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독일 고고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최근 텔 아제카 유적지의 재활용된 고대 저수조 내부에서 최대 89구의 유골을 발견했다. 해당 유적지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이스라엘에서 확인된 드문 유아·어린이 집단 매장 사례라고 밝혔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이번 발굴은 라우텐슐라거 아제카 탐사대(Lautenschläger Azekah Expedition)에 의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학술지 『팔레스타인 탐사 계간지』(Palestine Exploration Quarterly)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유골이 약 2,500년 전 초기 페르시아 시대의 것으로 추정했다. 텔아비브대학교 고고학과 오데드 립쉬츠(Oded Lipschits) 교수와 인류학자 힐라 메이(Hila May)가 공동 저술한 이번 연구에 따르면, 골학 분석 결과 유골의 약 90%가 5세 미만, 70% 이상이 2세 미만으로 나타났다.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과 토기 분석, 층서학적 조사 결과, 매장 시기는 기원전 5세기로 확인됐다. 당시 텔 아제카는 페르시아 제국이 유다 지역을 재편하며 형성한 행정 구역인 '예후드'에 속해 있었다.

해당 저수조는 원래 가나안 시대에 물 저장 시설로 조성돼 철기 시대까지 사용됐으나,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유다 정복 이후 폐기됐다. 이후 수십 년간 방치되다가 페르시아 통치기에 들어 새로운 용도로 활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유골에서는 외상이나 화상, 절단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폭력이나 의식적 희생, 영아 살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다양한 연령대와 퇴적층 구조 역시 단일 재난이 아닌 장기간에 걸친 매장으로 해석된다.

연구팀은 이 공간이 젖을 떼기 전 사망한 유아들을 위한 집단 매장지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고대 사회에서 유아는 일정 연령 이전까지 완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간주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립쉬츠는 사무엘상과 창세기의 사례를 언급하며, 고대 사회에서 '젖 떼기'가 중요한 사회적 전환점으로 인식됐다고 설명했다.

유골과 함께 토기 항아리, 돌 도구, 구슬, 구리 귀걸이와 반지 등 소규모 부장품도 발견됐다. 이는 당시 성인 매장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별도의 장례 관습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고대 유다 및 페르시아 시대 공동묘지에서 유아 유해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그리스 아스티팔라이아에서는 2,400구 이상의 유아 유해가 발견됐으며, 펠로폰네소스 지역의 우물에서도 태아와 영아 유해가 다수 출토된 바 있다.

연구팀은 이번 사례가 아슈켈론의 로마 시대 유아 유해나 카르타고 토펫 유적과 같은 의도적 희생 사례와는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힐라 메이는 인터뷰에서 "이번 발견은 감정적 해석보다는 사회 구조와 관련된 문제를 보여준다"며 "어느 시점에서 개인이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되는지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연구진은 일부 유골에서 DNA를 추출해 민족적 배경과 성별, 가족 관계 등을 분석 중이다. 또한 함께 발견된 일부 성인 유골에 대해서는 사회적 지위가 낮았거나 출산 중 사망한 여성일 가능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