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글을 쓰는 사람은 늘 글감을 찾아다닙니다. 마치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좋은 재료를 찾아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글감은 단순한 소재가 아닙니다. 삶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반영입니다. 어떤 이는 길가에 핀 들꽃에서 글감을 발견합니다. 또 어떤 이는 우연히 스친 사람의 한마디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립니다. 글감은 특별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읽는 글,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젊음과 나이듦, 그리고 침묵과 고요 속에 숨어 있습니다.

이번 주간에 제가 만난 글감은 “놓아버림”입니다. 놓아버림, 놓아줌, 내려놓음이 제 마음 속에 맴도는 단어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내려놓아야 할 것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놓아주어야 할 것도 점점 많아집니다. 놓아버림은 결코 포기가 아닙니다. 놓아버림은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첫째, 놓아버림은 비움을 의미합니다.
꽉 찬 그릇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좋지만 우리 마음 그릇에 좋지 않은 것도 담겨 있습니다. 마치 손톱을 잘라도 다시 자라듯, 안경을 닦아도 다시 먼지가 묻듯, 마음에도 좋지 않은 것이 쌓입니다. 비움이 있을 때 채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빌 2:7). 예수님의 비우심은 깊고 오묘한 뜻이 내포되어 있지만 우리는 먼저 비움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채우시기 전에 비우신다. 만족하게 하시기 전에 굶주리게 하신다. 높이시기 전에 낮추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영혼의 그릇이 집착과 두려움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반대로 영혼의 그릇을 비울 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합니다.

둘째, 놓아버림은 자유를 의미합니다.
놓아버림은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집착(執着)은 어떤 대상, 생각, 관계, 혹은 어떤 욕망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상태입니다. 집착하면 과도한 에너지를 쏟고, 다른 것을 보지 못하며 오직 집착한 것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집착은 불안과 두려움, 초조함과 조급함을 낳습니다. 사랑은 집착이 아닙니다. 집착은 자신과 상대방을 가두어 두는 상태입니다. 성숙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고 존중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성숙한 사랑은 뿌리와 날개를 함께 주는 것입니다. 반면, 집착은 상대방을 지치게 만듭니다. 집착을 내려놓을 때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리처드 로어는 “내려놓음의 길은 잃는 길이 아니라, 더 깊은 자유로 들어가는 길이다.”라고 말합니다. 집착을 내려놓을 때 눈이 열려 다른 세상을 보게 됩니다. 집착은 쓰레기를 낳습니다. 집착을 버리는 것은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는 것과 같습니다. 시몬 베유는 “집착은 환상을 짜내는 큰 직공이다. 현실은 집착을 놓은 자만이 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집착을 버리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셋째, 놓아버림은 신뢰를 의미합니다.
놓아버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붙잡고 보호하는 것 보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고 보호해 주실 때 더욱 안전합니다. 아브라함은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 이삭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애착을 넘어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눈은 이삭에게 고정되었습니다. 그의 안전 때문에 늘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이삭이 그의 우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셔서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삭을 하나님의 손에 내려놓는 순간, 그는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빈손에 이삭을 다시 돌려주셨습니다. 큰 복을 더해 주셨습니다(창 22:17).

넷째, 놓아버림은 흐름을 따르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은 흐름을 막는 것입니다. 저는 한때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지혜이며, 그것은 흐름을 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놓아버림은 무조건 포기를 뜻하지 않습니다. 놓아버림의 지혜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집착해서는 안 되는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 지혜이고, 되는 것을 따라 되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지만, 그 결과는 아름답습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놓아버림은 삶이 흐르도록 허락하는 행위다. 놓을 때 삶은 저절로 흘러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상처는 놓아줄 때 치유됩니다. 자아를 하나님께 맡길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을 주관하시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 더욱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자아 부인은 자기 소멸이나 멸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하는 길입니다.

놓아버림은 새로운 출발입니다. 꽃이 떨어지는 자리에 열매가 맺히듯, 놓아버림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를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함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