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오늘 아내와 함께 ‘기흥호수공원’에 다녀왔다. 꽃도 많고 경치가 좋다고 해서 처음으로 가본 곳이다.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오전,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참으로 평화로웠다. 호수 주변에는 갈대가 한들한들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알록달록한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하나님이 붓으로 그려놓은 풍경화 같았다. 바람은 부드럽게 불어와 볼을 스쳤고, 하늘은 높고 파랗게 열려 있었다.

[2] 가을 특유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햇빛이 따사롭게 비추자 마음이 절로 맑아졌다. 오랜만에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서니, 깊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걱정이 다 사라지는 듯했다.
며칠 동안 부흥회와 강의 일정이 이어져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자연 속에서 쉼을 얻으니 너무나 좋았다.

[3] 무엇보다 황토흙 위를 맨발로 한 시간 반 동안 걸었을 때 느꼈던 그 감각은 참 특별했다. 그동안은 일반 흙 위에서 걷기를 했는데, 공원에는 황토흙이 깔려 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비가 와서 진흙이 되었을 때가 제일 효과가 좋다고 하는데, 마른 흙이라도 황토 위를 걷는 게 축복이다. 맨발 걷기를 하고 나서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여러모로 몸에 유익한 일들이 일어나니 끊을 수 없다.

[4] 흙냄새가 코끝에 스며들고,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며 속삭였다. ‘그래, 이게 진짜 쉼이란다.’ 정신 없이 설교하고 강의하다가 그런 휴식을 갖게 되니 너무 행복했다. 마치 하나님께서 “조금은 쉬면서 일하거라. 내가 만든 세상도 음미해보거라” 하시는 음성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순간 유명한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보았다.”

[5] 현실에 바빠서 거기 몰두하다 보면 더 넓은 세계와 가치를 깨닫지 못할 수가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리라. 그래서 휴식, 휴가, 안식, 쉼이 필요하다. 일할 땐 열심히 하고 쉴 땐 푹 쉬고 또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하나님이 누리라고 주시는 사계절의 맛은 적어도 한두 번은 만끽하고 지나가게 해야 함이 지혜라 생각된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6] 늘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일에 눌려 살아간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기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을 만드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분주한 삶 속에서도 이렇게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평범함 속에 담긴 은혜가 얼마나 큰지 새삼 느껴진다. 오늘의 맑은 공기와 햇살, 그리고 호수의 반짝임을 마음에 담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7] 산책길을 걷다 보니,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단풍잎들이 바닥에 수놓여 있었다. 붉은빛, 주황빛, 노란빛이 어우러진 그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그중에서 예쁜 것들을 하나씩 주워 들었다. 그리고 집에 갖고 와서 사진을 찍어보니, 화면 속 장면이 정말로 작품 같았다. 그 어떤 화가의 빠레트보다 더 풍성한 색감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 그것도 가을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울긋불긋한 색채는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다.

[8] 해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 나뭇잎들을 물들이시는 창조주의 섭리가 얼마나 섬세하고 놀라운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매해 같은 계절을 주시지만, 결코 똑같은 색으로 물들이지 않으신다. 매년 조금씩 다른 색조로 세상을 새롭게 채색하신다. 그분의 예술적 감각과 사랑이 계절마다 담겨있음을 절감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9] ‘그렇다면 영원한 천국의 풍경은 얼마나 휘황찬란할까?’ 이 땅의 가을 풍경조차 이렇게 아름답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빛으로 그려두신 천상의 작품들은 얼마나 더 화려하고 영광스러울까? 그때는 인간의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감상할 찬란한 빛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그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작은 아름다움 하나하나가 더 귀하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10] 황톳길을 맨발로 걷다 보니 시장기가 돌았다. 호숫가 근처에는 식당들이 즐비했는데, 그중 ‘홍두깨 칼국수’라는 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치대시고, 홍두깨로 밀어 썰어주시던 손칼국수의 맛이 문득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따뜻한 국물 냄새가 가득했다. 그러나 메뉴판을 보니 ‘바지락 칼국수’였다.

[11] ‘어머니표 손칼국수’가 아니라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국물 한 숟갈을 떠먹는 순간 마음이 풀렸다. 짭조름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어머니의 손맛은 아니었지만, 그 향수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코끝이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겨울의 그림자가 성큼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저물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12] 잠시지만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아내와 함께 웃고 걸으며 자연을 느낀 이 시간이 내 영혼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오늘 내가 밟은 황토길, 손에 쥔 단풍잎, 그리고 바라본 호수의 반짝임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다. 그것들은 작지만 확실한 위로였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다시 한 번 감사의 고백이 흘러나왔다. 오늘, 나는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진정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now), 하나님이 주신 이 순간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