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60이 넘은 사람에게 시험이나 면접 볼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주일, 62세의 나이에 면접을 본 사람이 있다. 그는 서울의 큰 교회에 담임 청빙을 위해 10명에 가까운 청빙위원들 앞에서 면접을 보았다. 바로 내 얘기이다. 이 나이에 더는 시험이나 면접 볼 일은 없을 것이라 단정했으나 사람이 함부로 단정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2] 물론 내가 담임 청빙 후보는 아니었다. 내가 강력하게 추천한 목사를 위해 면접을 본 것이다. 아무리 내 일이 아니라 해도 면접은 면접이었다. 1시간 반 정도나 되는 긴 시간 동안 날카로운 질문에 답하느라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서 녹초가 되어 쓰러져 일찍 잠들어버렸다.
요즘 수천 명 되거나 수만 명 되는 교회들이 후임 청빙에 여념이 없다.
[3] 그런 교회에 최종 후보 중 몇 사람에 선택되어서 면접 보는 이들이 많이 부러운 요즘이다. 오늘도 나를 아끼는 선배 목사님이 남을 추천하지 말고 내가 담임을 하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내주신 일이 있다.
그런데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60세가 넘어가면 담임 후보 물망에 올라가는 일 자체가 불가한 현실이다.
[4] 담임으로 사역하진 못하더라도 한 가지 욕심만큼은 속일 수가 없다. 설교 잘하는 일 말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감동받고 은혜받는 탁월한 설교자가 되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우리 시대 최고의 고수들로부터 큰 도전을 받고 산다.
최근 나는 보컬리스트 소향이 부르는 노래에 푹 빠져 있다.
[5] 폭발적인 가창력과 독보적인 음색을 자랑하는 그녀와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탄성과 격찬을 아끼지 않는 전문 비평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도전을 받는다. ‘아, 나도 저렇게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탁월한 설교자가 되었으면!’하는 도전 말이다.
한때 메시를 보면서도 받은바 도전이 크다. '신계'(神界)'라 할 정도로 현란한 드리블과 골 결정력은 역사상 최고로 불리기 때문이다.
[6] 오늘 나는 또 한 사람을 통해서 크게 도전을 받았다. 오늘 오전부터 우리 학교의 개강 수련회가 시작되었다. 강사는 토론토 밀알교회의 박형일 목사이다. 내가 총장께 추천해서 강사로 결정되었다. 오전에 실시한 첫 설교 시에 내 마음은 긴장과 걱정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내가 모셔 온 강사이다 보니 학생들과 교수들로부터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느냐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기우(杞憂)였다.
[7] 설교학 교수인 내가 아무나 강사로 소개할 리가 있겠는가! 차세대 유망주 가운데 한 사람인 박형일 목사는 일단 외모가 출중하다. 인상이 좋고 늘 웃음 띤 귀공자 얼굴을 하고 있어서 누가 봐도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설교의 전달이 출중한 사람이다. 현재 담임 목사들 가운데서 전달이 가장 탁월하고 들리는 설교를 하는 몇 사람 중 한 명이다. 젊음이 꽃피는 학부 학생들에겐 우선 설교가 들려야 한다.
[8] 잘 전달되지 않는 따분한 설교로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없다. 몇십 초 안에 청중들의 시선을 끌어당길 수 없다면 아이들은 핸드폰을 꺼내서 보기 시작한다. 평소 설교 전달에 있어서 3명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 강의 시간에 자주 자랑한바 있었는데, 막상 실제 설교를 들으니 정말 전달의 귀재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졸거나 잠자거나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9] 모두가 강사의 설교에 귀를 쫑긋해서 은혜받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전달만 탁월한 게 아니라 설교의 콘텐츠나 전개 방식 또한 빼어난 것으로 이해되었다.
콘텐츠와 전달에 있어서 남다른 재능을 겸비했다면 더 말해서 무엇 하랴!
현장에서 박 목사의 설교를 직접 들어보니, 내가 칭찬하고 자랑하던 그 설교와는 또 다르고 은혜가 깊은 우수한 설교였다.
[10]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새로운 도전 정신과 의식이 더욱 강하게 일어남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랬다. 목회자의 최고 무기가 있다면 설교라 할 수 있다. ‘다른 강단과는 차별화되고, 다른 설교자들과는 족히 비교되지 않는 명설교가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비록 그가 후배라 하더라도 내가 부러워하고 자랑할 만한 설교가를 발견해서 드러내고 있다는 기쁨과 보람이 결코 작지 않다. 나 또한 그런 설교자로 거듭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