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서인도 제도 관구의 필립 라이트(Philip Wright) 대주교가 영국성공회의 역사적 대서양 노예 무역과 관련된 배상 정의 실현을 강력히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단순한 사과를 넘어 실질적인 정의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신뢰성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에 따르면, 영국성공회 선교단체인 연합사회복음연합(United Society Partners in the Gospel, 이하 USPG)은 지난 2월 16일 라이트 대주교가 성공회의 '프로젝트 스파이어'(Project Spire) 계획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 계획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교회 기금이 과거 노예 무역 회사인 남해회사에 투자됐던 앤 여왕의 자선기금에서 비롯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라이트 대주교는 31개국에서 온 40명의 성공회 지도자들이 참석한 국제 회의에서 "노예 제도의 유산은 영국성공회를 중대한 도덕적 기로에 서게 한다"며 "교회가 단순한 상징적 사과에 머문다면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USPG가 주최한 '불의의 사슬을 끊다' 행사에서 식민주의가 원주민 사회에 끼친 영향을 언급하며 "배상적 정의는 보복이 아니라 회복과 화해를 위한 길"이라고 역설했다.

라이트 대주교는 또한 "카리브해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며 "새로운 학교와 병원을 건립해 우리 민족이 노예제도의 유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USPG는 과거 노예제도와의 연관성을 인정하며, 바베이도스의 코드링턴 트러스트와 협력해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는 '갱신과 화해: 코드링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는 1710년부터 1838년까지 바베이도스 섬의 코드링턴 농장에서 노예 노동을 통해 재정적 이득을 얻었던 역사적 불의를 바로잡기 위한 장기 사업이다. 

영국령 카리브해 지역에서 노예 제도는 1834년 노예 폐지법에 따라 공식적으로 종식됐다. 그러나 USPG는 "수십년간 지속된 노예 제도가 오늘날 이 지역이 직면한 세대 간 경제적 격차와 불평등, 환경 파괴, 사회적 문제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고 인정했다.

카리브 공동체(The Caribbean Community, CARICOM)는 이미 2013년 '배상 정의를 위한 10개항 계획'을 발표했으며, 서인도 제도 교구 역시 2015년에 유사한 배상 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USPG 던컨 도머(Duncan Dormor) 사무총장은 "교회가 노예 무역과 플랜테이션 노예 제도의 잔혹한 역사에 깊이 관여했음을 인정하고, 과거에 대해 열린 자세로 회복과 화해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USPG에게 회복적 정의는 오늘날 기독교 선교 활동의 핵심이며, 스파이어 프로젝트와 코드링턴 프로젝트와 같은 사업들은 성공회 공동체 전반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사라 멀럴리(Sarah Mullally) 캔터베리 대주교 역시 이번 모임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USPG의 협력과 정의, 그리고 지역교회의 번영을 향한 헌신은 성공회 공동체에 깊은 축복을 가져다 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