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부터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았습니다. 크게 들뜰 정도는 아니었지만, 따뜻한 봄 날 오후면, 마실 나가던 옛 어른들 마음처럼 가벼운 흥분마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기분 좋을 만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으며, 일상이 눈에 뜨이게 달라진 것도 없었는데, 하루에도 여러 번이나 상큼한 기분이 생겼습니다. 축 늘어졌던 어깨도 다소 반듯해졌고, 사무실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에도 윤기가 났습니다. 그저 봄 날의 은혜인가보다 생각하고 다녔습니다. 엊그제 차를 타기 전까지는…

자동차 안 쪽에 가방을 던져 넣고 앉아 시동을 걸면서야 기분 좋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몇 일 전 오일 체인지를 하러 갔다가 공짜로 준 표를 이용해 세차를 했습니다. 보너스로 하는 세차라 그런지 겨우 밖을 먼지를 씻어내 주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겨우내 눈길 위에 뿌렸던 제설, 제빙용 소금으로 온통 하얗게 되었던 차가 새로 산 차처럼 깨끗해 졌습니다.이왕 내킨 김에 더러워진 차 안을 청소했습니다. 동전용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 내고, 여기 저기 자리에 널려 있던 쓰레기들을 정리해서 버렸습니다. 교회에 돌아와서는 주자장에 세워둔 채로 한 동안 창을 닦았습니다. 차 안이 환해졌으며 좋은 냄새도 났습니다. 그 후 내내 기분이 좋았던 것입니다.

참으로 길었던 시카고의 겨울, 그 끝 자락에서 겨울을 털어 내는 세차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사실 이번 시카고의 겨울은 유난히도 눈 오는 날이 많았고, 적설량도 많았습니다. 새벽부터 잿빛 구름 낀 하늘을 보거나 온 땅을 뒤 덮은 눈 더미를 보는 날이 많았습니다. 제설 차량이 집 앞에 밀어 둔 눈은, 앞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언덕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오는 눈은 녹을 겨를이 없었고, 매섭게 부는 바람은 그 눈을 얼음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상가 주변이나 큰 백화점들의 주차장에는 굳게 입 다문 얼음 덩어리들은 점점 검정 덩어리들로 변해갔으며, 아직까지 보기 흉한 몰골로 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겨울에는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평소에 적은 목소리로 대답해도 되는 아이들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답하는 일이 늘어 났었고, 무엇 하나 사러 들린 가게 계산대에 줄이 길게 늘어졌으면 왜 다른 계산대를 오픈 하지 않는가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답니다. 겨울 눈과 기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저마다 이번 겨울처럼 견디기 힘든 적이 없었다며, 각자의 경험을 쏟아 놓는데, 정말이지, 겨울이 조금 만 더 길었다면, 다들 난폭해졌거나(?) 아니면 타 주로 이사 갈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하루에 몇 시간 타지 않는 자동차인데도, 세수해 주고, 때를 벗겨주며, 얼굴에 향수를 발라 주니 운전하는 당사자의 기분이 좋았다면, 차 뿐 아니라, 사람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지를 털고 묶은 때를 벗겨 내듯 한 번 크게 씻어낸다면,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습니다. 병에 담가 둔 물이 오래 되면 침전물이 생기는 것처럼, 오래 믿어서, 또한 익숙해져서 생긴 내 영혼의 침전물을 걷어 내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겨울]을 몰아내면 [봄]은 함께 사는 사람에게 찾아 옵니다. 먼저 깨닫고, 먼저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겨울]을 몰아내 주면 됩니다. 그 시작은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낼 것이며, 세상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저 골목 모퉁이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세차하러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돌아올 때면, 길었던 나의 겨울을 씻어 내리고 화사한 모습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속에서 버선 발로 뛰어 나오는 영혼의 봄을 한껏 보듬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