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솔로몬은 지나간 모든 왕들보다 훨씬 뛰어난 명성을 가진 왕이 됐다.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또한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다.

10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좋아하는 일은 다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은 어디를 가야겠으니 캐딜락을 가져와라, 그거 타고 가야겠다. 에쿠스를 가져와라, 이번에는 벤츠를 가져와 봐라, 아니다. BMW가 낫겠다’ 등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솔로몬 왕은 자기 눈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막지 않았다고 했다. 어떤 삶을 살고 싶든지 어떤 사람과 살아보고 싶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했다는 말이다.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 솔로몬은 그래도 수고를 했다고 한다. 노력을 해서 그렇게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왕의 지위를 이용하여 권력으로 불로소득한 것이 아니라 자기도 무엇인가 노력을 해서 얻었음을 말하고 있다.

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그런데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다고 했다. 이렇게 수고한 사람이 다 헛되다고 말을 하면 정말 헛된 것이다. 1장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전도서는 솔로몬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다. 솔로몬이 인생을 경험하고 그 인생에서 느낀 허무함을 탄식하며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이유는 이 책의 이름인 ‘전도서’가 설명해 준다. 하나님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화와 부귀와 지혜를 누린 사람 하나를 들어서 “너 그 맛이 어떤지 한 번 이야기해 보아라, 다 해보니까 어떤지 말해보아라” 하신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이 그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한 것이다. 그것을 통해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해 아래서 한 일은 다 공허한 것이고 하나님만이 참이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려고 기록된 성경이 전도서라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주는 것이다. “아, 나의 인생이 결국은 다 헛된 것이란 말인가” 하고 말이다. 아직도 그것들(세상의 쾌락, 명예, 권력, 부귀 등)이 대단한 줄로 알고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미련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얻으라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주는 책이다. 꼭 솔로몬처럼 직접 겪어보아야 아는 것이 아니다(사실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만큼 겪지도 못한다). 솔로몬이 1000가지를 누렸다면 그 중의 0.1퍼센트 정도를 누려보려고 애쓰다가 “아이고, 헛되구나” 하면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리석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을 주셔서 겪어보지 않아도 모든 것이 헛됨을 깨닫도록 하신 것이다. 솔로몬은 누구에게 부담이 많은가? ‘젊은이들’이요, ‘아들’이다. 잠언에도 아들에게 하는 말이 많다. “아들아, 내가 인생을 살아보니까 다 헛된 것이다. 너는 그런 것을 탐닉하지 말아라.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 알겠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해야 지혜로운 아들인데 “아닙니다. 나도 한번 아버지처럼 다 해봐야겠습니다”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아들이다. 결론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의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꼬 행한지 오랜 일일 뿐이리라 13 내가 보건대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두움보다 뛰어남 같도다 14 지혜자는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두움에 다니거니와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15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던고 이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1장에서도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지혜를 많이 얻는 것도 헛되다고 한다. 지혜가 우매한 것보다 나은 것은 빛이 어두움보다 나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일을 하는 과정과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모르면서 무조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내가 예전에 한 단체를 떠날 때 ‘여기에서는 아무리 일해도 소득이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이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지식으로만 알기 원하지 결코 순종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관념과 사고가 한쪽으로 강하게 굳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더 이상 그곳에서 사역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생각한 것이 아니라 몇년을 생각한 후에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내가 나온 그때부터 거기서 사역을 시작해보려고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젊을 때 직장에서 어떤 회사가 부도가 나는 것을 봤다. 큰 유통회사였다. 그런데 지혜로운 어떤 회사의 사장님은 벌써 부도난 회사의 정보를 입수하고 일찍 그 사장을 접촉해 자기 물건을 다 빼고 돈 받을 것도 다 챙겨놓고, 내가 일하던 회사에 와서 한 잠을 자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 부도난 회사에서 돈을 다 챙겨서 나오는데 자기 한 경쟁사는 오히려 물건을 그 망한 유통회사에 납품하려고 한 차를 싣고 가더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지혜가 있는 사람이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사람이 참 여러 가지다’라고 생각했다.

지혜가 있다는 것은 일의 결국을 안다는 이야기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조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과 결국을 알면서 일을 한다. 그런데 우매하다는 것은 그쪽으로 가면 꽉 막힌 곳이고 출구가 없는데도 그리로 차를 몰고 가는 것을 말한다.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던고 이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15절)”. 그런데 솔로몬은 여기서 지혜있는 사람도 나중에 가서는 우매자가 당한 것과 똑같은 일을 당하니 지혜가 있는 것도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중에 세월이 오래 지나고 나서 보니 그때 지혜롭게 행한 회사도 망하고 그 어리석게 행한 회사도 망했다. 오랜 후에 보니 그거나 저거나 다 마찬가지가 되더라는 것이다.

16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또 솔로몬이 말하기를 인생을 지혜롭게 살았지만 결국은 다 죽는다는 것이다. 죽은 다음에는 다 잊어버리더라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는 사람들이 이름도 기억해 주고 의미있게 느껴지지만, 그가 죽고 나서는 그에 대한 말도 없어지고 ‘그런 사람이 과연 존재했었는가’ 할 정도로 다 잊어버린다. 지혜롭게 산 것이나 어리석게 산 것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라고 이야기한다.

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는 영어로는 사는 것을 미워했다(I hated life)는 뜻이다(So I hated life, because the work that is done under the sun was grievous to me).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그래서 이 전도자는 사는 것이 한탄스럽다고 했다.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일이 괴로움 뿐이고 헛되고 바람잡는 것 뿐이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무엇을 하든지 헛되고 괴로움 뿐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체험으로 말한 것이니 믿을만 하다. 하나님은 이러한 헛된 인생에 대해서 그분이 직접 영감을 내리시어 말씀하시지 않고 솔로몬 같은 지혜와 부귀의 왕을 들어서 체험케 한 후에 간증식으로 말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성경 중 하나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직접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지식도 쾌락도 부귀도 다 헛된 것이니 그런 줄 알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솔로몬 같은 사람을 들어서 그렇게 말하게 하신 것이 매우 재미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이런 성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전도자를 사용하시어 사람들로 인생의 결국과 허무를 알게 하도록 도우신 것이다.

유동근 목사는

대전고, 충남대·대학원
Pacific Theological Seminary(Th.M, D.D)
온누리선교교회 담임목사, 美 퍼시픽 신학교 교수
국제선교신학원(IMC) 학장
現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연합총회 총회장
Fuller Theological Seminary D.Min GM Course
저서: 모세오경, 마태복음, 요한복음, 로마서, 서신서, 요한계시록 등 강해서(총 33권)

저자는 1991년부터 몇몇 동역자들과 함께 몽골,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네팔, 미얀마, 에디오피아, 잠비아, 이태리,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선교를 주로 해온 선교사이며 복음전도자다. 위에서 소개되는 선교일기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지금도 매년 저자와 그 일행은 일년에 한 번 이상 세워진 교회를 순방하며 진리의 말씀을 공급하고, 교회를 굳게 세우며 전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