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적 결혼관과 성 윤리를 공개적으로 밝혀 핀란드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파이비 래새넨(Päivi Räsänen) 핀란드 국회의원 겸 전 내무장관이 이번에는 영국 입국을 제한받으면서, 유럽에서 기독교적 신념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hristian Today)가 22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래새넨은 이달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복음주의 기독교 행사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직접 연설할 예정이었으나 영국 전자여행허가(Electronic Travel Authorisation·ETA)가 취소되면서 현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래새넨은 지난 6월 ETA를 승인받았지만 7월 들어 허가가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그는 뱅고어 월드와이드 선교대회와 연계된 ‘공적 영역에서의 신앙(Faith in the Public Square)’ 행사에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이번 입국 제한을 두고는 북아일랜드 정치권의 압력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크리스천 인스티튜트(Christian Institute)에 따르면, 래새넨이 북아일랜드 자치의회인 스토몬트 의사당에서 열리는 행사에 초청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얼라이언스당(Alliance Party) 소속 의원들이 그의 참석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얼라이언스당 대표이자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법무장관인 나오미 롱(Naomi Long)은 에드윈 푸츠(Edwin Poots) 의회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래새넨의 참석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초청 철회를 요구했다.
롱은 래새넨의 견해가 스토몬트에서 발언 기회를 얻는 것은 “의회의 명예를 실추시킬 것”이라며, 북아일랜드 주민 모두를 동등하게 대표해야 한다는 의회의 역할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소속 누알라 맥알리스터(Nuala McAllister) 의원도 의사당이 “결코 편견의 확성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얼라이언스당은 90석 규모의 북아일랜드 자치의회에서 17석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래새넨이 핀란드에서 받은 형사 판결이 있다.
핀란드 대법원은 지난 3월 래새넨이 2004년 자신이 속한 교회를 위해 작성한 소책자에서 결혼과 성에 관한 전통적인 기독교적 견해를 밝힌 것과 관련해 ‘혐오 발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함께 소책자를 출판한 루터교 주교 유하나 포욜라와 핀란드 루터 재단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래새넨이 성경 구절을 인용해 올린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이 유지됐다.
래새넨 측은 해당 판결이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국제 얼라이언스 디펜딩 프리덤(Alliance Defending Freedom International·ADF)의 지원을 받아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에 제소한 상태다.
래새넨은 영국의 입국 제한 역시 핀란드에서 내려진 유죄 판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동맹국인 유럽 국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치인인 나의 입국을 영국이 막았다는 것은 충격적”이라며 “나는 기독교적 견해를 평화롭게 표명했다는 이유로 핀란드에서 ‘혐오 발언’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부당한 유죄 판결이 현재 유럽인권재판소에 항소 중임에도 영국은 아마도 이를 근거로 나의 여행 허가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기본적 인권을 행사한 나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래새넨은 샤바나 마흐무드(Shabana Mahmood) 영국 내무장관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고 정식 방문 비자도 신청했지만 행사 전까지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법에 따라 외국인의 업무 목적 입국 허용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진 내무장관에게 “이 검열을 되돌릴 시간이 아직 있다”며 개입을 요청했지만, 결국 현장 참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ADF도 이번 사안을 단순한 출입국 문제를 넘어 표현과 종교의 자유에 관한 문제로 보고 영국 정부를 비판했다.
ADF의 로르칸 프라이스 변호사는 “마흐무드 내무장관은 래새넨이 북아일랜드 행사에 직접 참석할 수 있도록 즉각 조치해야 한다”며 영국 정부가 계속 침묵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ADF의 크리스틴 왜고너 대표도 “영국이 다른 국가의 강압적인 검열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입국 제한 철회를 촉구했다.
함께 유죄 판결을 받은 포욜라 주교 역시 영국 입국이 제한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 국가에서 종교 소책자를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고 다른 국가에서는 여행 제한까지 받는 상황을 “오웰적인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포욜라 주교는 “결혼과 성에 관한 전통적인 기독교적 견해를 평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에 이번 사안을 다룬 글을 기고한 전 영국국교회 사제이자 복음주의 언론인 줄리안 만(Julian Mann)은 래새넨의 입국 제한이 기독교적 성 윤리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문제를 둘러싼 영국 사회의 긴장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래새넨 사건은 핀란드에서 시작된 ‘혐오 발언’ 논쟁이 영국의 출입국 결정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전통적인 기독교적 신념의 표현이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지를 둘러싼 유럽 내 논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