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2026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로맨틱 코미디 <이 사랑 통역인가요?>라는 드라마가 있다. 천재적인 다국어 통역사와 세계적인 톱스타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소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통역을 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톱스타가 직설적이고 감정 표현이 거칠며 인터뷰에서 논란이 될 말을 자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통역사는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말을 완화해서 통역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도를 바꿔 전달하기도 한다.

[2] 이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생겨난다. 두 사람의 감정이 깊어질수록 서로 다른 표현 방식 때문에 오해가 쌓이는 상황이 잦아진다.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해하던 통역사는 마침내 자신의 스승에게 하소연한다. 여자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듣겠다고, 그녀의 마음이 헷갈린다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너무 어렵다고. 그런 그에게 스승은 이런 말을 건넨다.

[3] “못 알아듣겠다니 답답하기는 하겠네. 하지만 못 알아들은 채로 그냥 둘 건가? 통역사라는 사람이? 모르는 말이면 공부해야지. 단어도, 순서도, 느낌표인지 물음표인지 자네가 쓰는 말이랑 다를 텐데. 잘 들여다보고 해석해 보게.”
성경의 진미를 맛보려는 이가 있다면 통역사의 스승이 한 말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이라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도전의 말이다.

[4] 성경은 지금 우리 시대나 장소와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기록된 말씀이다. 그것도 우리말이 아닌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되어 있다. 신적 저자 (Divine author)는 성령 한 분이시지만, 인간 저자(Human author)는 약 40명이다. 그들 대부분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역사적 배경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우리말과는 달리 아주 낯선 언어로 기록한 성경 저자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5]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낯선 언어와 시대의 간격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통역사의 스승이 말한 것처럼 “잘 들여다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해석의 책임이 있다.
사도 바울은 젊은 목회자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6] 여기서 “옳게 분별하다”라는 말은 헬라어 ‘ὀρθοτομέω’로, 문자적으로는 “곧게 자르다, 바르게 나누다”라는 뜻이다. 마치 숙련된 장인이 재료를 정확하게 재단하듯이, 말씀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가운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가 있다.

[7] 이 말씀은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표현으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만약 이 문장을 단순히 문자적으로만 읽는다면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받았음을 한탄하고 계시는구나”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실 시편 22편의 첫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즉 예수께서는 절망을 표현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받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지금 성취되고 있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8] 이처럼 배경과 언어를 이해하면 말씀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성경을 해석하는 일은 마치 보석을 캐내는 일과 같다. 땅 위에 보이는 지면은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조금만 그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 값진 광맥이 드러난다.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혜를 은 같이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 같이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4-5).

[9] 말씀은 대충 읽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글처럼 보일 수 있지만, 깊이 파고드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보물이 된다.
한 신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좋은 출발입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은 이미 문 앞에 서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 문을 두드리십시오.”

[10] 사실 성경 연구의 역사는 바로 이런 ‘이해되지 않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교회 역사 속 수많은 신학자와 설교자들이 언어와 역사, 문맥을 연구하며 말씀의 의미를 밝혀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 해석의 궁극적인 통역자는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요 16:13).

[11]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지만, 그 의미를 밝히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구와 함께 기도로 말씀 앞에 서야 한다. 학문적 노력과 영적 겸손이 함께 갈 때 말씀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종교 문서를 읽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통역하는 작업이다.

[12] 드라마 속 통역사가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단어와 억양과 느낌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읽어야 한다. 단어를 살피고, 문맥을 이해하고, 역사적 배경을 배우고, 성령의 조명을 구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음성을 듣게 된다.
결국 성경 연구의 목적은 지식을 쌓는 데 있지 않다.

[13]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데 있다. 말씀을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의 삶은 변화되고 우리의 설교는 더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성경 앞에 설 때마다 통역사의 스승이 했던 그 말을 기억해야 한다.
“잘 들여다보고 해석해 보게.”
그렇게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새로운 은혜와 진리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에게 새로운 은혜와 진리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