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처음 만난 건 큰 아이가 6살 때. 월남전쟁 기계공으로 간 남편은 몇년이 흘러도 소식이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아이들 등록금은 밀리고, 점점 안좋아지는 극한 상황에서 나를 부르셨다.”

상항순복음교회 성가대, 상항노인선교회 성가대 등 찬양하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서순연 집사(상항순복음교회)를 만났다. 평생 소원은 “남은 생(生) 하나님께 찬양드리다 가는 것”이라는 서 집사.

없는 형편에 매주 다른 곳에서 나눠주는 배급음식으로 이웃을 섬기고, 중동교회건축을 위해 기부하고, ‘손자가 목사님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기도제목도 냈다. 사후(死後)에는 몸 전부를 기증한다는 장기기증 서약서도 썼다. 무엇이 서 집사를 이런 향기나는 신앙의 삶으로 이끌었을까. 그녀에게 고통 속에서 만나주신 하나님 이야기와 현재 헌신의 삶 이야기를 함께 들어봤다.

▲연예인 시절 서순연 집사(오른쪽). 연예인 당시 김금순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출중한 외모와 일반인과 조금 다른 인상을 가졌는 데, 아니나 다를까 왕년에는 연예인이었다고 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부잣집에 양딸로 자라다 갑자기 집이 망하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고아로 자란 서 집사는 예쁜 외모와 노래 재주를 가지고 김금순이라는 연예인으로 활동했다. 아버지를 찾은 후 성(性)이 서 씨인 것을 알게됐고, 성(性)이 다른 이름을 하나 더 가지게 됐다는 서 집사는 결혼 후 겪은 사연도 쏟아내듯 이야기했다.

남편이 버렸지만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주님을 처음 만난 건 큰 아이가 6살 때. 월남전쟁 기계공으로 간 남편은 몇년이 흘러도 소식이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아이들 등록금은 밀리고, 연예인 일거리는 떨어지는 겨울, 극한 상황에 처한 나를 부르셨다.”

연예인 생활을 하며 만났던 남편은 월남전쟁 때 기계공으로 파송됐지만 편지 한장 없이 연락이 끊겼다. 이후 알게된 사실이지만 월남에서 따로 가정을 차렸기 때문이라고. 한국에서 아들 두명을 데리고 어렵게 어렵게 가정을 꾸리게 된 서 집사. 그녀는 “아이 둘을 데리고 이사를 말도 못하게 다녔다”고 했다. 한번은 무속인 집에 세를 들게됐는 데 그 곳에서 무당을 해야한다고 다그치는 통에 쫓기듯 다른 집을 찾았다. 그러던 중 자신을 교회로 인도한 전도사님을 알게됐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전혀 모르고 처음으로 전도사님을 따라 교회에 갔다. 기도하라고 하면 하고, 성경책을 펴라고 하면 펴고, 그러다 집에 왔는 데 갑자기 몸이 십자가 모양으로 고정돼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전도사님을 불렀고 교회사람들이 다 같이 와서 기도하고 찬양하니까 몸이 풀렸다.”

“교회에 처음가던 날 꿈을 꿨는 데 옛날 집 천장 반이 갈라졌는 데 한 쪽에서는 새들이 짹짹거리는 꽃밭으로 매우 평화롭고, 다른 한 쪽은 구렁이가 몸을 감아 혀를 낼름 낼름 거렸다. 원래 안 믿었던 사람이라서 교회로 가려니까 그렇게 무서운 것들도 함께 나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주님이 보이신 신실한 기도응답

그후 교회에 다니게 됐다. 하나님을 믿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지만 상황이 단번에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여전히 소식이 없고, 집에는 먹을 것도 없고, 아이들 등록금은 점점 밀려가는 상황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겨울에는 일이 없던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더욱 생활고로 시달리던 시절. 쌀이 없으면 쌀을, 반찬이 없으면 반찬을 가져다 주던 그 전도사님이 등록금을 위해 3일 금식을 해 보라고 권했다.

서 집사는 “눈 딱 감고 3일 금식을 했다. 딱 3일째 되던 날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소식이 끊겼던 남편이 월남에서 등록금만큼 생활비를 보내온 것이다. 그녀는 “그 때부터 하나님께 더 바짝 가고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십일조는 그때부터 하게 됐다”고 했다.

서 집사는 기도하면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많이 체험했다. “물구나무 서기를 좋아하던 손자가 자정이 다 돼가는 늦은 시간에 척추뼈가 나와 고통을 호소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기도 밖에 없었다. 울음이 북받혀서 엉엉 울며 ‘손자 녀석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라’고 무릎꿇고 기도했다.” 그리고 손자들은 잠이 들었고, 서 집사는 새벽기도에 다녀왔다. “새벽기도에 다녀왔는 데, 손자 녀석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이불에서 쏙 나오며 ‘할머니 왔어?’했다. 주님께서 고쳐주신 것이다.”

그 외에도 딸 사위가 해준 반지알을 잊어버려 간절히 기도한 후 새벽기도 때 찾은 일도 있었다.

‘받은 은혜 너무 크기에…’ 나누는 사랑

▲서 집사의 평생소원은 “하나님께 갈 때까지 찬양하며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순연 집사는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주를 위한 일을 날마다 찾아가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새벽기도회에 매일 출석하며 마이크를 셋팅하는 즐거움, 노인아파트 절기행사에는 꼭 참석해 공연하며 봉사하는 즐거움, 구제품을 구해다가 없는 분들을 위해 가져다 주는 즐거움, 무료배급을 여러 군데서 받아다가 주변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즐거움이다. 서 집사 자신도 무료배급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다.

“무료배급해주는 데가 한군데가 아니라서 좀 멀더라도 가져다가 나눠주면 즐겁다. 거동이 불편한 이웃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나 자신도 배급을 타서 먹지만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을 위해 하기 시작했다. 금요일에는 교회와 한인회에서 받고, 목요일에는 저 너머 길가에서 받고, 화요일날은 산넘어 저기서 받고…” 자신도 넉넉치 않은 형편이지만 돕는 일에 이렇게 마음을 쓰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기에…’ 이다.

얼마 전에는 중동 교회건축을 위해 2천불을 헌금한 적이 있다. “건축된 교회에 ‘손자들이 목사님 되게 해 주시라’고 기도제목도 보냈다. 그 교회에서도 나를 위해 늘 기도한다고 하니 이보다 더 감사할 수 없는 일.”

또 서 집사는 사후(死後) 몸 전체를 필요한 사람에게 주겠다는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평생 소원은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찬양하는 것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기 좋아하는 서 집사에게도 꿈이 있다. 바로 “하나님께 갈 때까지 찬양하며 가는 것”이다. 그동안 신실하게 응답하신 그 분처럼 하나님께 한 약속은 꼭 지킨다는 서 집사는 “한 때, 하나님 앞에 풍금을 치면서 찬양을 배우다가 다른 길로 빠진 적이 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온 후 하나님께 약속을 했는 데 ‘찬양으로 주일을 섬기겠습니다’였다. 그래서 꼭 찬양대에 선다. 하와이를 가더라도 성가대에 꼭 선다. 아마 가는 날까지 기쁨으로 성가대에 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