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았다, 마음에 담았다, 다시 살폈다, 교훈을 얻었다.

산길을 걷다 보면 한때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 풀과 덩굴에 덮여 사라진 듯 보일 때가 있다. 길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돌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한 번 무성해진 잡초는 다른 잡초를 불러들이고, 작은 틈은 어느새 큰 무너짐으로 이어진다.
잠언 24장에서 솔로몬은 게으른 사람의 밭과 지혜 없는 사람의 포도원을 바라본다. 가시덤불이 온 밭을 덮고, 잡초가 땅을 차지했으며, 돌담은 무너져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풍경이었겠지만 솔로몬은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교훈을 얻는다.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잠언 24:32)
이 짧은 구절을 읽으며 나는 솔로몬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보았다. 마음에 담았다. 다시 살폈다. 그리고 교훈을 얻었다. 남의 밭을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풍경을 자기 삶의 거울로 삼은 것이다.
남의 삶을 구경하는 것과 남의 삶에서 배우는 것은 다르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무너진 담장을 보며 손가락질하기보다 자신의 담장부터 살핀다.
타샤 튜더의 정원을 떠올렸다. 나는 《타샤의 정원》을 비롯한 책들을 오래도록 좋아했다. 그녀의 정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풍경이 아니었다. 시든 꽃을 잘라내고, 마른 잎을 정리하고, 물을 주고, 꽃 하나하나를 살피는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정원이었다. 꽃이 피지 않는 날에도 정원사는 정원을 돌본다. 어쩌면 정원을 가꾸는 일은 꽃이 피는 순간보다 꽃이 피기까지의 시간을 사랑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매일 작은 것들을 돌보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내가 옷을 오래 입는 것을 신기해한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입는데도 새 옷처럼 관리하느냐고 묻는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입고 돌아오면 그냥 옷장에 걸어두지 않는다. 먼저 살펴보고 필요한 부분은 애벌빨래를 한다. 해지거나 풀린 곳이 있으면 꿰매고, 깨끗하게 정리해 다시 제자리에 둔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신발의 구석구석을 수세미로 닦는다. 흙과 먼지를 털어내고 충분히 말린 뒤 신발장에 넣는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트렁크를 그냥 보관하지 않는다. 짐을 풀고 나면 가방을 살펴 바퀴까지 깨끗하게 닦는다. 흠집이 난 곳은 손보고, 얼룩이 묻은 곳은 걸레로 닦아낸다. 그렇게 정리한 트렁크를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다음 여행을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여행을 위해 미리 돌보는 셈이다.
오래 입고, 오래 신고, 오래 사용하는 비결은 결국 사용한 뒤에 있다. 물건을 아끼는 마음은 살 때보다 돌아온 뒤에 더 잘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작은 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습관이 시간이 지나면 큰 차이를 만든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이보다 더 섬세하다. 모든 식물에 같은 양의 물을 주어서도 안 되고, 물을 주지 않은 채 견디게 해서도 안 된다. 식물마다 필요한 물의 양이 다르고, 물을 주어야 할 때도 다르다. 적당한 양을 적당한 시기에 준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여행을 떠날 때도 미리 정원의 상태를 살피고 물 줄 일을 챙겨야 한다. 집을 비우는 동안 식물들이 어떻게 지낼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택에 산다는 것도 이런 불편함을 함께 사는 일이다. 손이 많이 가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고, 때로는 쉬러 가는 여행조차 떠나기 전부터 챙길 일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 번거로움을 하나씩 정리하는 일에서도 즐거움을 배운다. 흙을 만지고, 잎을 살피고, 계절에 맞춰 집 안팎을 정돈하는 일. 그것이 내가 선택한 생활의 방식이다.

새벽묵상
(Photo : 새벽묵상)

말씀을 묵상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나는 성경을 매일 조금씩 읽는다. 한꺼번에 많은 분량을 읽고 지나가기보다 단원을 나누어 읽고, 한 구절도 쉽게 넘기지 않으려 한다.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기록하고, 다시 들여다본다. 한 편의 칼럼을 쓰는 데 하루 세네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깊어지는 믿음은 없다. 매일 들여다보고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삶에 뿌리를 내린다.
그렇다면 지금 내 삶의 밭은 어떤 모습일까?
믿음의 담장은 튼튼한가.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지 않은가. 재정의 경계는 무너지지 않았는가. 건강의 담장은 안전한가 가족과 뽑아낼 거친풀은 없는가
제법 쌀쌀한 요즘
여름 내내 햇볕과 비바람에 시달린 집 안팎도 살펴야 할 때다. 여름옷을 정리하고 겨울패딩을 꺼내며, 미뤄 두었던 집 안의 작은 수리도 시작해야 한다. 작은 보조 주방에 쌓인 물건들도
정리해야 한다.
물론 모든 무너짐이 게으름 때문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예상하지 못한 비바람이 있고, 아무리 애써도 지켜 내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집에 족제비가 올 줄은 몰랐고. 너구리가 올 줄도 몰랐다. 그런 일은 살면서 몇 번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돌볼 수 있는 것을 계속 방치하는 일과,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은 구분해야 한다. 내게 주어진 것을 살피고 가꾸는 책임까지 놓아서는 안 된다.
솔로몬은 남의 밭을 보며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훈계를 얻었다. 그 지혜는 남의 밭을 평가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기 삶을 살피는 데서 완성된다.

정원에는 물을 주어야 하는 날도 있고, 물을 주지 않고 기다려야 하는 날도 있다. 꽃을 피우려는 마음이 앞서 물을 지나치게 주면 뿌리가 상하고, 조금만 더 견디게 하려다 보면 잎이 시든다. 돌본다는 것은 무조건 더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차리는 일이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더 애써야 할 때가 있고, 잠시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손을 대어 고쳐야 할 곳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시간을 주어야 하는 곳도 있다. 지혜는 그때를 알아보는 눈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계절은 저절로 바뀌지만 정원의 모습은 저절로 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자리에는 그 사람의 시간이 남는다. 봄이 오면 꽃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긴 겨울 동안 흙을 고르고, 마른 가지를 걷어 내고, 물의 양을 헤아리며 기다려 온 시간도 함께 피어난다.
솔로몬이 남의 밭에서 자기 삶의 교훈을 발견했듯, 나도 오늘 내 주변의 풍경을 다시 바라본다. 내 삶의 정원은 누군가 대신 가꾸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돌보고 있으며, 무엇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을까.
오늘 나는 다시 바라보려 한다.
보고, 마음에 담고, 다시 살피고,
그 안에서 내 삶을 위한 교훈을 얻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