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영어권에서 자주 활용하는, 그림과 함께 짧은 글로 전개되는 유머들을 접할 때가 많다.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힘들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유머들이 적지 않음을 안다. 어제 페이스북에서 그중 하나를 본 적이 있다. 이미지와 함께 그 밑에 다음과 같은 영어 문장이 있었다.

 

“I’M NOT LED INTO TEMPTATION. I GO THERE ALL BY MYSELF.” 이는 “나는 유혹에 이끌려 가는 게 아니에요. 그냥 내가 스스로 알아서 그곳으로 가요.”라는 뜻이다.

[2] 이 문장은 사람이 외부의 힘에 의해 수동적으로 유혹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로 유혹에 빠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문장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한 구절, 곧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태복음 6:13)를 유머러스하게 비튼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을 비튼 것이라면 큰 오산이다.

[3] 이것은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본성을 솔직히 드러낸 고백이기도 하다. 즉, 마귀나 세상의 유혹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나 직접적으로는 우리 자신 안에 이미 자리 잡은 욕망과 죄성 때문에 스스로 유혹에 빠진다는 뜻이다. 이는 죄의 본질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으며, 죄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인정하는 고백으로 볼 수 있다.

[4] 이러한 문장의 의미를 가장 잘 뒷받침하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성경 구절이 있다. 바로 야고보서 1장 13~15절이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의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성경 구절은 유혹의 근원이 외부의 사탄이나 환경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욕심’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5] 그림 속 아이의 고백처럼, 유혹은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욕심이 스스로를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성경은 명확히 가르쳐준다.
“I’m not led into temptation. I go there all by myself.” 이 짧은 문장은 죄의 본질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뒤집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럼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6] 우리 자신 모두가 ‘사탄이나 외부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사탄이나 외부로부터의 강력한 유혹이 왔을 때 그것을 제어하여 범죄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를 범하면 남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나쁜 사람의 꾐에 빠져서 어쩔 수 없이’ 등등 핑계를 댈 때가 많다.

[7] 최초의 인류인 아담이 그랬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하와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3b).
아담은 하나님 핑계, 하와는 뱀(사단) 핑계를 댔다. 그 결과가 어찌 됐나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4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8]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 3:14). 하나님은 여자를 유혹한 뱀(사단)에게 벌을 내리셨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지 않으신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9] 여자의 말을 거절하지 않은 아담에게도 하나님은 벌을 내리셨다. 그렇다면 하와는? 하와 역시 뱀(사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죄를 범했기에 결국엔 벌을 받았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 3:16).
여기서 주목할 점은 뱀에겐 따짐 자체가 없었고 회개나 회복의 기회 또한 없었다는 점이다.

[10] 그렇다. 자신의 종말까지는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들을 파괴하고 허무는 일만 해온 마귀는 회개나 자비와 긍휼의 대상이 아니다. 감사한 것은 사단의 유혹에 빠져 범죄하고 벌을 받게 된 사람에겐 질문과 함께 회복의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을 암시하셨다.

[11] 그렇다. 그림 속 아이의 고백은 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다. 죄는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면의 욕심이 낳은 결과이며, 우리는 그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란 사실이다. 이 진리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이상 ‘죄의 희생자’라는 변명 뒤에 숨지 않고, 스스로의 죄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감당하게 된다. 물론 내 힘으로가 아니라, 유혹에 빠지지 않을 힘을 달라고 부단히 하나님께 기도로 요청함으로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