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리며 그의 신학과 삶, 그리고 한국교회와 세계 신학계에 남긴 영향력이 다시 조명됐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 박사)는 8일 오후 서울 안암동 크로스빌딩 한국신학아카데미 세미나실에서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 박사의 삶과 신학’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특히 이번 세미나는 몰트만의 한국인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마련한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몰트만 박사의 첫 한국인 제자인 김균진 박사가 원장으로 있는 한국신학아카데미와, 또 다른 제자들이 활동 중인 온신학아카데미(원장 김명용 박사)가 공동 주최해 국제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몰트만의 막내딸이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연구원장인 프리데리크 몰트만 박사를 비롯해 몰트만의 제자 9명 가운데 김균진(한국신학아카데미, 연세대 명예교수)·박종화(경동교회 원로)·배경식(한일장신대 명예교수)·유석성(전 서울신대 총장)·김명용(장신대 전 총장)·이신건(전 서울신대 교수)·곽혜원(경기대 초빙교수) 등 7명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1부 기념예배는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 총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연규홍 박사(전 한신대 총장)가 설교를 맡았다. 이어 유석성 박사(전 서울신대 총장)가 축도했다.

김균진 원장이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Photo : 장지동 기자) 김균진 원장이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개회사를 전한 김균진 박사는 몰트만 박사를 “20세기 세계 신학 역사 속 혜성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대표 저서인 「희망의 신학」이 전후 절망 속에 놓여 있던 세계 신학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1964년 출판된 ‘희망의 신학’은 구약성서의 희망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해 하나님의 정의로운 세계를 이 땅 가운데 세우고자 하는 새로운 희망과 힘을 불러일으켰다”며 “몰트만 박사는 단순한 신학자를 넘어 깊은 신앙심과 인격을 갖춘 존경스러운 분이었다”고 했다.

아울러 “오늘 몰트만 박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게 된 것을 큰 기쁨과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 “몰트만이 남긴 사랑의 빚, 한국교회가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연규홍 박사가 ‘사랑의 빚’을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다.
(Photo : 장지동 기자) 연규홍 박사가 ‘사랑의 빚’을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다.

‘사랑의 빚’을 제목으로 설교한 연규홍 박사는 고(故) 위르겐 몰트만 박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몰트만 박사에게 진 사랑의 빚을 이제 한국교회가 갚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연 박사는 이날 ‘사랑의 빚’을 제목으로 한 설교에서 “오늘은 100년 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몰트만 박사님을 추모하며 기억하는 매우 뜻깊은 날”이라며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두는 그의 사랑에 빚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마서 말씀을 인용하며 “사도 바울은 서로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것도 지지 말라고 했다”며 “일반적인 빚은 무거운 짐이지만 사랑의 빚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몰트만 박사는 독일 사람이었지만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한국교회를 깊이 사랑했다”며 “그분이 남긴 사랑은 무담보·무보증·무이자로 자신을 내어주는 신용 금융과 같은 사랑이었다”고 표현했다.

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랑은 결코 공짜가 아니라 값비싼 은혜”라며 “몰트만 박사 역시 그 사랑의 빚진 자로서 자신이 받은 사랑을 한국교회와 세계를 위해 되갚은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연 박사는 “몰트만 박사는 단순히 자신을 추모하지 말고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며 “그 기억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상처받은 이들에게 사랑의 빚을 갚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교회가 몰트만의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할 세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로 “위기의 시대 속에서 몰트만 신학을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몰트만 박사는 2차 세계대전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인물”이라며 “텍스트에만 머물지 않고 역사 속 민중의 고난과 울부짖음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날 세계 곳곳의 전쟁과 경제적 착취, 억압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고난에 한국교회가 신학적으로 응답해야 한다”며 “한국적 신학을 발신하는 것이 몰트만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라고 말했다.

둘째로는 제자 양성을 강조했다. 연 박사는 “훌륭한 스승이라도 제자가 없는 스승은 불행하다”며 “몰트만 박사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와 한국에 수많은 제자를 둔 행복한 신학자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몰트만에게서 받은 신학적 유산과 삶을 이어갈 제자들을 사랑하고 키워내야 한다”며 “그것이 사랑의 빚을 갚는 또 다른 길”이라고 밝혔다.

셋째로 그는 나눔과 헌신의 삶을 제시했다. 연 박사는 “몰트만 박사는 자신이 받은 생명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며 평생 진실하게 헌신한 사람”이라며 “우리 역시 주님께 받은 것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나누고 세계 평화와 다음 세대 양성을 위해 아낌없이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도 아름다운 빈손과 가벼운 영혼으로 하나님 나라에 가서 몰트만 박사와 부활 안에서 기쁜 만남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것이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생명과 부활의 길”이라고 설교를 마무리했다.

몰트만 박사의 딸인 프리데리크 몰트만 박사가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Photo : 장지동 기자) 몰트만 박사의 딸인 프리데리크 몰트만 박사가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이날 2부 특별강연에서는 몰트만 박사의 딸인 프리데리크 몰트만 박사(Friederike Moltmann·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연구원장)가 ‘나의 아버지 몰트만 박사의 삶과 학문’을 주제로 강연했다.

프리데리크 박사는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를 신학자로 알고 있지만, 제게 그는 아버지이자 학문적 여정의 롤모델이며 멘토였다”며 “오늘은 네 딸의 아버지로서의 모습과, 그가 가장 사랑했던 사상가의 이미지인 한국의 반가사유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몰트만 박사의 엄격한 일상과 학문적 규율을 소개했다. 몰트만 박사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상과 식사, 산책, 집필을 반복하며 오전과 오후 각각 네 페이지씩 글을 썼고, 이러한 규칙적인 생활이 방대한 저작 활동의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 “아버지는 자신의 학문 세계를 가족에게 기꺼이 열어주셨다”며 “딸들과 신학과 지적 주제에 대해 자주 대화했고, 강연과 설교 자리에도 함께 데려갔다”고 회고했다. 이어 “국제 학회나 여행에도 딸들을 동행시키며 학문과 문화의 세계를 경험하게 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팬데믹 시기 베네치아에서의 추억을 자세히 소개했다. 프리데리크 박사는 “아버지는 90대가 넘은 나이에도 세 차례나 베네치아를 방문했다”며 “당시 베네치아 총대주교 프란체스코 모랄리아와 우정을 쌓았고, 산 마르코 성당 특별 투어와 기념 미사 초청 등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고 전했다.

이어 “어머니 엘리자베스 몰트만-벤델의 죽음은 아버지에게 큰 충격이었지만, 그는 새로운 사유와 저술, 여행과 우정 속에서 삶의 새로움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는 언제나 딸들을 공평하게 대하려 했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깊은 관심과 돌봄을 보여주셨다”고 덧붙였다.

프리데리크 박사는 자신과 아버지의 학문적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저는 언어학과 철학의 접점에 있는 분석철학과 이론언어학을 선택했는데, 처음에는 아버지가 조심스러워하셨지만 곧 제 열정을 존중하며 평생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셨다”고 밝혔다.

강연 말미에는 위르겐 몰트만 박사의 대표적 문장도 소개됐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우신다. 언젠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웃게 되기 위해서이다.”

◆ ‘희망의 신학’부터 생명신학까지… 몰트만 신학의 핵심 재조명

이어진 3부 세미나에서는 김균진 박사(연세대 명예교수)의 진행 아래 김명용 박사(전 장신대 총장)와 이신건 박사(전 서울신대 교수)가 각각 발제에 나섰다. 이후 김영한 박사(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와 이오갑 박사(강서대 명예교수)가 논평을 맡았다.

김명용 박사가 ‘몰트만 신학의 특징들, 그 위대한 공헌과 영향’이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Photo : 장지동 기자) 김명용 박사가 ‘몰트만 신학의 특징들, 그 위대한 공헌과 영향’이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몰트만 신학의 특징들, 그 위대한 공헌과 영향’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김명용 박사는 몰트만 신학의 특징과 세계 신학계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며 「희망의 신학」,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삼위일체와 하나님 나라」,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 등 주요 저서를 중심으로 그의 신학 체계를 분석했다.

김 박사는 몰트만의 하나님 나라 신학이 기존 자유주의 신학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고 평가했다. 그는 “몰트만은 역사에 대한 낙관주의를 버리고 세상 속 악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했다”며 “하나님 나라는 인간 역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미래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강림하는 미래라고 설명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몰트만 신학의 핵심 가운데 하나로 십자가 신학을 언급했다. 김 박사는 “몰트만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하나님 이해를 넘어 십자가의 계시 안에서 인간과 함께 고난받는 하나님을 제시했다”며 “하나님의 전능은 오히려 고난 속에서 드러난다고 보았다”고 했다.

이어 몰트만이 서구교회의 삼위일체론 재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몰트만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은 민주주의와 공동체적 평화의 토대를 제공한 중요한 신학”이라며 “인간과 피조물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한 신학적 기반이 됐다”고 했다.

故 위르겐 몰트만 박사
(Photo : 한신대) 故 위르겐 몰트만 박사

평화신학과 생태학적 신학 역시 몰트만의 핵심 유산으로 소개됐다. 김 박사는 몰트만을 “20세기 후반 평화신학의 사상적 스승”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신학이 유럽 평화운동과 역사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또 “몰트만은 세계교회가 생태와 피조물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바라보도록 이끈 생태학적 신학의 선구자였다”며 “그는 단순한 문제 제기를 넘어 거대한 생태신학 체계를 구축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메시아적 그리스도론과 통전적 성령론, 생명신학, 만유구원론 등에 대해서도 발표가 이어졌다. 김 박는 “몰트만이 교회 중심의 전통적 그리스도론을 넘어 하나님 나라와 역사 변혁을 강조하는 메시아적 그리스도론을 확립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후기 몰트만 신학의 핵심으로 생명신학을 언급하며 “그는 죽음의 힘에 저항하는 영성을 강조했고, 교회가 생명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했다.

끝으로 김 박사는 몰트만이 생애 마지막에 남긴 메시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나는 죽는 순간 부활할 것이고 영원히 살 것이다’라는 가르침은 몰트만이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희망의 신앙이었다”고 설명했다.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김영한 박사(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가 논평을 전하고 있다.
(Photo : 한국신학아카데미 제공)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김영한 박사(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가 논평을 전하고 있다.

김영한 박사(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는 논평에서 “몰트만은 계시의 역사성이 약화된 시대 속에서 종말론적 희망을 신학의 중심 주제로 제시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 박사는 대표작 『희망의 신학』(1964)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미래에서 다가오는 약속과 성취의 사건으로 이해하며 종말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몰트만의 희망신학은 당시 아프리카·남미·아시아의 사회변혁 운동과 한국 민중신학에 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며 “마르크스주의적 유토피아 혁명론에 맞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독교적 희망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을 언급하며 “몰트만은 세상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도 인간과 함께 고난받으신다는 십자가 신학을 통해 항의무신론에 응답했다”고 평가했다. 또 『삼위일체와 하나님 나라』(1980)에 나타난 사회적 삼위일체론에 대해서는 “권위주의적 구조를 비판하고 공동체적 관계성을 강조한 공헌이 있다”고 했다.

생태학적 창조론과 관련해서는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1985)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피조세계의 상호내재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신학적 지평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몰트만은 전쟁과 고난, 생태위기 속에서 인간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 위대한 신학자”라고 했다.

◆ “오늘의 위기 시대에도 필요한 것은 몰트만의 희망”

이신건 박사가 ‘불멸의 희망을 외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남긴 위대한 신학적 공헌’이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Photo : 장지동 기자) 이신건 박사가 ‘불멸의 희망을 외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남긴 위대한 신학적 공헌’이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불멸의 희망을 외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남긴 위대한 신학적 공헌’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이신건 박사는 먼저 몰트만을 “20세기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세계적 신학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에 세속화 신학과 ‘하나님의 죽음’ 신학이 확산되던 시대 속에서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미래성과 종말론적 희망을 새롭게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몰트만의 삶 자체가 희망의 신학을 형성한 배경이었다고 강조했다. 1926년 독일 함부르크의 무신론 가정에서 태어난 몰트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수용소 생활을 경험했다. 이 박사는 “몰트만은 포로수용소라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만났고, 특히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친 예수의 고난을 통해 자신을 이해해주는 하나님을 발견했다고 고백했다”고 소개했다.

또 “그의 신학은 단순한 이론적 체계가 아니라 전쟁과 절망 속에서 길어 올린 실존적 신앙 고백이었다”며 “포로수용소에서 경험한 절망 속에서도 그는 부활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붙들었고, 그것이 훗날 ‘희망의 신학’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몰트만의 신학이 특정한 체계나 방법론에 따라 미리 구성된 것이 아니라 시대적 요청과 현실적 위기에 대한 응답 속에서 발전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칼 바르트가 그리스도론 중심으로, 폴 틸리히가 상관관계의 방법을 중심으로 신학을 전개했다면 몰트만은 시대의 도전과 고통 속에서 새로운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신학을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몰트만 신학의 특징으로 ‘성서적 근거’, ‘종말론적 방향성’, ‘정치적 책임성’을 제시했다. 그는 “몰트만은 신학이 단순히 교리 체계에 머물지 않고 현실 역사 속에서 책임 있게 작동해야 한다고 보았다”며 “특히 교회와 신학은 세상의 고통과 억압, 절망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몰트만 신학의 중심에 있는 ‘희망’의 개념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몰트만에게 희망은 인간의 낙관주의나 정신적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며 “그는 하나님을 ‘희망의 하나님’으로 이해했고, 하나님은 인간 앞에서 미래를 열어 가시는 분이라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몰트만은 하나님의 계시를 단순한 과거 사건의 설명이 아니라 ‘약속’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약속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향해 인간을 이끄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몰트만에게 종말론은 신학의 마지막 장이 아니라 신학 전체를 이끄는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발표에서는 몰트만의 부활 이해도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이 박사는 “몰트만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다고 보았다”며 “부활 없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몰트만이 십자가 중심 신학이 부활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경향을 비판했다고 소개했다. “몰트만은 복음을 단순히 죄 사함의 문제로만 축소하지 않았다”며 “예수의 부활은 죽음의 극복과 새 창조의 시작이며, 온 세계의 미래를 여는 사건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발표에서는 몰트만의 후기 신학에 나타난 ‘죽음 속의 부활’ 이해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박사는 “몰트만은 초기에는 전통적 종말론에 따라 마지막 날의 부활을 강조했지만, 후기에는 인간이 죽는 순간 영원한 생명 안에서 깨어난다는 방향으로 사상이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몰트만의 저서 「나는 영생을 믿는다」를 인용하며 “몰트만은 ‘우리는 죽는 순간 부활한다’고 주장했다”며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의 변화이며,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깨어나는 사건이라고 보았다”고 말했다.

또 몰트만이 인간의 부활을 개인의 영혼 문제로 제한하지 않고 우주적 차원에서 이해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박사는 “몰트만은 로마서 8장의 ‘피조물의 탄식’을 중요하게 해석하며 인간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새 창조 안에서 회복될 것을 희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에게 부활은 단지 인간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만물의 회복이었다”며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이 몰트만 종말론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한국교회와 한국 신학계에 미친 몰트만의 영향도 언급했다. 그는 “몰트만은 한국인 제자 9명을 길러냈고, 그의 신학은 오랫동안 한국 신학계에서 활발히 연구돼 왔다”며 “「희망의 신학」은 한국 신학생들에게 가장 널리 읽히는 신학 서적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오늘날 인공지능(AI), 전쟁, 기후위기 등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위기 속에서도 몰트만의 신학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몰트만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신학자였다”며 “죽은 자들의 부활과 만물의 새 창조를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희망이 오늘의 교회와 세계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표 말미에서 이 박사는 몰트만이 즐겨 인용했던 라틴어 문구 “Dum spiro, spero(숨 쉬는 한 희망한다)”를 언급하며 “몰트만의 신학에 따르면 이제 우리는 ‘숨이 멎더라도 희망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부활과 새 창조를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몰트만 신학의 마지막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이오갑 박사(강서대 명예교수)가 논평하고 있다.
(Photo : 한국신학아카데미 제공)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이오갑 박사(강서대 명예교수)가 논평하고 있다.

이오갑 박사(강서대학교 명예교수)는 논평에서 “몰트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신학아카데미에서 학술행사를 개최하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김균진 원장을 비롯한 직제자들과 몰트만 박사의 딸 프리드리케 교수까지 함께한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신건 박사의 논문에 대해 “방대한 몰트만 신학을 짧은 논문으로 정리한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몰트만 신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희망’으로 파악하고 그의 생애와 사상을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논문 내용을 요약하며 “몰트만 신학은 성서가 증언하는 종말론적 희망에 의해 추동됐다”며 “몰트만은 포로수용소 생활 가운데 성경을 읽으며 희망을 발견했고, 이러한 실존적 경험이 그의 신학의 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몰트만이 말한 희망은 ‘희망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하나님의 계시는 본질적으로 약속과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하나님의 의와 부활,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 몰트만 신학의 핵심 주제라고 정리했다.

이오갑 박사는 논평 말미에서 “‘종말론적 희망’, ‘실존적 경험’, ‘하나님의 의’와 같은 핵심 용어들에 대한 보다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개념들이 분명해질 때 몰트만 신학의 특징도 더 잘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는 폐회 순서로 마무리됐다. 폐회사를 전한 김균진 원장은 신학 연구와 학문적 성취에 몰두하는 과정 속에서 자칫 신앙과 인격을 잃어버릴 수 있는 오늘의 신학 현실을 언급하며, 몰트만 교수가 보여준 삶의 태도를 되새겨야 한다고 했다.

김 원장은 “신학 교수들은 신학 이론에 열중한 나머지 자신의 인격과 신앙을 등한시하기 쉽다. 절대 진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확신 속에서 타인을 배제하거나 교만해질 위험도 있다”며 “사회적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인간적 욕망에 사로잡혀 참된 신앙심을 잃어버린 비인간적인 인간이 되기 쉽다”고 말하며 러시아 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인용해 신학자의 삶과 인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행사를 계기로 몰트만 교수의 신학에 대한 더욱 깊은 연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197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의 학생들을 독일의 많은 교수들이 외면할 때, 몰트만 교수는 한국 학생들을 기꺼이 박사과정생으로 받아주셨다. 몰트만 교수의 위대한 신학뿐 아니라 그분의 인격과 신앙 역시 한국교회와 신학계 안에서 오래 기억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학술세미나 현장에 몰트만 박사 박물관이 개설 되었다.
(Photo : 장지동 기자)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학술세미나 현장에 몰트만 박사 박물관이 개설 되었다.

한편,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학술세미나 현장에는 몰트만 박사의 유품을 전시한 작은 박물관도 함께 공개됐다. 2024년 6월 3일 별세한 몰트만 박사는 생전 자신이 사용하던 여러 소품들을 첫 한국인 제자인 김균진 박사가 원장으로 있는 한국신학아카데미에 기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안암동 크로스빌딩 5층에 위치한 한국신학아카데미 회의실 한편에는 몰트만 박사를 소개하는 액자와 함께 그가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 타자기, 번역서, 필기도구, 가운과 모자, 수첩, 사진 등 다양한 유품이 전시됐다. 행사 참석자들은 유품 전시 공간을 둘러보며 세계적인 신학자로 불렸던 몰트만의 삶과 연구 흔적을 살펴봤으며, 평생 희망의 신학을 외쳤던 그의 정신을 다시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한국교회 및 신학계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 연구소 측 제공)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한국교회 및 신학계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