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기 전 일이다. 어머니가 하시던 포목점은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과 같은 곳이었다. 당시 많은 할머니들이 어머니를 부러워하면서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절대로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지 마세요”라는 말이었다. 이는 자식들에게 다 주고 나니깐 별 볼일이 없다는 것을 피부로 경험한 할머니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였다. 세상이 악하고 무섭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이제는 부모, 자식 간에도 이 정도로 각박해졌다면 이런 세상은 뒤집어져야 할 것이다. 재산이 없는 부모들이 외롭고 한 맺힌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런 세상은 하늘인들, 땅인들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위의 이야기 주인공인 할머니들은 또 다른 재산이 생기면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자녀들에게 또 줄 분들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어머니들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내게 직접 들려주신 이야기이다. 어느 분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에게 천덕꾸러기 외아들이 있었는데 뒤늦게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 왔다. 돌아가신 분이 평소에 동네 사람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었기에 많은 조객들이 찾아 문상하면서 부조를 했는데 장례식 아침에 부의금을 챙겨 가지고 달아났다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차가운 시체로 관에 모셔져 있는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 같으니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짐승만도 못한 천하의 불효자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어머니이다. 그 속상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원통함과 아들의 흉을 말하기 시작했나보다. 포목점 하는 내 어머니에게도 찾아와서 평소 아들의 못나고 흉한 것까지 늘어놓는데 차마 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아무래도 XX 엄마가 친엄마가 아닌 것 같아" 하시는 것이었다. 이유는 자기가 난 사랑하는 자식이라면 오히려 자식의 부끄러움이 세상에 알려질까봐 오히려 쉬쉬하며 자기 가슴에 묻어둘 텐데, 어머니라고 하는 사람이 자기가 배 아파 난 자식을 어떻게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수 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느 선배목사님에게 당신이 직접 눈으로 목격한 현대판 고려장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 사는 어느 못된 자식 내외가 제주도에다 말 못하고 다리가 불편한 늙은 어머니를 버리고 달아났다. 버려진 할머니는 제주도에 있는 어느 교회를 통해서 선배목사가 섬기고 있는 서울요양원으로 옮겨졌다. 어떻게 해서든 할머니 집을 찾아주려고 선배목사님을 비롯한 직원들이 무진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1년 여 시간이 지났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벙어리가 아닌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름과 주소를 말하게 되면 아들이 처벌과 망신을 당하게 될 것 같아 철저하게 벙어리 행세를 한 것이었다. 지금도 아들과 관계된 질문에는 어떤 말도 하지 않기에 이제는 다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만이 천국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 할머니를 제일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경 곳곳에서도 사랑은 허다한 허물과 죄를 덮는다고 했다(잠10:12, 벧전4:8, 약5:20).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고 우리 어머니들의 심정일진데 부디 다시 한 번 그 사랑을 헤아려 마음껏 효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