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리스타트 교회 담임 박형용 목사
(Photo : ) 달라스 리스타트 교회 담임 박형용 목사

<만나보기> 성경의 인물들을 만나보며 내 인생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는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 두려움이 찾아올 때에….엘리사 이야기

<열왕기하 6장 8-20절>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열왕기하 6장 8절부터 20절의 말씀에는 엘리사 선지자와 엘리사 선지자를 따르던 종에게 벌어진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는 “아람” 이라는 나라의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울 때였는데, 군사를 보내는 족족 이스라엘 군대가 아람 군대의 공격 루트를 미리 알고 방어를 해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아람 왕이 알아보라고 했더니, 이스라엘에는 “엘리사” 라고 하는 선지자가 있어서 아람 왕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모든 계획들을 미리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이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서 수많은 병거들과 군사들을 밤중에 보내게 됩니다. 엘리사를 죽여서 골치거리를 없애겠다는 거죠.

열왕기하 6장 14절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얼마나 많은 군사들과 말과 병거들을 보냈는지, 그 숫자가 엘리사가 살던 “도단”이라는 곳의 성을 에워 쌀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엘리사의 종이 겁을 먹게 되죠.

열왕기하 6장 15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엘리사를 둘러 싼 상황은 정말로 무서운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밤에 엘리사가 죽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 될 정도로, 엘리사의 대적들은 크고 무서웠죠.

하지만 성경은 그럴리가 없다는 듯이 “엘리사”에 대해서 한 가지 아름다운 표현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열왕기하 6장 9절을 보면 엘리사를 이렇게 부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10절을 또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5절을 또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지금 성경이 반복해서 엘리사를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거죠. 그러면 이 말은, 지금 아람 군대의 왕이 누구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누가 나서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서게 되는 것이죠.

열왕기하 6장 16절과 17절을 보겠습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지금 우리가 읽은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가 보고 있는 것을, 엘리사의 종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겁을 먹지 않고 있는데, 엘리사의 종은 겁을 먹고 떨고 있었다는 거죠.

그러면, 엘리사가 본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 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엘리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 아람 군대의 왕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는 것을 보고, 알고, 분명히 믿고 있기 때문에 나는 두렵지 않다는 거죠.

히브리인들의 사고에 “본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고 끝내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볼 때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 까지를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이 “본다”라고 할 때는, 항상 “경험으로 배운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엘리사가 보여준 믿음은, 단순히 그가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넘어 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엘리사가 경험으로 알게 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눈이 있었기 때문에, 엘리사는 자신의 종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했더니, 17절에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물론 엘리사가 기도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엘리사의 종이 눈을 열어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니”, 그랬더니 그가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면 우리도 볼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고 믿고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표현중의 하나는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만큼 우리가 자주, 그리고 많이 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그토록 자주, 그리고 많이 두려워 하는 것일까요?

상황이 심각해서 입니까? 환경이 어려워서 인가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성경이 밝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를 때는 소유격의 표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나의 것”이라는 표현이죠. 이 말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표현입니다.

이사야 41장 14절은 믿음없이 두려워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이런 약속을 주셨음을 기록합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아무리 우리가 야곱같이 행동해도, 이스라엘이라 불리면서도 여전히 야곱같이 믿음없는 행동을 해도, 말 그대로 버러지 같이 연약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보지도, 경험하지도, 믿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매일의 현실 속에서 두려워 떨고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람 군대가 사라지는 것이 소원입니까? 아니면 애초부터 아람 군대가 쳐들어 오는 것 같은 어려운 현실이 주어지지 않는게 소원입니까? 저의 소원은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열어서, 세상보다 하나님이 크다는 것을 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저의 소원은 하나님이 저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저의 소원은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지키신 다는 것을 저의 삶으로 경험하고, 배우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소원이고, 우리의 소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상황이 어렵습니까? 엎드려 기도 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현실이 두렵습니까? 멈추지 말고 기도 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우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엘리사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눈도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믿음의 눈을 들어서 주를 바라 볼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들어가지 마시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문제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눈을 들어서 주를 바라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여러분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그늘 아래에서 평안을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