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 뱀파이어 영화 볼 수 없어
평단과 대중 다 호평, 흥행 성공
서아프리카 흑인 종교 전통과
노예제 종교적 심성 주는 영향
흑인 성가대 찬송 대신 블루스
선택하는 목회자 아들 주인공
박욱주 박사님의 이번 평론은 영화 <씨너스: 죄인들(Sinners)>을 다룹니다. 1930년대 초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극에 달했던 美 미시시피주에서 술집을 연 두 흑인 형제들과 뱀파이어의 전투를 주된 서사로 삼는 작품으로, <블랙팬서>를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5번째 장편으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주연은 마이클 B. 조던, 헤일리 스테인펠드 등이 맡았습니다. -편집자 주
블루스 뮤지션을 삶의 목표로 삼는 목회자 아들
지난 5월 28일 개봉작 <씨너스: 죄인들>은 뱀파이어 영화로, 1930년대 초 대공황의 여파가 미국 전역을 강타하던 무렵 남부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꽤 심층적인 문화적 함의와 윤리적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기에, 단순 뱀파이어 영화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씨너스: 죄인들>은 흑인과 유색인종을 향한 차별의 실상과 당시 미국 남부 흑인 공동체의 종교적·문화적 특색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제1차 세계대전과 광란의 1920년대, 그리고 대공황을 거친 당대 미국의 사회적 혼란상을 예리하게 풍자하는 블랙코미디 요소도 훌륭하게 녹아들어 있다.
<씨너스: 죄인들>은 이런 강점들이 어우러진 덕에 미국에서 평단과 대중 양측으로부터 대호평을 받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제작비 9천만 달러를 들여 북미 박스오피스 및 월드 박스오피스 전체 6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통상 홍보비가 제작비만큼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할 때, 투자 대비 세 배 이상의 수익을 거둔 것이다.
작품에서 눈여겨볼 비평 요소로 크게 두 가지를 지목할 수 있다. 첫째는 서구 기독교 문화 및 오컬티즘과 기괴하게 어우러진 서아프리카 흑인 종교 전통, 둘째는 노예제의 굴레가 인간의 종교적 심성에 미치는 영향이다.
먼저 이 영화에서 전면에 부각되는 서아프리카 흑인 종교 전통은 블루스(blues)와 후두교(hoodoo)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을 맡은 쌍둥이 형제 스모크 무어와 스택 무어, 그리고 두 사람의 사촌 새미 무어가 등장한다. 스모크와 스택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광란의 1920년대 시카고 폭력조직에 들어가 밀주를 유통하는 일을 하다 남부의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불법적으로 얻은 밀주를 갖고 흑인들과 유색인 이민자들을 위한 주점을 연다.
새미는 목회자의 아들로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새미의 아버지 제더다이아 목사는 아들 새미가 블루스 음악에 빠져 신앙생활을 버린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그는 아들에게 죄인들의 음악인 블루스를 버리고 다시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하지만, 새미의 마음은 블루스로 성공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새미의 아버지 제더다이아 목사는 아들 새미에게 죄인들의 음악인 블루스를 버리고 다시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하지만, 새미의 마음은 블루스로 성공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새미는 스모크와 스택이 개장한 주점에서 놀라운 기타 연주와 노래 실력을 선보이며 자신의 재능을 빛낸다. 이날을 기점으로 새미는 블루스의 마력을 좇아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기로 결심한다.
사촌 스모크는 그러지 말고 아버지의 목회를 돕고 교회 음악을 만들며 살라고 하지만, 새미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블루스 축제의 분위기에 취한 상태라 그 말을 듣지 않는다.
새미의 이런 결심은 그날 밤 뱀파이어의 습격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더욱 확고해진다. 교회에서는 존재를 부정하는 뱀파이어들이 실제 가까이에 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후두교의 비방이나 유럽 뱀파이어 전설에 나오는 뱀파이어 퇴치법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는 것 등을 보면서, 새미는 교회 안에만 초자연적 신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된다.
흑인 성가대 찬송과 블루스, 서로 다른 종교적·영적 지향점
블루스의 직접적 기원은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로 알려져 있다. 주로 농장 노동자로 일하던 흑인 노예들은 콜 앤드 리스폰스(call and response, 리더의 독창 후 여러 사람들이 후렴 부분을 합창하는 노동요) 형식의 노래를 불렀는데, 이는 서아프리카 토속음악의 형식을 본딴 것이었다.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필드 할러(field holler, 노동 현장에서 다른 흑인들이 들을 수 있게 부르는 독창)라는 새로운 형태의 흑인 음악이 생겨난다. 필드 할러는 기존 노동요와 달리 독창 형식을 갖췄으며, 노동요보다 훨씬 개인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토로하는 노래였다. 훗날 콜 앤드 리스폰스는 주로 흑인 성가대 찬송가 형성에 큰 영향을 줬고, 필드 할러는 주로 블루스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흑인들의 성가대 찬송과 블루스는 모두 비참한 노예생활의 애환, 울분, 그리고 고통을 담아낸다. 다만 그 고난을 해결하는 접근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흑인들의 성가대 찬송이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흑인들이 겪었던 사회적 차별, 육체적 고통,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한다면, 블루스는 하소연과 넋두리를 통해 심적 고통과 울분, 몸의 고단함을 달래려는 목표를 갖는다.
▲흑인 성가대 찬송은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흑인들이 겪었던 사회적 차별, 육체적 고통,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한다. 퍼듀대학 흑인 합창단 모습. ⓒpurdue.edu
그래서 순수하게 음악적 측면으로만 보자면, 흑인 성가대 찬송보다 블루스 쪽이 훨씬 더 높은 능력을 요구한다. 물론 흑인 성가대에도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지만 흑인 커뮤니티에서 최상위 음악적 재능을 갖춘 이들 상당수는 그 재능으로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 그리하여 사회적 차별과 소외로 응어리진 울분을 풀어내기 위해 블루스에 인생 전체를 바치는 경우가 많았다.
흑인 성가대 찬송은 합창을 통해 서로 음악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이 주는 위로감 자체를 향유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음악을 통해 전달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지라, 음악성이 조금 떨어져도 충분히 원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반면 블루스는 인간의 감정을 밑바닥으로부터 휘어잡는 극한의 음악적 역량이 뒷받침돼야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줄 수 있다. 게다가 독창이 기본이기에, 뮤지션에게 천부적인 가창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블루스는 흑인 뮤지션 가운데서도 최상위 재능을 갖춘 이들이 뛰어들어 발전시킨 음악 장르라 볼 수 있다.
물론 흑인 성가대 찬송과 블루스는 서로의 발전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흑인들의 독창용 가스펠 중에는 블루스 형식과 창법을 따르는 것들이 많고, 1940년대 이후 등장한 리듬 앤 블루스는 블루스의 형식과 의도를 계승하면서 흑인 성가대 찬송의 화음과 가스펠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블루스는 흑인 성가대 찬송이나 가스펠과 정서 및 동기에서 종교적으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흑인 찬송은 교회 회중을 향하지만 블루스는 이름 모를 청자, 자기 운명 혹은 죽은 부모나 가족을 향한 곡이 대부분이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면 블루스의 청자는 우상이 될 소지가 다분하고, 그렇기 때문에 <씨너스: 죄인들>에서 새미의 아버지 제더다이아 목사는 블루스를 '죄인들의 음악'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블루스는 흑인 성가대 찬송이나 가스펠곡과는 그 정서 및 동기에서 종교적으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흑인 찬송은 교회 회중을 향하지만 블루스는 이름 모를 청자, 자기 운명, 혹은 죽은 부모나 가족을 향한 곡이 대부분이다.
블루스는 현대 미국 대중음악의 핵심을 이루는 리듬 앤 블루스와 로큰롤의 직접적 기원이다. 그리고 블루스는 한국 대중음악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 주류가 된 R&B(1960년대 이후 리듬 앤 블루스를 통상 그 이전과 구별해 R&B라고 함)의 뿌리가 바로 미국 남부 흑인들의 블루스다.
영화 <씨너스: 죄인들>은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가 된 블루스에 담긴 흑인들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경험들에 대한 헌사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미국 흑인 음악의 두 초월적 지향점 가운데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인간의 삶을 옭아매는 운명과 주변인들에게 몰입하는 이교적 종교성의 발로를 정당화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계속>
▲박욱주 교수.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