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목회 여정에서 여러 번 어두움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목회 여정의 끝자락에서 또 하나의 어두움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두움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믿음으로 살아도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답답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을 때는 두려움과 염려가 찾아옵니다. 기도해도 금방 응답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저는 어두움이 좋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난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어두움을 낭만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두움은 어두움입니다. 아프고 답답합니다. 때로는 외롭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어두움을 통과하면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어두움은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아직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씨앗은 밝은 햇빛 아래에서 뿌리를 내리지 않습니다. 어두운 땅속에 묻힌 후에 뿌리를 내립니다. 땅 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땅속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단단한 껍질이 갈라집니다. 생명이 깨어납니다. 작은 뿌리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시 아래로 뿌리가 박히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사 37:31).
순서가 중요합니다. ‘아래로’가 먼저입니다. ‘위로’는 나중입니다. ‘뿌리’가 먼저이고 ‘열매’는 나중입니다.
우리 영혼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뿌리를 깊게 하십니다. 우리는 높아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때로 낮아지게 하십니다. 우리는 드러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때로 감추십니다. 우리는 빨리 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기다리게 하십니다.
어두운 땅에서 뿌리는 깊어집니다. 어두움 속에는 침묵이 있습니다. 고요가 있습니다. 기다림이 있습니다. 밝을 때는 바깥을 바라보지만 어두워지면 안을 바라보게 됩니다. 분주할 때는 듣지 못했던 작은 음성을 고요 속에서 듣게 됩니다. 자신도 몰랐던 조급함과 두려움과 욕망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법을 배웁니다. 그래서 어두움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무르익습니다. 깊어집니다. 아름답게 빚어집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도 생각해 보십시오. 애벌레는 고치 속으로 들어갑니다. 고치 안은 어둡고 좁습니다. 밖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전의 모습이 해체되고 새로운 모습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고치를 뚫고 나비가 나옵니다. 우리가 고치만 바라본다면 어두움만 보게 됩니다. 하지만 나비까지 바라본다면 어두움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변화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눈부신 어두움’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어두움이 어떻게 눈부실 수 있겠습니까. 어두움 자체가 눈부신 것이 아닙니다. 어두움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그 어두움이 눈부신 것입니다. 우리는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도 어두움이 있었습니다. 금요일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이 찾아왔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무덤에 있었습니다. 돌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하늘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토요일이 마지막 날은 아니었습니다. 주일 새벽이 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 계셨습니다. 죽음 속에서 생명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무덤 속에서 부활의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어두운 토요일에 너무 빨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을 통과하면서 깊은 사람이 됩니다.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 곁에 말없이 앉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자신의 힘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어두움 속에서 깊어진 뿌리는 마침내 누군가에게 그늘이 됩니다. 하나님은 밝은 날에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두움 속에서도 일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장 보지 못하는 어두운 곳에서 가장 깊은 일을 행하십니다. 새 생명을 잉태하게 하시고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어두움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너무 빨리 절망하지 마십시오. 아직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뿌리가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 기다리십시오. 씨앗이 어두운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듯 깊어지십시오. 어두움은 마지막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어두운 땅에서 뿌리는 깊어집니다. 깊어진 뿌리는 때가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가장 깊은 밤에도 하나님은 새벽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통과하고 있는 어두움은 훗날 돌아보았을 때 ‘눈부신 어두움’이었다고 고백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어두움을 보듬어 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새벽을 기다리는 공동체가 되기를 빕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