회 내에 속한 2세들에게서 잘 구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개선해 가야 할까요?
아무래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목회자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일단 한인교단은 한국어가 주언어이고 미국교단도 목회자들은 한국어노회에 속해 활동하기 때문에 한국말에 서툰 2세 목회자들은 동등한 사역자로 인정받으며 함께 일할 자리가 적습니다. 이런 점에서 목회자들부터 2세 목회자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한국어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동역하려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1세들이 2세를 너무 의존적인 존재로 키운 것도 있습니다. 마치 공부를 강요당한 청소년들은 대학생이 되면 공부에서 손을 놓듯이, 교회에 다니라고 강요당한 청소년들은 대학생이 되면 신앙에서 이탈해 버립니다. 2세 사역을 성공하려면 중고등학생 때부터 교회에 기쁨을 갖고 올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숙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도록 교회가 노력을 기울여 주어야 합니다.
대부분 소형교회의 경우, EM은 유스 부서의 확장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스 부서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모이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성인 2세 목회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관심사가 다른 2세들은 교회에서 이탈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주일학교 때부터 신앙인으로서의 시각과 관점을 넓혀 주는 훈련을 해 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유스 사역에 있어서 성공할 때 2세 사역 역시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2세 사역의 문제의 시작과 끝은 지도자 양성에 있습니다. 현재 한인교회가 2세 지도자 양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민교회들이 다 영세하다 보니 학업 중인 신학생들을 파트타임 전도사로 뽑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가지 복합된 해답을 제안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1세들이 “2세 목회는 우리 것”이라는 오해를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애들은 우리 교회에서 해야 한다”는 독선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둘째로, 2세들이 연합해 교회를 세우고 풀타임 전임 사역자를 청빙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미니스트리 컨소시움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작은 교회 대여섯 곳이 모이면 2세 사역만 전담하는 준비된 목회자를 청빙할 수 있고 2세 사역의 전문성과 발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안으로 자주 제기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목회자들이 내 교회를 위한 목회를 지양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목회를 해야 하겠지요. 교회마다 특색이 있고 성도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적응하기 쉬운 교회로 가게 마련입니다. 저 교회의 성도가 우리 교회로 왔을 때 잘 돌보아 주고, 또 우리 교회 성도가 저 교회로 갔을 때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포용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에 대한 질투라든지 죄의식이 존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목회자들이 정말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뿐 아니라 당회원들이 2세 사역의 중요성과 연합된 교회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 연합을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당회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목회자의 책임입니다. 물론 목회자든, 당회원이든 이 방법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이민교회 현실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입니다.
- 에버그린교회의 2세 사역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의 2세 사역은 자생된 것이 아니라 이미 조직돼 있던 2개의 영어 목회 회중이 하나로 통합되며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담임목사인 제가 주일설교와 성경공부 인도를 2년간 해 왔지만 지금은 2세 목회자가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고 담임목사인 저는 종종 설교와 토요성경공부 혹은 친교 프로그램을 인도하곤 합니다. 가끔 아쉬운 것은 독립된 목회 시스템으로 인해 1세 회중과 2세 회중 사이에 교류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이런 모델이 우리 2세들에게는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감사한 것은 1세 회중이 2세 회중에게 오전 9시 45분이라는 좋은 주일예배 시간대를 주기 위해 본 예배를 오전 11시 30분으로 재조정한 사실입니다. 반드시 1세와 2세 간에 교류가 이루어지진 않아도 2세 회중을 위한 1세 회중의 배려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한인교회는 미국교회를 빌려 쓰며 성장해 왔습니다. 과거 에버그린교회는 파키스탄교회에 예배당을 빌려 주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배당을 빌려 줄 때 겪었던 어려움과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제가 과거에 섬겼던 어떤 한인교회에서는 남미 사람들이 교회를 빌려서 오후에 아주 활발히 예배를 드렸습니다. 반면에 또 다른 교회에서는 비슷한 인종의 교회가 교회를 빌려 쓰고자 했을 때, 당회가 거의 만장일치로 거부했습니다. 새로이 지은 교회 건물에 대한 애착과 보호심리 때문이었지요. 이민교회 치고 미국인 교회를 빌려 본 경험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또 그 경험이 다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자체 성전 확보에 열심을 기울입니다.
우리 교회도 지금의 자체 성전을 마련하기까지 두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물론 같은 노회 소속의 미국인 교회들, 또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들이 동료의식을 가지고 최선의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2002년 이곳으로 이사 온 후 파키스탄 교회에 예배와 친교의 장소를 아무런 대가없이 제공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전직 의사로서 제가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목회학 박사과정의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의 우리 교회는 어떻게 보면 영어 회중까지 세 회중이 함께 사용하기엔 모두에게 너무 공간적 제약이 많았습니다. 파키스탄 교회에 사무실도 하나 제대로 내어줄 수 없어서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웃의 같은 노회 소속 교회가 크게 교육관을 증축하고 여유로운 공간이 있다기에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상의했습니다. 그 교회의 당회 승인을 거쳐 파키스탄 교회가 더 새롭고 넓은, 그리고 자치적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교회로 이사가도록 한 것입니다. 지금도 파키스탄 교회는 에버그린교회를 은인교회라고 합니다.
멀리 선교도 가는데 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지 못하겠습니까? 물론 함께 공간을 쓰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성도들도 없진 않았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한인교회는 앞으로 좋은 건물을 지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간을 타민족들과 나누는 일에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봐야 할 것입니다.
-네. 오늘 인터뷰에 감사합니다.
서른다섯번째 인터뷰는 에버그린장로교회 한윤천 목사다. 한 목사는 친가로는 4대, 외가로는 5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다. 일제 치하인 1900년대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하며 이승만 대통령과 독립운동도 함께 한 외증조부 김득주 옹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연세대 재학 당시부터 도시산업선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이후 82년에 시카고로 유학와 맥코믹신학교에서 M.Div.를 마치고 PCUSA 목회자로 안수받았다. 인디애나 사우스밴드에 있는 노틀담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사해문서에 관한 연구로 Ph.D. 학위를 받았다.
맥코믹신학교에 다니면서 시카고 베다니교회와 한미장로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겼다. 목회자로 안수받은 이후, 미국인 아내와 함께 미국교회에서 성인부서를 맡아 섬기다 다시 한인교회로 돌아와 미드웨스트장로교회에서 EM 목회를 했다. 그후 전도사로 섬겼던 한미장로교회의 부목사를 역임한 후, 에버그린교회를 개척했다. 에버그린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모교인 맥코믹신학교의 실천신학 석좌교수로 4년간 가르쳤고 이사를 6년간 역임했다. 목회하는 동안 교회 내 분쟁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롬바드 메노나이트 피스센터(Lombard Mennonite Peace Center)에서 공부하며 분쟁조정자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목사님은 전도사, 부목사, 미국교회 목회, 한인교회 2세 목회, 1세 목회를 다양하게 경험하셨고 사해문서 연구분야로 박사를 받으신 후, 맥코믹신학교에서는 실천신학을 가르치셨는데 이력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신학 공부와 교수 활동이 목회하는 데에 어떤 연관이나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전공한 사해문서 연구는 현장 목회와는 크게 관계가 없었지만 성경을 보는 저의 관점을 넓혀 주었고 신앙의 기본 중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성경을 가르침에 있어서 성도들에게 좀더 깊은 관점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가르친 분야는 예배와 영성 분야였는데 현장목회와 매우 연관된 부분이었습니다.
-이민교회는 특히 신학과 목회의 유리 현상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신학의 부재로 인해 교회 안에 많은 문제점이 배태되어 있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신학과 목회가 유리되어선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신학관이 잘 정립된 목회자는 크건 작건 교회를 건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목회자는 교회를 성장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건강하게 하진 못합니다. 건강하지 못하게 성장한 교회는 어떤 프로그램이나 무브먼트로 모이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 프로그램이 많고 이 프로그램에 성도들을 참여시키면서 교회를 유지시켜 갑니다.
특히 이민교회는 바른 신학관과 목회관을 가진 목회자들이 목회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한인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이민신학에 관해 연구해 왔고 훌륭한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론 주류사회에 대한 반발로서의 신학에 머무른 경우도 있어 안타깝기도 합니다.
미국교회와 이민교회, 미국신학과 이민신학을 연결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민신학도 말씀에서, 한인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말씀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고백이 추상적이거나 개인적인 묵상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는 신학에 있어서도 적용되면 좋겠습니다. 이민신학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성경의 모든 구절이 다 이민신학의 길을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서를 보면 이것이 이민교회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민자들이 처한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성경적 기술 자체가 이민신학의 근간이 되어야 하는데 우린 자꾸만 이것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해서 이민신학을 주류사회로 가는 길 혹은 주류사회에 반발하는 길로 정의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예수님은 주변인으로서 오셨습니다. 우리도 미국사회에서 주변에 있습니다. 특히 소형교회 목회자들은 우리가 주변으로 성육신해 오신 예수님처럼 목회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최저생계를 유지할 사례비 받기도 어렵고 수십년째 성장하지 않는 교회에서 목회한다면 혹자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는가”라 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공생애 3년동안 확실히 그런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성육신적 목회에 더욱 자부심을 갖고 성도들도 이런 자부심으로 신앙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게 안되니 다들 성장한 교회만 찾거나 아예 윌로크릭으로 빠져 나갑니다. 그러나 대형교회로 가거나 윌로크릭으로 가도 여전히 우리는 주변인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현재 자리에만 자족하고 안주하자, 주류사회 진입을 포기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주변인으로서의 이 자리가 얼마나 복된 자리인지 깨닫길 바라는 것이고 이것이 이민신학이 가져야 할 참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이해를 현 신학교육이 제대로 감당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저는 언어상의 이유로, 혹은 문화적인 이유로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신학교에선 먼저 교회 조직에 관해 가르쳐 줍니다. 그 교회 안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일입니다. 교회에 부임해 보면 어느 교회든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가 있습니다. 부임하자마자 목회자는 매듭을 풀기 위한 분석과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포석을 두는 것입니다. 부임 직후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무하는 내내 이 문제에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예배에 관해서도 가르쳐 줍니다. 예배도 개혁해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당회와 의논하고 성도들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실험적인 예배를 통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추수감사절에 장구를 치며 고전찬양으로 예배 드렸습니다. 물론 성도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목회자들이 이렇게 실험적인 예배를 통해 연구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면 좋겠습니다. 신학교에선 이런 것을 가르쳐 줍니다.
-부임 직후부터 이뤄지는 급격한 변화나 개혁은 종종 목회자와 평신도 간의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목회자는 어느 교회로 부임해 가든지 내가 그 교회에 고용됐다는 생각을 해선 안됩니다. 고용이 아니라 청빙되어 가는 것이며, 특히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그러다 설령 쫓겨난다 하더라도 목회자로서의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생계유지 하려고 목회를 시작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제를 교회 안의 갈등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갈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또 갈등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해결을 위해서 좀더 성숙해져야 한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서로의 양보가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양보하지 않으면 누가 양보하겠나”라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새벽기도를 하고 왜 교회에 나옵니까? 서로 내려놓지 않고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와 장로가 갈등을 겪다가 결국 장로가 교회를 떠났다면 그것은 목회자가 이긴 것이 아니라 사실 진 것입니다. 갈등이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갈등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한인 2세 사역과 1세 사역을 다 해 보셨는데 한인교회 내의 2세 사역의 어려움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한인교회의 2세 사역이 발전하려면 2세 사역이 1세들에 속한 것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2세 사역을 ‘내 자녀’라는 입장에서만 봐 왔습니다. 2세들에게 충분한 자치권을 허락하고 그들이 한국적 문화를 따르지 않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먼저는 2세들이 독립적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2세 교회가 밖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2세들은 어린 시절부터 한인교회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몸으로 겪으며 성장했기에 그런 상처와 충격, 영향이 없을 수 없습니다. 1세들의 분쟁은 교회를 너무 사랑하기에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분쟁 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2세들은 그 사랑의 에너지를 교회 안으로 사용하지 말고 교회 밖으로 사용해서 사회봉사와 섬김에 노력하도록 1세들이 길을 열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 지역의 몇몇 2세 교회들이 이런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강조하신 해법들이 현실적으로 한인교회 내에 속한 2세들에게서 잘 구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개선해 가야 할까요?
아무래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목회자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일단 한인교단은 한국어가 주언어이고 미국교단도 목회자들은 한국어노회에 속해 활동하기 때문에 한국말에 서툰 2세 목회자들은 동등한 사역자로 인정받으며 함께 일할 자리가 적습니다. 이런 점에서 목회자들부터 2세 목회자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한국어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동역하려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1세들이 2세를 너무 의존적인 존재로 키운 것도 있습니다. 마치 공부를 강요당한 청소년들은 대학생이 되면 공부에서 손을 놓듯이, 교회에 다니라고 강요당한 청소년들은 대학생이 되면 신앙에서 이탈해 버립니다. 2세 사역을 성공하려면 중고등학생 때부터 교회에 기쁨을 갖고 올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숙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도록 교회가 노력을 기울여 주어야 합니다.
대부분 소형교회의 경우, EM은 유스 부서의 확장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스 부서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모이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성인 2세 목회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관심사가 다른 2세들은 교회에서 이탈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주일학교 때부터 신앙인으로서의 시각과 관점을 넓혀 주는 훈련을 해 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유스 사역에 있어서 성공할 때 2세 사역 역시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한윤천 목사는 2세 사역의 지도자 양성과 관련해 미니스트리 컨소시움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
이민교회들이 다 영세하다 보니 학업 중인 신학생들을 파트타임 전도사로 뽑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가지 복합된 해답을 제안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1세들이 “2세 목회는 우리 것”이라는 오해를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애들은 우리 교회에서 해야 한다”는 독선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둘째로, 2세들이 연합해 교회를 세우고 풀타임 전임 사역자를 청빙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미니스트리 컨소시움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작은 교회 대여섯 곳이 모이면 2세 사역만 전담하는 준비된 목회자를 청빙할 수 있고 2세 사역의 전문성과 발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안으로 자주 제기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목회자들이 내 교회를 위한 목회를 지양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목회를 해야 하겠지요. 교회마다 특색이 있고 성도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적응하기 쉬운 교회로 가게 마련입니다. 저 교회의 성도가 우리 교회로 왔을 때 잘 돌보아 주고, 또 우리 교회 성도가 저 교회로 갔을 때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포용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에 대한 질투라든지 죄의식이 존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목회자들이 정말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뿐 아니라 당회원들이 2세 사역의 중요성과 연합된 교회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 연합을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당회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목회자의 책임입니다. 물론 목회자든, 당회원이든 이 방법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이민교회 현실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입니다.
- 에버그린교회의 2세 사역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의 2세 사역은 자생된 것이 아니라 이미 조직돼 있던 2개의 영어 목회 회중이 하나로 통합되며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담임목사인 제가 주일설교와 성경공부 인도를 2년간 해 왔지만 지금은 2세 목회자가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고 담임목사인 저는 종종 설교와 토요성경공부 혹은 친교 프로그램을 인도하곤 합니다. 가끔 아쉬운 것은 독립된 목회 시스템으로 인해 1세 회중과 2세 회중 사이에 교류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이런 모델이 우리 2세들에게는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감사한 것은 1세 회중이 2세 회중에게 오전 9시 45분이라는 좋은 주일예배 시간대를 주기 위해 본 예배를 오전 11시 30분으로 재조정한 사실입니다. 반드시 1세와 2세 간에 교류가 이루어지진 않아도 2세 회중을 위한 1세 회중의 배려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한인교회는 미국교회를 빌려 쓰며 성장해 왔습니다. 과거 에버그린교회는 파키스탄교회에 예배당을 빌려 주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배당을 빌려 줄 때 겪었던 어려움과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제가 과거에 섬겼던 어떤 한인교회에서는 남미 사람들이 교회를 빌려서 오후에 아주 활발히 예배를 드렸습니다. 반면에 또 다른 교회에서는 비슷한 인종의 교회가 교회를 빌려 쓰고자 했을 때, 당회가 거의 만장일치로 거부했습니다. 새로이 지은 교회 건물에 대한 애착과 보호심리 때문이었지요. 이민교회 치고 미국인 교회를 빌려 본 경험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또 그 경험이 다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자체 성전 확보에 열심을 기울입니다.
우리 교회도 지금의 자체 성전을 마련하기까지 두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물론 같은 노회 소속의 미국인 교회들, 또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들이 동료의식을 가지고 최선의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2002년 이곳으로 이사 온 후 파키스탄 교회에 예배와 친교의 장소를 아무런 대가없이 제공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전직 의사로서 제가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목회학 박사과정의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의 우리 교회는 어떻게 보면 영어 회중까지 세 회중이 함께 사용하기엔 모두에게 너무 공간적 제약이 많았습니다. 파키스탄 교회에 사무실도 하나 제대로 내어줄 수 없어서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웃의 같은 노회 소속 교회가 크게 교육관을 증축하고 여유로운 공간이 있다기에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상의했습니다. 그 교회의 당회 승인을 거쳐 파키스탄 교회가 더 새롭고 넓은, 그리고 자치적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교회로 이사가도록 한 것입니다. 지금도 파키스탄 교회는 에버그린교회를 은인교회라고 합니다.
멀리 선교도 가는데 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지 못하겠습니까? 물론 함께 공간을 쓰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성도들도 없진 않았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한인교회는 앞으로 좋은 건물을 지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간을 타민족들과 나누는 일에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봐야 할 것입니다.
-네. 오늘 인터뷰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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