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의 의미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초대’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생일 파티, 결혼식, 자녀의 결혼식, 또는 새 집으로의 집들이 초대까지. 그 초대장 한 장에는 단순한 일정 안내를 넘어선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곧 “당신이 오면 기쁩니다”라는 마음의 표현이며,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내가 기억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초대란 “나는 당신을 소중히 여깁니다. 당신이 함께해 주길 바랍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반대로 초대를 받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떻습니까? “나는 제외되었구나.”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사람의 마음은 초대와 배제에 따라 따뜻해지기도, 차가워지기도 합니다.
하늘로부터 온 초대장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초대장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 초대장은 종이 한 장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오셔서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그분은 잃은 자를 찾아오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죄인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세리 레위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이 짧은 한마디는 예수님의 초청의 언어입니다. “너도 내 잔치 자리에 오너라.” “너도 나와 함께 걸어가자.” “너도 내 곁에 있기를 원한다.”
죄인의 자리까지 찾아오신 주님
예수님 당시 세리들은 사회적으로는 매국노로 낙인 찍혔습니다. 자기 민족이 아닌 로마 제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기에 동족에게 배신자로 여겨졌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죄인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세리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추구한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종종 창기와 함께 죄인 그룹으로 묶여 불렸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을 이들을 상종하지도, 식탁을 함께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세리 레위를 주님께서 만나주십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눅 5:27) 예수님이 먼저 ‘나가사’ ‘보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레위가 주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레위가 무엇을 하고 있을 때 만나 주셨습니까? 그는 세관에 앉아 있었을 때입니다(27절). 그곳은 돈의 자리이자 고립의 자리였습니다. 동족에게는 배신자, 로마에게는 이용당하는 자, 사람들에게는 죄인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자리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죄인의 자리”에 직접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그가 회개한 후가 아니라, 여전히 세관에 앉아 죄인으로 살아가던 그 순간에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사랑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나를 따르라” 주님의 초청은 언제나 먼저 찾아오시는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초청받은 자에서 초청하는 자로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눅5:28). 예수님의 명령에 레위는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레위가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서 결단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즉시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강력한 결단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는 재정적으로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향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결단은 희생을 요구했지만, 그 희생은 부르심의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하기에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세리 레위를 초청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당시 사회에서 가장 멸시받고 버림받은 사람까지 부르셨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에게까지 미친다는 복음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눅 5:32)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멀리 있는 사람, 죄인, 사회에서 미움받는 사람도 예수님은 초청하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리와 같은 사람들” 즉 사회에서 소외된 자, 멸시받는 자를 품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셨듯이 우리를 통해 우리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초청하십니다. 레위는 변화된 삶의 증거로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 잔치에 예수님 외에 누가 초대되었습니까?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눅5:29)
레위는 자신의 집을 열어 예수님을 모시고 큰 잔치를 벌렸지만, 그 잔치에 다른 세리들을 초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레위는 단순히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 친구들을 부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에 그들을 초청했습니다. 죄인의 자리에 있었던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을, 이제는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세리를 죄인들로 여겼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비방을 합니다(눅5:30). 세리를 죄인으로 여기는 것은 바리새인들이나 예수님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죄인이기에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죄인이기에 다가가셔서 그들이 회개를 통해 새사람이 되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5:31-32)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회개시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오늘 교회 역시 이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에서 멸시받고 소외된 자들, ‘세리와 같은 사람들’을 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초대’의 형태로 온다
복음은 언제나 초대의 형태로 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초대가 자신에게 온 것인지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명은 그 초대가 “바로 당신에게 온 것”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대장을 전하는 ‘하늘의 우편배달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셨듯이,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잃어버린 영혼들을 초청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이 영혼을 주님의 잔치로 초대합니다.”
이 원고의 내용은 전적으로 저자의 것입니다.
*저자에 대해서: 정신찬 교수는 센트럴신학대학원 설교학 교수(설교&예배 분과장, 겸임)이며, 샌안토니오 제일한인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