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북지역 최대 도시 센다이. 동북대학교와 교육기관들이 모여 있는 이 도시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동북 일본의 중심지다. 화려한 대도시의 모습 뒤에는 여전히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교회들의 눈물과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지난 34년 동안 한인 디아스포라와 일본 선교를 함께 품어 온 센다이교회가 있다.

센다이교회의 시작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북지역 6개 현에는 약 8천 명에 이르는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한국어로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가 거의 없었다. 교회 설립을 주도한 김치복 목사는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단순한 한인교회를 넘어 일본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교회의 필요성을 품게 되었다. 그는 조기 은퇴를 결심하고 센다이로 향했고, 한국 교회들의 기도와 협력을 요청하며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

동북지역은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이와테현, 아키타현, 아오모리현, 야마가타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에서도 넓은 지역에 속하며, 문화와 역사, 산업이 다양하게 분포된 곳이다. 센다이는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이자 관문 역할을 감당한다. 센다이교회는 처음부터 특정 지역만이 아니라 동북 전체를 바라보는 비전을 품고 세워졌다.

정현기 기자 일본 교회 탐방 - 센다이교회
(Photo : 정현기 기자 일본 교회 탐방 - 센다이교회)

현재 센다이교회를 섬기고 있는 마영렬 목사는 이 교회의 4대 담임목사다. 그는 개척자가 아니라 앞선 목회자들이 세워 온 토대 위에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이어가고 있는 목회자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일본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을 발견하게 된다.

마 목사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선교사로 헌신했다. 당시 그의 마음속에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몰로카이 섬에서 헌신했던 선교사였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자신의 사역지가 일본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환점은 신학교 시절 찾아왔다. 일본 단기선교에 참여하던 중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사랑할 수 있느냐’는 마음을 주셨다. 그는 그 말씀을 붙들고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쉽게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생활하며 일본인들을 가까이 만나게 되었고, 미워해야 할 상황에서도 오히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서 일본 선교로 자신을 부르셨음을 깨달았다.

일본 초기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가진 것이라곤 한국에서 전세금을 정리해 마련한 적은 돈뿐이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신문배달을 시작했고 새벽부터 밤까지 고된 생활을 이어갔다. 하루는 신문배달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점장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겪었다. 젊은 선교사였던 그는 깊은 상처와 분노를 경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 그의 마음을 바꾸셨다. 미움 대신 용서의 마음을 주셨고, 일본인을 향한 사랑을 더욱 깊게 하셨다. 훗날 그는 이 사건을 돌아보며 일본 선교의 출발점이 바로 그 자리였다고 고백했다.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배우는 것이었고, 일본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선교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정현기 기자 일본 교회 탐방 - 센다이교회
(Photo : 정현기 기자 일본 교회 탐방 - 센다이교회)

이후 그는 일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일반 언어교육뿐 아니라 비즈니스 일본어와 일본 사회의 역사, 사고방식까지 배웠다. 설교 원고를 일본 목회자에게 수차례 교정받으며 일본인의 언어와 정서에 맞는 설교를 익혔다. 그 과정은 길고 어려웠지만 훗날 일본인 교회를 목회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마 목사는 일본인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아 14년 동안 담임목회를 감당했다. 한국인 선교사가 일본인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받고 당회장권까지 위임받는 일은 매우 드문 사례였다. 그는 그곳에서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회당 건축을 완성했으며, 새로운 지역 개척에도 참여했다. 가정예배로 시작된 개척 사역은 결국 예배당을 갖춘 교회로 성장했다.

그의 사역은 순탄하기만 하지 않았다. 자녀의 큰 교통사고로 인해 사역을 잠시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그 시간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한국에서 다문화 사역과 일본어 예배 사역을 감당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았고, 이후 다시 일본으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센다이교회가 그를 청빙한 것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목회자 공백과 갈등의 상처가 남아 있었고 공동체의 회복이 필요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이 왜 이곳으로 와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일본인 교회를 향한 소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한번 순종을 요구하셨다.

부임 초기 교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출석 인원이 늘어나고 예배도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동시에 오래된 갈등과 상처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 목사는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옳은 것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람들을 품고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정현기 기자 일본 교회 탐방 - 센다이교회
(Photo : 정현기 기자 일본 교회 탐방 - 센다이교회)

그는 제자훈련을 통해 교회의 기초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동체는 점차 안정되었고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사회 전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당시 마 목사는 우쓰노미야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었지만 동북지역 구호사역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전국에서 보내온 구호물자가 교회에 산더미처럼 쌓였고, 이를 피해 지역으로 전달하는 일이 이어졌다.

당시에는 주유소에도 기름이 없었고 이동 자체가 쉽지 않았다. 특별 허가를 받아야만 재난 지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경찰과 협력하며 구호팀의 출입을 돕고, 선교사들과 함께 필요한 물자를 전달했다. 약 6개월 동안 계속된 구호활동은 복음이 말이 아니라 섬김으로 증명되어야 함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마 목사는 일본 선교의 핵심 원칙을 단순하게 설명한다.

“주님의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일본 선교가 단기간에 결과를 얻는 사역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본인은 상대방을 오래 관찰하고 신뢰를 확인한 뒤 마음을 연다. 그래서 삶 자체가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말보다 삶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일본의 미래를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일본을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확신한다. 일본인들은 진리를 진리로 확신하게 되면 놀라운 헌신을 보여 줄 수 있는 민족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복음화율이 낮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현재 마 목사가 품고 있는 꿈은 센다이교회 한 교회의 성장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동북지역 전체를 연결하는 복음 플랫폼을 꿈꾸고 있다. 목회자들이 함께 모이고, 청소년과 다음 세대가 훈련받고, 선교사들이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을 세우는 것이 비전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 교회가 함께 협력하는 선교 허브를 만드는 것이 그의 기도제목이다.

센다이는 동북 일본의 중심 도시다. 마 목사는 이 도시가 앞으로 동북 선교의 안디옥교회와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교회의 성공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복음화를 바라보는 비전이다.

34년 전 몇 사람의 기도와 헌신으로 시작된 센다이교회. 그 교회는 오늘도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작은 교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동북 일본을 향한 큰 꿈과 복음의 비전이 담겨 있다.

정현기 기자 일본 교회 탐방 - 센다이교회
(Photo : 정현기 기자 일본 교회 탐방 - 센다이교회)

 

[기사 및 사진제공: 예품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