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여행길 해는 저물었고 배는 고프고 목이 마르고 10시간이상 운전하다 보니 지쳤다. 어디에서 하루 밤을 잘 생각을 하면서 길가에 있는 호텔의 빈 방을 찾았다. 보이는 붉은 싸인 마다 빈 방이 없다는 것이다.(No vacancy ). 아무리 long weekend 라고 해도 너무하다고 푸념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호텔들이 밉기도 했다. 할 수 없이 다음 Exit로 빠져 나가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처음 미국 생활의 아픈 한 토막의 추억이다. 지금부터 2000 여 년 전 유대 땅 나사렛 동네에 요셉 이라는 예비 신랑은 예비 신부인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인 베들레헴에 호적하려 멀고 먼 길을 떠났다. 여러 날 걸려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금처럼 자동차나 기차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귀를 타고 먼 길을 갔으니 그 피곤을 짐작 할 수 있다. 더욱이 마리아는 만삭 된 몸이 아닌가! 한 시간이라도 빨리 쉴 수 있는 방을 찾는 것이 급한 일이었다.
그런데 가는 곳 마다 만원사례다. 동정을 얻으려고 마리아는 불쑥 올라 온 배를 보이며 하루 밤을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냉정하게 가는 곳 마다 거절을 당했다. 밤은 점점 깊어 가고 갈 곳은 없고 몸은 지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 때 마음씨 착한 한 농부가 딱한 그들의 사정을 보고 자기집 외양간에서 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 안에는 짐승들의 배설물과 그 밑에 깔린 지푸라기가 같이 어우러져 썩어서 올라오는 냄새는 코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추운 밤 밖에서 떨고 있는 것 보다는 났다고 생각해서 한쪽 구석에서 눈을 불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웬 일이냐! 그 날 밤 마리아는 심한 진통을 겪으면서 결국 그 곳에서 아기 예수를 낳았다. 아빠는 아기를 담요에 싸서 옆에 있는 차디찬 말구유에 누였다.
이 아기의 탄생은 이 세상을 새로 개혁하고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엄청난 사건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성경학자들은 분명히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태어 날것을 선지자들의 예언을 책으로 읽고 알고 있었으나 지식으로 알고 있었지 진작 구세주가 오셨을 때는 몰랐다. 그 동네 사람이나 여관 주인들은 더욱 몰랐다.
여기에 인간의 한계를 느낀다. 아기 예수는 하나님의 외아들로써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만민의 구세주로 오셨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려고 어린 아기로 오셨다. 이 오묘하고 놀라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과 별을 연구하는 동방 박사들 그리고 성전에서 봉사 하던 시므온과 안나 정도였다.
여기에서 인간은 두 가지 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보통 사람들로써 자기와 자기 가족들의 의식주를 해결 하는데 전전 긍긍하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헤매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형의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 내가 배고프면 다른 사람도 배고프다는 것을 알고 먹을 것이 생기면 조금씩이라도 나누어 먹는다. 들에 예쁜 꽃을 보면 그 것을 꺾어다 자기 집에 두고 혼자 보고 싶은 생각을 접고 오히려 그 꽃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모두가 같이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밝아지고 살맛이 있어진다. 또 그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 관심이 많다
즉 바람을 볼 수 없으나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그 원리를 찾는다. 해가 뜨고 지고 초승달이 망월이 되었다가 다시 작아지는 자연 법칙이 한 치의 착오도 없이 돌아가는 것이 우연이 아니고 볼 수 없는 신의 손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런 형의 사람들은 개혁을 하고 창조를 하고 신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일에 열중한다.
독실한 권사 할머니는 일생동안 예수님과 결혼 했다고 생각하고 혼자 봉사하며 살았다. 하루는 이런 기도를 드렸다. “예수님 제가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제 생일에 예수님을 모시고 싶으니 꼭 와 주십시오” “그래 내가 가겠다”
할머니는 그 날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를 했다. 아침부터 저녁 때 까지 문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주님 너무 하십니다. 약속을 왜 안 지키십니까” 하자 “내가 갔으나 네가 문전 박대 해서 그냥 돌아 왔다.” “언제요? 온 사람이라고는 절름발이 거지 가 왔다 간 것 뿐입니다” “그래 그가 나였단다”
예수님은 때에 따라 아기로 거지로 나그네로 또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신다. 문제는 우리들이 누구에게나 사랑으로 대 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 2000년 전의 아기 예수가 태어날 방이 없어 오줌똥으로 썩은 냄새가 나는 외양간에서 나시듯 오늘도 들어오실 방이 없어 추운 겨울밤 문 밖에서 떨고 계시게 하는지 생각게 한다.
연락처) 650-610-9303
처음 미국 생활의 아픈 한 토막의 추억이다. 지금부터 2000 여 년 전 유대 땅 나사렛 동네에 요셉 이라는 예비 신랑은 예비 신부인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인 베들레헴에 호적하려 멀고 먼 길을 떠났다. 여러 날 걸려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금처럼 자동차나 기차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귀를 타고 먼 길을 갔으니 그 피곤을 짐작 할 수 있다. 더욱이 마리아는 만삭 된 몸이 아닌가! 한 시간이라도 빨리 쉴 수 있는 방을 찾는 것이 급한 일이었다.
그런데 가는 곳 마다 만원사례다. 동정을 얻으려고 마리아는 불쑥 올라 온 배를 보이며 하루 밤을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냉정하게 가는 곳 마다 거절을 당했다. 밤은 점점 깊어 가고 갈 곳은 없고 몸은 지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 때 마음씨 착한 한 농부가 딱한 그들의 사정을 보고 자기집 외양간에서 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 안에는 짐승들의 배설물과 그 밑에 깔린 지푸라기가 같이 어우러져 썩어서 올라오는 냄새는 코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추운 밤 밖에서 떨고 있는 것 보다는 났다고 생각해서 한쪽 구석에서 눈을 불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웬 일이냐! 그 날 밤 마리아는 심한 진통을 겪으면서 결국 그 곳에서 아기 예수를 낳았다. 아빠는 아기를 담요에 싸서 옆에 있는 차디찬 말구유에 누였다.
이 아기의 탄생은 이 세상을 새로 개혁하고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엄청난 사건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성경학자들은 분명히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태어 날것을 선지자들의 예언을 책으로 읽고 알고 있었으나 지식으로 알고 있었지 진작 구세주가 오셨을 때는 몰랐다. 그 동네 사람이나 여관 주인들은 더욱 몰랐다.
여기에 인간의 한계를 느낀다. 아기 예수는 하나님의 외아들로써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만민의 구세주로 오셨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려고 어린 아기로 오셨다. 이 오묘하고 놀라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과 별을 연구하는 동방 박사들 그리고 성전에서 봉사 하던 시므온과 안나 정도였다.
여기에서 인간은 두 가지 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보통 사람들로써 자기와 자기 가족들의 의식주를 해결 하는데 전전 긍긍하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헤매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형의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 내가 배고프면 다른 사람도 배고프다는 것을 알고 먹을 것이 생기면 조금씩이라도 나누어 먹는다. 들에 예쁜 꽃을 보면 그 것을 꺾어다 자기 집에 두고 혼자 보고 싶은 생각을 접고 오히려 그 꽃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모두가 같이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밝아지고 살맛이 있어진다. 또 그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 관심이 많다
즉 바람을 볼 수 없으나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그 원리를 찾는다. 해가 뜨고 지고 초승달이 망월이 되었다가 다시 작아지는 자연 법칙이 한 치의 착오도 없이 돌아가는 것이 우연이 아니고 볼 수 없는 신의 손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런 형의 사람들은 개혁을 하고 창조를 하고 신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일에 열중한다.
독실한 권사 할머니는 일생동안 예수님과 결혼 했다고 생각하고 혼자 봉사하며 살았다. 하루는 이런 기도를 드렸다. “예수님 제가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제 생일에 예수님을 모시고 싶으니 꼭 와 주십시오” “그래 내가 가겠다”
할머니는 그 날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를 했다. 아침부터 저녁 때 까지 문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주님 너무 하십니다. 약속을 왜 안 지키십니까” 하자 “내가 갔으나 네가 문전 박대 해서 그냥 돌아 왔다.” “언제요? 온 사람이라고는 절름발이 거지 가 왔다 간 것 뿐입니다” “그래 그가 나였단다”
예수님은 때에 따라 아기로 거지로 나그네로 또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신다. 문제는 우리들이 누구에게나 사랑으로 대 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 2000년 전의 아기 예수가 태어날 방이 없어 오줌똥으로 썩은 냄새가 나는 외양간에서 나시듯 오늘도 들어오실 방이 없어 추운 겨울밤 문 밖에서 떨고 계시게 하는지 생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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