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얼마 전, 우리 가정에 멋진 첫 손자가 태어났다. 미국에서 결혼한 큰딸이 2년 만에 소중한 생명을 품에 안은 것이다. 그동안 페이스톡이나 카톡으로 사진과 영상을 보긴 했지만, 직접 안아보진 못했기에 그리움이 깊어져 간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딸과 사위가 올려주는 손자의 사진과 영상을 보는 재미로 하루가 시작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 작은 아이가 어디에서 왔기에, 이렇게 한순간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단 말인가?”
[2] 세상에 없던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오래된 질문이 떠오른다. “인간의 생명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이 주제는 생물학·의학·철학·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다. 많은 학자들은 생명이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수정란’이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는 배아가 인간의 형태와 기능을 갖추기 시작하는 특정 시점부터 생명이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3] 또 사람의 영(靈)이나 의식이 언제 생겨나는가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그런데 과학이 보여주는 초기 생명의 모습은 놀랍다. 수정 후 사흘밖에 지나지 않은 배아는 핀 끝보다 더 작고, 겨우 8개의 세포일 뿐이다. 육안으로는 형태도 특징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초기 배아를 흔히 “의미 없는 조직” 혹은 “의학적 폐기물”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4] 그러나 이 작은 세포 덩어리 안에는 한 인간의 평생을 이끌어갈 ‘완전한 설계도’가 이미 담겨 있다. 이것은 잠재적인 정보가 아니라 이미 작동하는 실제 프로그램이다. 세포들은 신호를 주고받으며 방향을 결정하고, 발달 초기 단계를 조직한다. 이 모든 과정은 우연이 아니라 창조주의 세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다. 어떠한 컴퓨터도 그 복잡성과 정교함을 따라갈 수 없는 코드로 배아는 움직인다.
[5] 이렇게 질서 있는 생명을 보면서 “하찮다”거나 “버려도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작다는 이유만으로 그 생명을 가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 앞에 펼쳐진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장이 뛰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 생명의 가치를 부여하시지 않으신다. 눈이나 팔, 장기가 형성될 때까지 기다리시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생명의 가장 첫 순간부터 목적을 가지고 그 존재를 만드신다.
[6] 그래서 ‘인간 생명의 시작’은 단순한 학문적 논쟁을 넘어, 법·윤리·신앙·삶의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제이다. 과학은 생명을 설명하고, 철학은 그 의미를 묻고, 신학은 그 근원을 향한다. 서로 다른 질문을 하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을 향한다.“인간 생명의 본질은 무엇이며, 언제부터 소중한가?”과학은 분명히 말한다.
[7]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 전혀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다. 그 DNA는 아버지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독립된 인간의 것이다. 이후 DNA는 바뀌지 않는다. 단지 발달 단계만 바뀔 뿐이다. 세포가 8개일 때나, 80억 개일 때나, 그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그러므로 세포 수가 적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단계일 뿐이다.
[8] 만약 인간의 가치를 크기나 기능으로 결정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작으면 덜 인간인가? 그렇다면 미숙아는 가치가 적은가?기능이 없으면 인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식물인간 환자는 어떤가? 심장이 뛰어야 인간인가? 그렇다면 인공 심장으로 사는 사람은?
결국 철학과 윤리는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9] 인간의 가치는 외형이나 능력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서 나온다. 존재하는 순간부터 존귀하다. 성경은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말한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다”(렘 1:5).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나이다”(시 139:16)
의학적으로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은 바로 수정 직후, 배아 단계이다.
[10] 즉 하나님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가장 초기 순간부터 그 생명을 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생명을 “형태가 갖추어진 후”가 아니라 “시작되는 순간”부터 붙드시고 역사하신다. 세상은 배아가 너무 작고 기능이 없어서 덜 인간 같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정반대의 진리를 강조한다. 가치는 크기에서 오지 않는다. 겨자씨 한 알에 천국이 담긴다(마 13:31–32). 가치는 기능에서 오지 않는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전 1:27).
[11] 가치는 능력에서 오지 않는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에도 존귀하다. 따라서 태아가 작다고, 기능이 미약하다고 해서 가치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가장 작은 순간부터 그 생명을 향한 계획을 세우신다. 과학도 ‘수정 순간’을 생명의 출발로 본다. 일부 연구는 정자가 난자에 들어가는 순간 빛의 섬광이 일어나는 장면을 포착하기도 했는데, 많은 이들은 이것을 생명의 신비로운 시작으로 본다.
[12] 결국 우리는 이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생명은 형태가 갖추어진 후가 아니라, 존재가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다. 다 자란 어린이나 성인만이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라,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그 찰나의 순간부터 이미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 안에 있는 존재이다.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깊은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돌려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