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회(査經會)를 개최하다(1916)

앞에서 언급했듯이 장로교 공의회 차원에서도 현지 지도자 양성의 필요를 절감切感하고 있던 때라 그들을 양육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사경회였다. 남장로교 내한 선교부에서도 1906년 1월 군산지부에서 처음으로 사경회를 시도한 이래 해마다 각 지부를 돌아가면서 개최하자 지역교회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하위렴이 미국에서 돌아와 다시 부임한 그 이듬해(1916)에도 마침 군산에서 중사경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도 그는 사경회를 기획하고 전체적인 운용을 지휘했다. 그해 중사경회 참가 인원은 남성이 230명, 여성이 75명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일단 참가자들은 본인의 등록비와 먹을 양식 그리고 오고 가는 여비는 물론 자신이 집을 비우는 동안 부양가족의 생계까지도 미리 챙겨두어야만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사경회 참가자들의 열성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사경회에 참가하고 싶어도 이러한 경비를 감당치 못해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참가자들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원근 각처에서 달려와 겸손한 자세로 임했으며 시작하는 첫날부터 새벽기도로 시작해 사경회의 일정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사경회 첫날부터 참석자 전원이 참석하는 뜨거운 새벽 기도회를 비롯해 모든 순서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참석자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서 사경회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평양에서 강사로 참석한 스왈론(W. L. Swallon) 박사가 남자반을 맡아 그들을 6개 반으로 나누어 하루에 3시간씩 10일간에 걸친 성경공부를 이끌었으며, 여자반은 그래함(Graham)과 미세스 파커(Mrs. Parker) 선교사가 맡아 15명씩 5개 반으로 나누어 하루에 3시간씩 10일 동안 진행했다.

저녁 모임은 주로 참가자 토론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주로 교회가 당면한 문제나 가정예배 실천요령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거나 주일학교 사역과 운용에 있어서 개선점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사경회 도중에도 그들은 1,022일의 날 연보(복음서를 출판하는 일에 헌신할 주중의 날 수)를 작정하기도 했다.

사경회 종료식이 있는 마지막 날에는 으레 교인 수 비례 참가자가 가장 많은 교회를 선정해 따로 시상施賞을 함으로써 다음 사경회의 참가를 독려했으며 참석자 전원이 촬영된 사진 액자와 기념 현수막은 그해 가장 많은 참가자를 보낸 교회가 수상受賞한다는 예고에 따라 해당 교회에 상으로 주었는데 해마다 사경회가 거듭되면서 교회별로 기념 현수막을 쟁취하기 위한 열띤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다음 해에 열리는 사경회 준비를 위해 성경 문제를 숙제로 내주고, 참가하고자 하는 자는 한 해 동안 미리 성경을 읽으며 기도로 준비하도록 했다. 이듬해 사경회에 참석할 때 답을 적어 제출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작년에 내준 마가복음 시험문제는 답을 제출한 참석자 가운데 네 사람만 만점을 맞았는데 그들에게도 따로 푸짐한 시상을 했다. 금년에는 누가복음을 숙제로 주어 다음 사경회 때까지 풀어오도록 했다.

마가복음에 대한 질문(군산지부에서 열린 중사경회에서)

1. 마가는 예수님을 보았는가?
2. 마가복음에는 얼마나 많은 비유가 있는가?
3. 마가복음에는 얼마나 많은 기적이 실려있는가?
4. 메뚜기를 먹은 사람은 누구인가?
5. 몇 사람의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았는가?
6. 누가 세례요한을 처형했는가?
7. 어디서 얼마나 오랫동안 5,000명이 빵을 먹었는가?
8. 언제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셨나?
9. 4,000명을 먹이시고 얼마나 많은 떡 광주리가 남았는가?
10.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가 무엇을 받았는가?
11. 누가 예수님의 산상 변모를 보았는가?
12. 주님은 어린이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나?
13. 언제 어디서 주님은 회초리로 사람을 치셨나?
14.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인가?
15. 어디에서 물 주전자를 운반하는 남자에 대해 들었나?
16. 누가 주님을 겟세마네까지 따라갔나?
17. 예수께서 세 제자 앞에서 시도하신 것은 무엇인가?
18. 십자가에 달리신 후 예수의 옷은 어떻게 되었나?
19. 가상칠언 중 마지막 말씀은 무엇인가?
20. 예수님의 마지막 계명은 무엇인가?

사경회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전라 대리회(代理會; Sub-Presbytery) 지도자 협의회가 뒤따라 열려, 지역 노회 설립에 관한 행정적인 절차와 거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지엽적인 이슈들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해 소사경회도 지역교회별로 개최되었는데 남성 소사경회는 5일간씩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10회 정도 개최되었고, 여성을 위한 소사경회 역시 같은 내용으로 5회 정도가 개최되었다. 후리교회에서 열렸던 여성 소사경회에는 농번기를 앞두고도 60여 명의 여성이 참석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전북노회 창립과 활약(1917.10)

1917년 9월 서울 승동교회에서 제6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로 모였을 때 전라노회를 남북으로 분립하기로 결의하고, 전북노회장을 이원필로, 전남노회장을 류서백John S. Nisbet으로 임명했다.

그해 10월 10일 전주 서문교회에서 목사회원 15인과 장로회원 20인이 회집해 전북노회 창립을 위한 예배를 드리면서 곧바로 노회장 이원필 목사의 주재로 공천위원에 김인전, 하위렴, 임구환, 이승두, 최흥서 등 5인을 지명하고 임원회 및 상비부위원을 선출했다.

전북노회 창립 당시 선교사로는 유일하게 공천위원에 지명된 하위렴 선교사는 임원선출과 노회의 조직에 깊숙이 관여했고, 또한 상비부위원으로써 규칙위원에 선임되어 리더십의 이양을 위한 조직의 기틀을 잡았다. 그뿐 아니라 군산 동부지방 시찰위원을 비롯해 전도국위원 등으로도 활약하며 치리회 운영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한편 그는 남장로교 내한 선교부 연례회의의 각 분과위원회에도 소속되어 내한 선교 운영 전반에 참여했으며 그는 선교부의 인사위원회, 선교사 자녀교육위원회, 임시위원회 위원을 맡아 활약하면서 선교사연합기관인 '개신교선교부공의회'에 남장로교 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편 1921년에는 사기史記 편집위원으로 테이트와 함께 호남지방 기독교 역사를 기록하고 편집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전북노회 창립 예배를 마치고(둘째 줄 좌로부터 일곱 번째가 하위렴 선교사)
(Photo : ) 전북노회 창립 예배를 마치고(둘째 줄 좌로부터 일곱 번째가 하위렴 선교사)

전북지방 선교 25주년 기념행사(1917.11)

전북노회가 창립되면서 곧바로 전북지방 선교 25주년을 교회별로 기념하기로 하고, 전북지방 전체 기념 축하예배는 그해 11월 4일 전주 서문교회에서 드리기로 했다. 기념행사 준비위원으로는 이자익 목사, 이승두 장로, 홍종필 장로가 선출되었다.

축하예배 전 기념행사는 11월 2일 금요일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날 저녁 7시 30분 전주 서문교회에서 레이놀즈 선교사의 사회로 시작된 25주년 기념행사에는 4~500여 명의 교인이 모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호남에서 25년간 사역한 선교 내력문을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보고 했다.

• 7인의 개척선교사 내한 여정

• 호남지방 선교회 지부 설립과정
전주 선교부 설립(1894~ )
군산 선교부 설립(1896~ )
목포 선교부 설립(1898~ )
광주 선교부 설립(1904~ )
순천 선교부 설립(1909~ )

• 남장로교 선교부의 통전적 사역
복음 사역(전도 역사의 4시대 : 파송, 왕성, 낙심, 조직)
의료 사역(군산, 전주, 목포, 광주)
교육 사역(고등학교 8, 교회소학교 79, 학생 2,022명)
주일학교 사역(1897~ ) 315 교회 중 252개 교회에 설립, 63개 교회 미설립
서적 번역간행(성경 번역과 기타 서적)

• 순직자 추모
광주 배유지 목사 부인(Charlotte W. Bell) 기념문(1895 내한~ 1901)
군산, 전주 데이비스(Linnie F. Davis) 선교사 기념문(1892 내한~ 1903)
군산, 전주 전위렴(William M. Junkin) 목사 기념문(1892 내한~ 1908)
광주 오기원(Clement C. Owen) 목사 기념문 (1898 내한~ 1909)
전주 랭킨(Cornelia B. Rankin) 선교사 기념문(1907 내한~ 1911)
군산 안부인(Anna M. Bedinger) 선교사 기념문(1910 내한~ 1916)

남장로교 내한 선교사 가운데 지난 25년 동안 조선 땅에서 사역하다가 목숨을 바친 6명의 순직자 명단이 호명될 때는 참석한 모든 사람이 숙연한 모습으로 고개를 떨궜다.

이튿날 11월 3일에는 전라북도 부지사와 전라노회 노회장, 이 지방 출신 평양신학교 학생대표와 세브란스 의대 학장 어비슨O. R. Avison 박사 그리고 영국성서공회 휴즈 밀러Huge Miller의 축사가 있었고, 오후에는 각 선교지부의 사역과 활동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11월 4일 주일 11시 서문교회에서 열린 선교 25주년 기념 축하예배에는 많은 인사와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현지인 목사들이 순서를 맡아 진행했는데, 그들은 대부분 초기 내한 선교사들에게 세례를 받은 자들로, 후에 장로로 세움을 받고, 다시 노회의 추천을 받아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목사가 된 자들이었는데 지금은 그들을 키워낸 선교사들과 함께 사역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감격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백종근 목사는

한국에서 공과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산업연구원(KIET)에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다 미국에 유학 후 다시 신학으로 바꿔 오스틴 장로교 신학교(Austin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에서 M.Div 과정을 마치고 미국장로교(PCUSA)에서 목사가 되었다. 오레곤(Portland, Oregon)에서 줄곧 목회 후 은퇴해 지금은 피닉스 아리조나(Phoenix, Arizona)에 거주하고 있다. 지난 펜데믹 기간 남장로교 초기 선교역사에 매몰해 『하나님 나라에서 개벽을 보다』와 『예수와 함께 조선을 걷다』 두 권의 저서를 냈으며 그 가운데 하위렴 선교사의 선교 일대기를 기록한 『예수와 함께 조선을 걷다』는 출간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스탠포드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에 이어 시카고 대학 도서관 Koean Collection에 선정되어 소장되기도 했다.

백종근 목사는 하위렴 선교사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초기 남장로교 조선 선교역사를 발굴하고 공유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으며 미국과 한국에서 설교와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최근에도 남장로교 선교사 부위렴(William F. Bull)의 선교행적을 정리해 집필하는 한편 디아스포라 선교역사 연구회를 결성해 미주 한인 교회 역사를 찾아 복원하는 일에 빠져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