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Photo :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저는 나무에게 배웁니다. 봄이 되면 굵고 무성한 가지보다는 연약한 새순 끝자락에 꽃이 핍니다. 연약함의 신비입니다. 딱딱하고 안전한 곳이 아니라 연약하고 불안한 자리에 꽃이 핍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그 자리에서 꽃이 핍니다. 하나님은 연약함을 통해 일하십니다. 연약한 가지 끝, 연약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강한 사람, 거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사람과 온유한 사람을 쓰십니다. 또 강한 자를 쓰실 때에도 그를 연약하고 온유하게 빚어 쓰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연약함과 부드러움 위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함을 가꾸는 것이 영성 훈련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약함 자체에 있지 않고, 오히려 지나친 강함에 있습니다. 우리가 강하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아를 신뢰합니다. 반면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아를 부인합니다. 하나님은 연약함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고후 12:9). 연약함은 무력함이 아닙니다. 연약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적 민감성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앞에 언제나 순종할 수 있는 유연함입니다. 연약함은 포도나무에 붙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요 15:5).

가지 끝에 꽃이 핍니다. 끝자락에 꽃이 핍니다. 가장자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종종 변방에서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 자라나신 나사렛은 변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주로 갈릴리, 즉 이방과 만나는 경계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곳은 예루살렘 성문 밖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예수님의 십자가는 끝자락입니다. 그 자리에서 부활의 꽃이 피고, 부활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자리는 끝자락입니다.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 끝자락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억울한 감옥 생활의 끝자락에서 바로의 꿈을 해석했습니다. 다윗은 유다 광야의 끝자락에서 성장했습니다. 다니엘이 들어간 사자굴은 죽음 앞에 선 또 한 번의 끝자락이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놀라운 일을 본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끝났다”고 말할 때 하나님은 “이제 시작”이라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절망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소망이 시작됩니다.

저는 오래전에 《벼랑 끝에서 웃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때 이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길을 내셨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왔을 때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만의 음모로 온 유대인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에스더의 기도를 통해 역전의 드라마를 이루셨습니다. 제 인생 여정에도 벼랑 끝이 있었습니다. 벼랑 끝은 위험했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꽃이 핀 자리에 열매가 맺힙니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를 내지만, 말하지 않습니다. 꽃은 고요 속에 피어나고, 자신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 경이로움에 경탄하지 못합니다. 꽃은 머물러야 할 자리에 머물다가,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조용히 떠납니다. 아름다울 때 머무르고, 아름다움이 다하면 품위 있게 물러나는 꽃, 그 뒷모습까지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꽃을 통해 피어날 때와 시들 때, 머물 때와 떠날 때를 배웁니다.

꽃의 떠남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꽃이 떠난 자리에 열매가 맺힙니다. 열매 속에는 꽃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꽃이 지는 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열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양보입니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꽃이 진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힙니다. 문병학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열매는 꽃이 진 자리 그 상처 위에 맺힌다. 이것은 우주의 섭리이자 생명의 이치이다.”(전북일보 칼럼 「꽃 진 자리 그 상처 위에」, 2019.12.9.) 시인의 안목이 놀랍습니다. 꽃이 진 자리에서 ‘상처’를 보았고, 그 상처 위에 맺힌 ‘열매’를 보았습니다.

저는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를 묵상합니다. 연약한 가지에 돋는 새싹과 그 끝자락에 피는 꽃을 묵상합니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에 맺힌 열매들을 묵상합니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무는 힘들게 맺은 열매를 자기 것으로 취하지 않고 아낌없이 나눕니다. 풍성한 과실로 섬기는 나무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실을 먹는 우리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나무를 통해 말 없는 섬김을 배웁니다. 열매 속에는 많은 씨앗이 담겨 있습니다. 나무는 열매를 나눔으로 씨앗을 뿌리고 재생산의 비전을 성취합니다. 나무는 가장 좋은 것을 나눔으로 가장 좋은 것을 돌려받습니다.

연약함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꽃이 지는 것처럼 떠나야 할 때가 와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힘들게 맺은 열매를 다른 이가 취한다고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꽃이 지는 것은 끝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십니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 속에는 또 다른 생명이 움트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끝자락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가장 귀한 열매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열매 속에 담긴 씨앗과 함께 하나님은 새로운 계절과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십니다. 그러니 오늘, 당신의 ‘끝자락’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곳은 하나님의 손길이 가장 가까이 닿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부활의 꽃이 피고, 그 자리에서 생명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