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가 5월 8일 오후 1시 30분부터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아카데미 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는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 교수의 삶과 신학'을 주제로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 박사)와 온신학아카데미(원장 김명용 박사) 주최로 진행됐다.
저명 학자들과 달리 가정적 면모
아내 깊이 사랑, 죽음에 큰 충격
이미지로 생각, 예술품에 영감
무의식적 반가사유상 같은 자세
세미나에서는 몰트만 교수의 4녀 중 막내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연구원장 프리데리케 몰트만 박사(Friederike Moltmann)가 방한해 '나의 아버지 몰트만 교수의 삶과 학문'이라는 제목으로, 당대 여러 대가들과 달리 '가정적'이었던 부친을 회상했다.
프리데리케 몰트만 박사는 "많은 분들이 아버지를 신학자, 그것도 엄청나게 창의적이며 선견지명 있는 신학자로 알고 계신다"며 "하지만 제게는 물론 아버지이셨고, 제 학문적 여정에 있어 롤모델이자 멘토로 중요한 분이셨다. 아버지도 그 역할을 소중히 여기셨다"고 떠올렸다. 
▲프리데리케 몰트만 박사가 강연하고 있다.
몰트만 박사는 "다른 저명 학자들과 달리, 아버지는 저희 자녀들을 연구에 참여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우리는 종종 신학이나 여러 문제들에 대해 토론했고, 아버지는 우리를 교회에서 열리는 강연이나 설교에 데려가셨다"며 "아버지는 자신의 연구에서 얻는 깊은 기쁨과 국제적 명성, 자부심 등을 우리와 함께 나누길 원하셨다"고 회고했다.
박사는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깊었다. 두 분은 서로 돕는 관계였고, 서로를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으로 여겼다. 어머니는 몇 년 동안 병을 앓으셨고, 그녀의 죽음은 아버지에게 큰 충격을 줬다"며 "그러나 아버지는 새로운 생각과 집필, 여행과 우정, 더 깊어진 가족 관계를 통해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으셨다"고 말했다.
몰트만 박사는 "여행과 나들이 외에도, 아버지는 딸들 중 누군가 심각한 문제에 처하거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언제나 시간을 내주셨다"며 "아버지는 아낌없는 관심과 보살핌을 베풀어주셨고, 후속 조치까지 꼼꼼하게 챙겨주셨다.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훌륭한 자질은 평등 의식이었다. 시간과 관심, 물질적 면에서 모든 딸들을 똑같이 대하셨다"고 전했다.
사상가 또는 사색가로서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아버지 서재는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집필하신 책들과 그 번역본들도 많았지만, 그 외에 성상과 목판화, 조각품, 칠기 상자 등 다양한 예술품들도 있었다"며 "아버지는 이미지로 생각하시는 분이셨고, 서재에 놓인 예술품들은 분명 아버지께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몰트만 박사는 "그러한 영감의 원천이 가장 두드러지게 자리했던 곳은 책상 위 창과 창틀이었다. 큰 창문으로 튀빙겐 외곽과 주변 시골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멀리 알프스 산맥이 선명하게 보였다"며 "창틀에는 한국의 '반가사유상'을 본뜬 청동상이 놓여 있었다. 저희 집엔 아버지께서 소장하셨던 반가사유상 복제품이 두 점 더 있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같은 포즈를 취한 몰트만 박사. ⓒ국가유산포털, 프리데리케 박사
이에 대해 "아버지께서 반가사유상에 끌리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조각품은 보살,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상징하는데, '희망의 신학자'로서 아버지는 깊이 공감하셨다"며 "아버지에 따르면 희망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다. 그 희망은 그 너머 천국이 아닌 현실 세계를 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고뇌에 찬, 매우 남성적이고 근육질의 사상가를 묘사하지만, 한국의 반가사유상은 죽음과 고통을 인식함에도 우아함과 가벼움, 미소 짓는 얼굴을 보여주며 남성적이지도 여성적이지도 않은 듯하다"며 "아버지는 이 조각에 매료돼 무의식적으로 똑같은 자세를 취하곤 하셨다"고 전했다.
희망의 신학, 세계 신학계 폭탄
존경스러운 인격자, 깊은 신앙
인종 차별 없이 실수도 용서해
개회사를 전한 김균진 원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희망이 보이지 않던 암울한 시대, 곧 1964년 출간된 몰트만 교수님의 '희망의 신학'은 세계 신학계에 폭탄과 같은 반응을 일으켰다"며 "그 책은 구약성서의 희망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해, 하나님의 정의로운 세계를 이 땅 위에 세우고자 하는 새로운 희망과 힘을 불러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김균진 원장은 "제게 몰트만 교수님은 한 사람의 신학자이기 전에 존경스러운 인격자요 깊은 신앙심을 가진 분이셨다"며 "저는 지금도 인종을 차별하지 않고 실수도 용서하는 교수님의 너그러운 인품과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요 저서와 신학적 공헌까지
만유구원론 해석은 비성경적
지식의 선악과 손대지 말아야
3부 세미나는 원장 김균진 명예교수(연세대) 진행으로 김명용 전 총장(장신대)가 '몰트만 신학의 특징들, 그 위대한 공헌과 영향'을 발표하고 김영한 명예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 원장)가 논평했다.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김명용 전 총장은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몰트만 교수님이 끼친 신학적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이는 그의 핵심 저서들이 출간될 때마다 나타났는데, 그의 저서들은 세계를 뒤흔든 신학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며 '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 1964)'과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Der gekreuzigte Gott, 1972)'부터 94세에 집필한 마지막 저서 '나는 영생을 믿는다(Auferstanden in das ewige Leben, 2020)'까지 주요 작품들을 소개했다.
이를 통해 몰트만 교수의 신학적 공헌과 세계에 끼친 영향으로 ①하나님 나라 신학의 완성과 확장 ②고난당하신 하나님 발견과 신론의 혁명 ③사회적 삼위일체론 ④원수 사랑을 가르친 평화 신학 ⑤생태학적 신학의 선구자이자 생태학적 신학 체계의 완성자 ⑥메시아적 그리스도론 ⑦통전적 성령론 ⑧생명 신학 ⑨만유구원론의 충격 ⑩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 등 10가지를 열거했다.
논평에서 김영한 박사는 "위대한 신학자로서 몰트만이 보여준 영생에 대한 신앙고백, 죽음과 더불어 부활한다는 부활 신앙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며 "하지만 바르트의 만유화해론을 만유구원론으로 해석하면서, 성경이 예언해주는 종말론적 영생과 영벌의 이원론을 도외시하고 희망의 낙관주의 틀 안에서 불신자까지 구원을 얻는다는 오리게네스적 만유구원론을 선언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한 박사는 "만유구원 이슈는 신학이 해야 할 선언이 아니라, 만유를 예지와 예정 안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속하지 않는가? 신학은 단지 그것을 소망할 뿐, 성경적 종말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며 "진정한 신학은 지식의 선악과에 손대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결정에 따르는 겸허의 신학"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용 전 총장도 "그의 만유구원론이 그라베마이어 상을 수상한 것은 이 연구가 갖는 엄청난 긍적적 차원을 의미한다"며 "몰트만의 만유구원론은 찬사와 환호와 함께 엄청난 신학적 비판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21세기 세계 신학계에 남겨진 최대의 신학적 숙제"라고 말했다.
이어 이신건 교수(전 서울신대)가 '불멸의 희망을 외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남긴 위대한 신학적 공헌'을 발표했으며, 이오갑 교수(강서대 명예)가 논평했다.
앞선 1부 기념예배에서는 정일웅 교수(전 총신대 총장) 사회로 연규홍 박사(전 한신대 총장)가 설교하며, 유석성 박사(전 서울신대 총장)가 축도했다.
'사랑의 빚(로마서 13:8)'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연규홍 박사는 "몰트만 교수님은 독일 사람이었지만, 제2의 고향으로 한국을 선택하시고 한국교회를 사랑하셔서 사랑의 빚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라며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그 예수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은 결코 공짜가 아니라, 하나님의 값비싼 사랑의 은혜이다. 그래서 몰트만 교수님은 그 빚을 우리에게 갚으셨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