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기독일보) 시애틀 십자가교회 이진호 목사
(Photo : 기독일보) 시애틀 십자가교회 이진호 목사

오늘 주일예배를 마친 후, 저는 8년간 살아온 곳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합니다. 멀리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익숙한 동네 안에서 삶의 자리를 조금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곳에서 8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이사는 저에게 짐을 옮기는 일 이상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집 안 구석구석에는 지난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역지들을 옮겼고, 딸 둘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아버지들이 돌아가셨고, 그 무시무시했던 팬데믹을 지났습니다. 기쁨으로 웃던 날도 있었고 마음 무거운 밤도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한 일상의 순간들,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던 시간들, 말없이 견뎌야 했던 날들도 그곳에 쌓여 있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집을 상자에 담다 보니, 산다는 것이 결국 수많은 시간을 쌓아 가는 일인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사는 공간을 옮기는 일이지만, 동시에 삶을 돌아보는 기회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의 신앙생활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환경에 머무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를 새로운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익숙한 고향을 떠났고,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에 머물렀느냐'보다, '누구를 신뢰하며 걸어갔느냐'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고 증언합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알고 출발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다음 걸음을 내딛는 순종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자리를 떠나는 일이 있을 때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의 안전은 익숙한 환경에 있는지, 아니면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께 있는지?

물론, 모든 이사가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상의 변화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고 우리의 마음을 살피며 그분 앞에서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하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이라고 합니다.

이번 이사를 통해 저 역시 지난 8년을 감사로 돌아보고, 앞으로 주어질 시간을 믿음으로 준비하고자 합니다. 떠나는 집에 대한 감사는 그곳에 머무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새로운 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도 삶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이사를 경험합니다. 어떤 분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어떤 분은 관계의 변화를 겪고, 또 어떤 분은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익숙했던 것이 달라질 때 어색함과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먼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주소는 바뀔 수 있지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바뀌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있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느냐입니다. 새로운 자리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