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머피 박사. ©Christian Post
데이비드 머피 박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데이비드 머피 박사의 기고글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문화 전쟁을 의미하는 이유'(Why following Jesus Christ means cultural war)를 29일 게재했다. 

 

데이비드 머피 박사는 센테니얼 연구소(Centennial Institute)의 펠로우이자, 콜로라도 크리스천 대학교 성인 및 대학원 과정에서 행동사회과학 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그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 하니라"(사도행전 7:59).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충실히 따를 때, 시대의 파괴적인 이데올로기들과 충돌하게 되는 것은 스데반의 순교 시절부터 이어져 온 변치 않는 현실이다. 예수의 부름을 따른다는 것은 잘못된 문화적·정치적 사상들과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박해와 고문, 죽음을 당하고 있다. 스데반이 곧 들어가게 될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본 순간 이후, 순교는 언제나 교회의 동반자였다. 

찰리 커크는 한창 젊음과 영향력의 절정에 있을 때 비극적으로 순교의 반열에 합류했다. 그의 죽음은 서구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 사회는 더 이상 이슬람이나 다른 전체주의 정치 체제 아래 흔히 일어나는 순교에 익숙하지 않다. 이번 불의한 사건은 서구 교회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찰리 커크가 살해된 다음 주말, 미국 전역과 서유럽 교회들은 기록적인 출석을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으로 다시 돌아오거나 처음으로 그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교회는 이러한 영적 갈망에 단순하고 직접적인 복음으로 응답해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안에 담긴 값없는 은혜를 분명히 선포해야 한다. 그의 죽음과 부활에서 예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죄의 짐을 지셨다. 찰리 커크는 한 번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당신이 왜 십자가가 필요한지를 배우는 곳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만이 우리의 문화적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십자가를 따른다는 것은 행동을 요구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나라는 심각한 문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으며, 이는 미국을 파괴하고 있다. 선과 악의 싸움은 부인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언제나 세속 사회와의 충돌을 불러왔으며, 교회사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반복된 일이었다. 

오늘날 이 현실은 특히 정치적 좌파의 폭력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들은 이성을 거부하는 죽음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최근의 사건들은 동시에 광범위하고도 잔혹하다. 찰리 커크의 피살 사건과 이어진 좌파 진영의 환호는 미국에 상황이 심각하며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리스도인들은 좌파 폭력의 근원 가운데 하나인 트랜스젠더 이데올로기의 확산에 분명히 맞서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단순한 진리를 거부하는 것은 심리적·영적 불안정을 초래한다. 

따라서 교회와 더불어 파라처치(parachurch) 단체들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역사 내내 극단적 주변부에 있던 사상들이 오늘날 주류가 되어, 혼란스러운 젊은 이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비극들은 좌파 군중의 환호와 정치인들의 묵인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많은 경우, 공격의 대상은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 개인이나 기독교 학교들이다. 모든 기독교 학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교실에 뿌리내리지 않도록 점검하며, 성경적 진리에 굳건히 서야 한다. 

헌법적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모든 미국인은 참여적 정치에 대한 책임을 공유한다. 전체주의 체제 하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특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적극 참여하여 기독교적 세계관에 따라 봉사할 지도자들을 선출해야 한다. 국가는 정의와 질서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이며, 악을 다스리기 위해 칼을 휘둘러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이는 교회의 참여 없이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교회는 이 문화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침묵할 수 없다. 다니엘 호로위츠가 최근 말했듯이, "정책, 법, 문화가 일치해야 이 위험한 실험을 끝낼 수 있다." 다른 어떤 제도가 아니라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트랜스젠더 신념이 불러오는 증오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아름다운 진리 속에 더 나은 길이 있다. 세상과 트랜스젠더 폭력 속에 드러난 깨어짐은 우리 민족의 마지막 장이 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와 소망, 화해가 있다. 

스데반의 마지막 말은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였다. 찰리 커크는 잔혹하게 살해당했기에 마지막 말을 남길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예수 사랑과, 반대자들과도 공개적으로 대화하던 그의 성품을 고려할 때, 아마도 그 역시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찰리 커크처럼 살아가기로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