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어떤 목사님의 설교 중에 들은 예화다. 한 교회가 아름답게 부흥을 해가는데, 주차장이 좁았다. 교회 옆에 넓은 주차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어서 팔라고 하니 팔지 않는다고 했다. 계속 팔라고 말해보지만, 주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래서 그 문제를 가지고 교인들이 교회에 모일 때마다 뜨겁게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찾아와서 뜻밖의 제의를 했다. 1년 51주 동안 매 주일 주차장을 사용하되 딱 한 주는 사용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2] 이게 웬 떡이냐 생각한 담임 목사는 연신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게 해서 힘든 주차 문제가 졸지에 해결되었다. 문제는 딱 한 주는 교회 주차장 외에는 주차할 데가 없어서 차들이 혼란을 겪다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자 평소 주차 문제가 해결되어 그렇게도 좋아하고 감사했던 교인들에게서 불평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째서 한 주만 주차를 못 하게 해서 이 고생을 시키는가?”라고 말이다.

[3] 하는 수 없이 담임 목사가 주인을 찾아가서 물었다. “51주 동안 주차장을 사용하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주는 어째서 사용 못 하게 하시는지요? 그 주일에 거기 주차장이 비어 있던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러자 주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야 주인이 따로 있는 줄 알지 않겠어요?”
지어낸 얘기일 가능성이 많은데, 주는 교훈은 결코 작지 않다.

[4]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까지 만드셔서 각종 과일을 자라게 하셨다. 그 과일을 아담과 하와가 원하는 대로 다 따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만큼은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 왜 한 나무의 열매만 금지하신 걸까?
이유는 주차장 주인의 말과 똑같다. 그래야 “주인이 따로 있는 줄 알기 때문에”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기억하게 하심이다.

[5]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맡기셨지만, 단 하나를 금하신 것은 인간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이 동산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자유에는 언제나 경계가 있고, 그 경계는 우리를 속박하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질서를 지키게 하기 위한 표지판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종종 이런 “한 가지”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시험하셨다.

[6] 예를 들어,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 주셨다. 그들은 매일 필요한 만큼만 거두어 먹을 수 있었지만, 안식일 전날을 제외하고는 남겨 두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더 거두어 쌓아 두었다. 그 결과 그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 이 사건이 기록된 출애굽기 16장은 분명한 교훈을 준다.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 “먹을 것이 부족한가”를 시험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가”를 시험하셨던 것이다.

[7] 또 다른 예는 여리고 성 전투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면서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간이라는 사람이 몰래 금과 외투를 숨겼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작은 성읍 아이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이 사건이 기록된 여호수아 7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단 하나의 경계를 무너뜨릴 때 공동체 전체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8] 현실에서도 이런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넉넉한 권한을 주고 대부분의 결정을 자유롭게 하도록 맡겼다고 하자. 그러나 단 하나, 회사의 공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이 있는 이유는 직원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조직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만약 누군가가 그 한계를 넘어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한다면 그 순간 조직의 신뢰는 무너지고 만다.

[9]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숨 쉴 공기와 먹을 양식, 시간과 재능을 넉넉하게 맡기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일조, 안식일, 순종과 같은 표지를 두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라”라는 거룩한 표식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고백한다.

[10] “내가 가진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감사하며 살지만, 그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은 결국 불평하게 된다. 51주 동안 은혜를 누리면서도 단 한 주의 제한 때문에 불평했던 교인들처럼 말이다. 신앙은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그 많은 것 가운데 하나님이 제한해 두신 ‘한 가지’를 통해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음을 기억하는 데 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소유권자가 누구인지 늘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