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이나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시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광우병 파동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수입을 허가한 신임 정부, 그리고 이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시위! 세계 축제의 한마당인 중국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시위와 폭력사태! 숨 막히는 미국 민주당 대통령 경선 과정! 또한 오스트리아 한 시골에서 딸을 20여 년간 성폭행한 친아버지 경악스런 사건! 누구 말이 옳은지, 어떤 기사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조차 판단하기 힘든 '시끄러운' 세상을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던 중 지난주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인터넷(자료제공: 네이버)에 올라왔습니다. "홈런치고 쓰러진 타자, 상대팀이 도와 홈인~" 기사 제목이 흥미로워서였는지 들어가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New York Times와 ABC News, ESPN 등이 모두 다룬 기사이기도 합니다. 기사의 현장은, 미국 대학 여자 소프트볼 북서부 예선전이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2회말 웨스턴 오리건 대학이 공격을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0:0 상황에서, 주자를 두 명 둔 가운데서 웨스턴 오리건 대학의 새라 투콜스키가 타석에 등장했습니다. 새라는 올해 33번 타석에 나와서 고작 2개의 안타만을 때린 소위 '솜방망이' 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녀가 34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낸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장외홈런을 말입니다. 새라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흥분을 해서였을까요? 껑충껑충 뛰다가 1루 베이스를 제대로 밟지 않고 지난간지라, 다시 1루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돌아서던 과정에서 발을 접질러 넘어지고 맙니다. 새라는 쉽게 일어서지 못합니다. 잠시 후 그녀는 간신히 기어서 1루까지 가게 됩니다. 같은 팀 선수들이 그녀가 움직이도록 도우면 아웃이 되는 상황입니다. 소프트볼 규정상, 홈런을 친 타자도 꼭 홈 베이스를 밟아야 득점이 인정되기에, 심판은 대신 뛸 주자를 세우면 새라의 1루 진출까지는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즉 새라의 홈런으로 3점을 얻게 되었지만, 새라가 홈을 밟지 못한다면, 2점만 인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 속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장면이 나타납니다. 상대팀(센트럴 워싱턴 대학) 의 1루수 맬러리 홀트먼이 유격수 리즈 월러스와 함께 '적군'이었던 새라를 돕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심판은 상대 선수가 돕는 것은 소프트볼 규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이를 허용했습니다. 맬러리와 리즈는 새라를 들어 2루, 3루, 홈베이스로 이동, 다치지 않은 왼쪽 다리로 그녀가 베이스를 밞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에 3점을 얻은 오리건 대학은 결국 4대 2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맬러리는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외 홈런을 친 새라가 득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여 돕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번 홈런은 새라의 생애 첫 홈런이었으며 그녀가 이번 봄경기를 마지막으로 졸업하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훈훈한 소식에 감동이 더해졌다.

우리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밟고 일어나야 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남을 비판하고, 정확한 전후 사정도 살펴보지 않고 채 상대방을 판단해 버리며, (이미 해결된) 과거에 잘못까지도 중죄인 양 서로 들춰내야만 속이 시원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이런 일들이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벌어집니다. 자신만이 옳다며 서로 정죄하는 모습, 남은 아파하는데 난 아무렇지도 않고, 남은 고통가운데 쓰러져 있는데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우리들의 모습이 없다고 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접하게 된 이 기사는 제 마음을 따뜻하게 그리고 뜨겁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실 쓰러져 있는 상대팀 선수를 보면서, 그냥 놔두었어도 손가락질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홈런을 치고도 1루에 머물러 있는 상대팀 선수를 보며 맬러리는 측은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 마음은 진실된 마음이었기에 그 짧은 순간에 맬러리는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상대팀 선수를 안아서 옮겨줘야겠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저는 여기서, 사랑한다면 생각하게 된다는 중요한 원리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을 사하여 주시고 생명으로 옮기신 위한 일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공의 또한 저버리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죄의 노예가 된 우리를 사탄의 손에서 합법적으로 건져내시기 위해, 독생자를 대신 십자가에 내어주실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 독생자의 모습에 하나님 당신이 돌아가실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즉 이 말은 나를 위해 늘 '생각'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정죄하실 생각이 아니라, 나를 용서해주실 생각, 나를 더 강하게 이끄실 생각, 내가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생각, 죄로 멀어진 나를 품어줄 생각, 아버지 당신의 사랑을 어떻게 전해주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먹고 사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그런 하나님께 우리 모두 이렇게 고백해보기를 원합니다.

"사랑해요 하나님! 나를 향한 주님의 생각이 이렇게 많고 이렇게 아름답고 눈물겨운지 오늘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말밖에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이제 그 사랑을 내가 실천하시길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습니다. 나도 남을 사랑하며 즉 남을 사랑할 방법을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 속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시40: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