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성경교재 제작차 7월까지 시카고에 머물고 있는 이능성 선교사를 만났다. 이 선교사는 나이지리아 선교사로 한국 SIM 초대 대표로 사역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1990년 우리 부부는 나이지리아에 파송되면서 빌리리에서 신학교 사역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차츰 신학생들을 말씀과 기도로 무장시켜 오지 마을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5인용 승용차에 14인치 텔레비전과 비디오 플레이어, 소형 발전기와 몇 가지 도구들을 싣고 달려 예수 영화 등을 상영하면 전도하는데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러다 이 선교사는 '현지인 선교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현지인 선교사란 대개 학력이 낮은 성경학교 졸업생인데 졸업 후 오지에 배치되어 몇 년 동안 아무런 재훈련 없이 지내게 되면서 사명감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농부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부터 영화 상영 장소를 현지인 선교사가 있는 오지로 정해서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자 먼저는 현지인 선교사들을 재무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 영화를 보러 모인 많은 사람들 중 결신자가 나오면 선교사들에게 맡겨 계속 양육하게 하니 교인들이 부쩍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나이지리아와 챠드에 42개 교회 개척하다
처음에는 그저 현지인 선교사 가족과 몇 명만이 나무 그늘을 지붕삼아 예배를 드리던 곳이, 이 선교사가 찾아와 사람이 부쩍 늘어나게 되면 옥수수대를 엮어 지붕을 올리고 나무 기둥을 그럴싸하게 받쳐 교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수차례 재방문하는 가운데 나중에는 교인들이 힘을 합쳐 흙벽돌을 쌓아 튼튼한 예배당을 세우는 일이 계속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이지리아와 주변국 챠드까지 42개 교회가 세워졌다.
94년 8월 첫번째 안식년이 찾아왔다. 이 선교사는 빌리그래함 센타가 있는 휘튼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아내 서재옥 선교사는 기독교교육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특히 이 선교사는 1년만에 석사과정을 마치고는 트리니티에서 선교학 박사 과정을 시작, 폴 히버트 박사의 지도 아래 '아프리카 문화속에서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주제로 연구해 선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이 선교사는 이런 학문적 배움과 첫 번 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인 선교사를 훈련시켜 나이지리아 국내 뿐 아니라 주변 나라까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한다는 목표를 정확히 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번째 텀은 우선 나이지리아 북쪽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하우사 언어를 배우는 것으로 시작됐다. 당시 이 선교사는 오지의 현지인 선교사를 방문해 이들과 함께 예수 영화를 보여주면서 전도를 하고 1주일 정도 함께 지내면서 똑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동화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자 자연스레 하우사 언어로 설교가 가능하게 되었고 마침 4륜구동 차가 생기면서 오지 선교사역은 더욱 활기를 띄었다. 또한 서 선교사가 선교사 자녀학교 교사로 섬기게 되면서 처음으로 세 자녀와 함께 한 집에서 단란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
"모두가 효진이입니다"
그러던 중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97년 10월 나이지리아 중북부 조스에서 13세의 효진이가 교통사고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된 것. "하나님께 너무한다고, 이번에는 실수하셨다고 대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견뎠지만 이번만은 못 참겠다고 울부짖으면서 말이죠." 효진이는 그렇게 동양인으로는 처음이자 가장 어른 나이로 SIM 선교사 공동묘지에 묻혔다.
절망 속에 신음했지만 이들 부부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음성을 듣고 나서 다시금 마음을 추스린다. "하루는 효진이가 있는 묘지를 찾아가다 차창 밖에 걸어가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을 보면서 '효진이만 없다'며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그때 '네가 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게는 효진이란다. 너는 잠시 후면 천국에서 다시 효진이를 볼 수 있지만 나는 오늘도 수많은 내 자식을 잃고 있단다'하시는 음성을 듣고 나서야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다. 아프리카 사람 모두가 이 선교사 부부에게는 효진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길 가다 무장강도를 만나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나서 이 선교사는 현지인 선교사를 위한 훈련센터를 짓기로 결심한다. 현지인 선교사에게 필요한 것이 재훈련인데 이를 위해서는 함께 훈련할 수 있는 센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 남녀 기숙사와 강의실 그리고 2개의 샤워장, 여기에 초청 강사를 위한 방까지 만들었다. 또 4천평 대지 곳곳에는 꽃밭과 과일나무도 심어뒀다.
하지만 공사가 결코 말처럼 순조롭지는 않았다. 건기가 6개월 이상 계속되는 땅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샤워장과 여기에 각종 꽃과 과일나무까지 가꿀 수 있다는 사실은 꿈만 같은 얘기였다. 땅을 아무리 파고 다이너마이트로 바위를 뚫어도 물길이 보이지 않자 한 동안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1년에 반은 건기인 나이지리아에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나이지리아를 찾은 카나다 물 공사 전문가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수원지를 찾고 여기서 나오는 물의 양을 측정하는 것의 전문가로 그의 도움으로 일대 수원지를 찾아 마침내 물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사실 이 물공사야말로 아프리카에서 꼭 필요한 기술 중 하나다. 특히 전기나 발전기의 도움으로 우물물을 끌어올려 내보내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외부 동력없이 중력만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을 흘려보내 한곳에 모아 정수시킨 다음 깨끗한 물만 파이프를 통해서 흘러가게 하는 기술이라서 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훈련센타는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기적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이 물이 플라스틱 탱크에 하루 종일 저장되어 있다가 한낮의 열기를 받아 저녁에 샤워를 할 시간이면 알맞은 온도로 데워져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 물이 대지를 적시면서 선교센타 일대에 꽃이 피고 과일나무가 주렁주렁 열리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근 회교마을의 요청으로 똑같이 물공사를 해주자 그 동안의 적대적인 태도와 위협이 모두 사라졌다. 덩달아 회교지도자와 몇몇 주민들이 비밀리에 찾아와 주님을 믿겠다고 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아프리카 모든 부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그 날이 오길
이 선교사는 계시록 7장 9절에 나오는 요한이 본 환상을 자신의 비젼으로 삼고 있다. 곧 각 나라와 백성 족속과 방언에서 이루 셀 수 없는 수많은 구원받은 무리가 하늘나라 보좌 앞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날 말이다.
현재 아프리카 부족의 경우 나아지리아 445개 부족을 비롯해 가나 105, 니제르 25, 차드 130, 카메룬 286개 부족이 각기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어 복음 전파가 매우 느린 상황이다.
이 선교사는 이런 아프리카의 현실 앞에서 현지 선교사를 세우고 현지 교회와 신학대와 동력하는 가운데, 나이지리아에서 아프리카 전역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전 부족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종국에는 모슬렘 지역까지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1990년 우리 부부는 나이지리아에 파송되면서 빌리리에서 신학교 사역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차츰 신학생들을 말씀과 기도로 무장시켜 오지 마을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5인용 승용차에 14인치 텔레비전과 비디오 플레이어, 소형 발전기와 몇 가지 도구들을 싣고 달려 예수 영화 등을 상영하면 전도하는데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러다 이 선교사는 '현지인 선교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현지인 선교사란 대개 학력이 낮은 성경학교 졸업생인데 졸업 후 오지에 배치되어 몇 년 동안 아무런 재훈련 없이 지내게 되면서 사명감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농부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부터 영화 상영 장소를 현지인 선교사가 있는 오지로 정해서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자 먼저는 현지인 선교사들을 재무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 영화를 보러 모인 많은 사람들 중 결신자가 나오면 선교사들에게 맡겨 계속 양육하게 하니 교인들이 부쩍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나이지리아와 챠드에 42개 교회 개척하다
▲옥수수대로 지붕을 엮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교인들. | | |
처음에는 그저 현지인 선교사 가족과 몇 명만이 나무 그늘을 지붕삼아 예배를 드리던 곳이, 이 선교사가 찾아와 사람이 부쩍 늘어나게 되면 옥수수대를 엮어 지붕을 올리고 나무 기둥을 그럴싸하게 받쳐 교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수차례 재방문하는 가운데 나중에는 교인들이 힘을 합쳐 흙벽돌을 쌓아 튼튼한 예배당을 세우는 일이 계속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이지리아와 주변국 챠드까지 42개 교회가 세워졌다.
94년 8월 첫번째 안식년이 찾아왔다. 이 선교사는 빌리그래함 센타가 있는 휘튼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아내 서재옥 선교사는 기독교교육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특히 이 선교사는 1년만에 석사과정을 마치고는 트리니티에서 선교학 박사 과정을 시작, 폴 히버트 박사의 지도 아래 '아프리카 문화속에서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주제로 연구해 선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이 선교사는 이런 학문적 배움과 첫 번 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인 선교사를 훈련시켜 나이지리아 국내 뿐 아니라 주변 나라까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한다는 목표를 정확히 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번째 텀은 우선 나이지리아 북쪽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하우사 언어를 배우는 것으로 시작됐다. 당시 이 선교사는 오지의 현지인 선교사를 방문해 이들과 함께 예수 영화를 보여주면서 전도를 하고 1주일 정도 함께 지내면서 똑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동화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자 자연스레 하우사 언어로 설교가 가능하게 되었고 마침 4륜구동 차가 생기면서 오지 선교사역은 더욱 활기를 띄었다. 또한 서 선교사가 선교사 자녀학교 교사로 섬기게 되면서 처음으로 세 자녀와 함께 한 집에서 단란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
"모두가 효진이입니다"
그러던 중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97년 10월 나이지리아 중북부 조스에서 13세의 효진이가 교통사고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된 것. "하나님께 너무한다고, 이번에는 실수하셨다고 대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견뎠지만 이번만은 못 참겠다고 울부짖으면서 말이죠." 효진이는 그렇게 동양인으로는 처음이자 가장 어른 나이로 SIM 선교사 공동묘지에 묻혔다.
▲효진이가 누워있는 무덤이다. 각 무덤마다 사연이 너무 많다고. | | |
절망 속에 신음했지만 이들 부부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음성을 듣고 나서 다시금 마음을 추스린다. "하루는 효진이가 있는 묘지를 찾아가다 차창 밖에 걸어가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을 보면서 '효진이만 없다'며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그때 '네가 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게는 효진이란다. 너는 잠시 후면 천국에서 다시 효진이를 볼 수 있지만 나는 오늘도 수많은 내 자식을 잃고 있단다'하시는 음성을 듣고 나서야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다. 아프리카 사람 모두가 이 선교사 부부에게는 효진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길 가다 무장강도를 만나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나서 이 선교사는 현지인 선교사를 위한 훈련센터를 짓기로 결심한다. 현지인 선교사에게 필요한 것이 재훈련인데 이를 위해서는 함께 훈련할 수 있는 센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 남녀 기숙사와 강의실 그리고 2개의 샤워장, 여기에 초청 강사를 위한 방까지 만들었다. 또 4천평 대지 곳곳에는 꽃밭과 과일나무도 심어뒀다.
하지만 공사가 결코 말처럼 순조롭지는 않았다. 건기가 6개월 이상 계속되는 땅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샤워장과 여기에 각종 꽃과 과일나무까지 가꿀 수 있다는 사실은 꿈만 같은 얘기였다. 땅을 아무리 파고 다이너마이트로 바위를 뚫어도 물길이 보이지 않자 한 동안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1년에 반은 건기인 나이지리아에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나이지리아를 찾은 카나다 물 공사 전문가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수원지를 찾고 여기서 나오는 물의 양을 측정하는 것의 전문가로 그의 도움으로 일대 수원지를 찾아 마침내 물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선교센타에서 훈련을 마치고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가졌다. | | |
사실 이 물공사야말로 아프리카에서 꼭 필요한 기술 중 하나다. 특히 전기나 발전기의 도움으로 우물물을 끌어올려 내보내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외부 동력없이 중력만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을 흘려보내 한곳에 모아 정수시킨 다음 깨끗한 물만 파이프를 통해서 흘러가게 하는 기술이라서 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훈련센타는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기적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이 물이 플라스틱 탱크에 하루 종일 저장되어 있다가 한낮의 열기를 받아 저녁에 샤워를 할 시간이면 알맞은 온도로 데워져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 물이 대지를 적시면서 선교센타 일대에 꽃이 피고 과일나무가 주렁주렁 열리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근 회교마을의 요청으로 똑같이 물공사를 해주자 그 동안의 적대적인 태도와 위협이 모두 사라졌다. 덩달아 회교지도자와 몇몇 주민들이 비밀리에 찾아와 주님을 믿겠다고 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아프리카 모든 부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그 날이 오길
이 선교사는 계시록 7장 9절에 나오는 요한이 본 환상을 자신의 비젼으로 삼고 있다. 곧 각 나라와 백성 족속과 방언에서 이루 셀 수 없는 수많은 구원받은 무리가 하늘나라 보좌 앞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날 말이다.
현재 아프리카 부족의 경우 나아지리아 445개 부족을 비롯해 가나 105, 니제르 25, 차드 130, 카메룬 286개 부족이 각기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어 복음 전파가 매우 느린 상황이다.
이 선교사는 이런 아프리카의 현실 앞에서 현지 선교사를 세우고 현지 교회와 신학대와 동력하는 가운데, 나이지리아에서 아프리카 전역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전 부족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종국에는 모슬렘 지역까지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능성 선교사 가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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