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국내 시인 가운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를 쓴 분이 한 분 있다. 다른 건 나와 맞지 않아도 그의 시만큼은 참 좋다. 그의 시는 추상적인 사유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과 삶의 뿌리에서 나온다는 점에서와, 꾸밈없고 맑고 정직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엄, 그리고 양심을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너무 매력적이다.
오늘도 그의 짧은 시 한 편을 읽었다.
[2] “살아있다는 것이 내겐 당연하지 않다.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위대한 경이(wonder)이다.” 어떻게 이렇게 의미심장한 글을 이토록 짧게 잘 표현할 수 있는 건지 그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여겨진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달고 산다. 모두가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나, 더 많은 걸 소유한 나, 더 높은 직위에 있는 나를 추구하는 것 말이다.
[3] 이 모두가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당연시한 결과들이다. 내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일이 아니다. 남녀가 결혼해서 사랑을 나눈 결과 한 생명체가 잉태된다. 한 번의 사정에서 나오는 남성의 정자 수는 평균 1억~3억 개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정자 중 오직 1개만이 최종적으로 난자와 결합해서 생명을 잉태한다. 이보다 치열한 경쟁이 또 있을까?
[4] 생명의 탄생이 얼마나 경이롭고 정교한 과정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자신이 지금 이 땅에 존재하는 자체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이에게 불평과 원망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다는 것이 내겐 당연하지 않다.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위대한 경이(wonder)이다.”
[5] 신앙인으로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나님을 믿고 천국을 사모하는 것은 내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대한 경이이다.” 그렇다.
1억~3억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이 땅에 존재하게 된 자체도 경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천국 백성이 된 사실은 더없이 어렵고 힘든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6]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가 태어나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놀라운 경이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른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7] 영국의 조지 뮬러는 젊은 시절 방탕과 허무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붙드셨고, 결국 그는 수많은 고아들을 돌보며 기도의 사람으로 살게 되었다. 뮬러는 생애 말년에 이런 고백을 남겼다.
“내가 믿음을 가진 것이 결코 나의 공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열어주셨기에 가능했던 은혜일 뿐이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8] “믿음조차도 내 것이 아니요,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듯이, 내가 믿고 있다는 것도 결코 당연하지 않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눈을 열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믿음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오직 은혜와 자비, 그리고 놀라운 경이의 역사 덕분이다. 따라서 불평과 원망 대신 감사와 경외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9] 손경민의 복음성가 “은혜”(Grace)의 가사가 생각난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10] 그렇다. 살아 있음이 은혜요, 믿음이 은혜요, 구원이 은혜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만이 시인의 고백처럼,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위대한 경이이다”라는 찬탄을 넘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이렇게 외칠 수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그 기쁨과 감격으로만 남은 생을 멋지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