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기독일보) 시애틀 십자가교회 이진호 목사
(Photo : 기독일보) 시애틀 십자가교회 이진호 목사

저는 자타가 공인하는 '콜라' 애호가입니다.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식탁 위에 콜라가 빠지면 무언가 허전하고 서운할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톡 쏘는 탄산과 달콤함, 느끼한 미국 음식을 빨리 소화 시켜주는 효과가 그 맛을 넘어서 제 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한 주간, 저는 그토록 좋아하던 콜라를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건강 비법을 실천하거나 거창한 금욕의 선언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문득 기도하던 중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 수많은 익숙함에 대해 의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 콜라를 좋아하는 것일까?

목회 현장에서 많은 성도님들과 삶을 나누며 제가 깊이 깨달은 사실 하나는, 우리가 정작 '나 자신'에 대해 의외로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는 이런 사람이야" 혹은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해"라고 말하며 자신을 정의하는데요.

하지만 가만히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진정한 '자아'라기보다, 세월이 흐르면서 쌓아 올린 습관의 덩어리일 때가 더 많습니다. 수십 년간 마셔온 콜라가 어느덧 제 정체성의 일부처럼 자리 잡았던 것 같이, 우리는 자신이 만든 틀 속에 갇혀 그것을 본래의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소유했는지, 내가 무엇을 즐기는지를 나열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둘러싼 이 익숙한 껍데기들을 하나씩 정직하게 벗겨 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세밀한 손길 안에서만 그 존재의 목적과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방식들을 잠시 내려놓고 "주님, 주님 보시기에 저는 누구입니까?"라고 겸손히 물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나기 시작합니다.

이번 주 제가 콜라를 마시지 않으며 느낀 것은 단순한 육체적 결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언가를 절제할 수 있다는 영적인 자유함이었고, 내 몸의 본능적인 요구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기쁨이었습니다.

내 삶의 작은 부분조차 주님께 내어드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내 삶 전체를 드린다고 고백할 수 있겠느냐는 거룩한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콜라는 무엇입니까? 도저히 꺾이지 않는 고집스러운 자존심인가요? 아니면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온 나만의 완고한 삶의 방식입니까? 혹은 나를 증명해 준다고 믿고 매달려온 세상의 잣대 기준들입니까?

나를 안다는 것은 결국 내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의 다스림을 구하는 낮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그토록 집착하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으로 우리 삶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작은 습관 하나를 잠시 멈춰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멈춤의 시간 동안 생겨난 작은 틈 사이로 찾아오시는 주님의 음성에 집중해 보세요.

나를 비우고 부인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계획하셨던 '진짜 나'의 모습이 빛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