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북한이 장기간 억류하고 있는 김정욱·김국기·최춘길 등 세 명의 선교사들을 즉시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엔 인권이사회의 임의구금실무그룹(WGAD)이 세 선교사의 가족이 낸 진정서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채택한 공식 의견서 내용이다. 

WGAD는 지난 3일 채택한 의견서에 북한에 의한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의 자유 박탈이 '임의 구금'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이어 "세계인권선언' 및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위반"이라고 했다. 

WGAD는 '자의적 임의 구금'으로 판단한 근거로 ▲ 체포·구금의 정당한 법 근거 미제시 ▲ 표현의 자유 침해 ▲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 ▲ 종교활동 차별 의도 등을 꼽았다. 이어 이들에 대한 즉시 석방과, 보상 및 배상, 독립적 조사, 권리 침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처 등 네 가지 사항을 6개월 이내 이행하라고 북측에 촉구했다. 

이번 WGAD의 결정은 북한의 행위가 유엔 회원국으로서 준수해야 할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한 것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북한이 세 선교사를 자의적 임의 구금, 즉 자유를 마음대로 박탈하고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북한이 이들 세 선교사를 더는 불법적으로 억류할 명분과 법적 근거가 없어졌다는 게 중요하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WGAD가 내린 이번 결정을 가장 반긴 이들은 억류된 선교사 가족들일 것이다. 김정욱 선교사의 아내 이복주 씨는 "북한에 억류된 남편과 선교사님들이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고 계신데, 유엔이 강력한 조치를 취해줘 감사하다"며 "이번 결정이 신속한 석방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국기 선교사의 아내 김희순 씨도 "정부와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준 덕분에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또 최춘길 선교사의 아들 최진영 씨는 "유엔인권이사회 행사에서 아버지의 석방을 호소한 지 1년 만에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와 감사하다"며 "북한이 이번 결정을 받아들이고 인도적 차원에서 선교사들을 석방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제 와서 드는 아쉬움은 유엔 인권이사회가 세 선교사를 북한이 '자의 임의 구금'하고 있다고 결정하는 게 그토록 힘들고 시간이 많이 소요될 사안이었나 하는 점이다. 좀 더 일찍 이 문제가 공론화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사실 WGAD가 가족들의 진정서를 받은 지 1년 만에 결론을 내렸으니 그리 늦은 결정이라 할 수 없다. 안타까운 건 세 선교사의 가족들이 유엔에 진정서를 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억류 선교사 가족들은 문재인 정부 때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정상회담이 성사되자 북한에 억류된 선교사가 송환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그래서 북한을 향해 일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거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세 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을 가지면서도 이 문제를 공식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북관계가 호전되는 분위기에서 가족들이 생사만이라도 알려달라는 애타게 호소마저 철저히 외면했다. 결과적으로 정부를 믿고 기다린 가족들만 그 숱한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게 된 것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문제를 지적했다. 권 위원장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유엔인권이사회 WGAD의 '자의적 구금' 판단에 대해 "억류자 문제 해결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토록 오랜 시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근본 원인을 민주당이 북한과의 관계를 이유로 이 문제를 외면했고, 남북 회담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부분을 꼬집었다. 

그런데 이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관계개선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켜놓고도 억류 국민 송환문제는 뒷전이었으니 책임 소재에 있어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에 잘못이 있다는 게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 정부가 억류 국민 송환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않는 건 아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018년 4월과 같은 해 5월 두 차례 송환을 요청했었다. 다만 6·1 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이 "억류자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 이후 그 후속 조치가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고 결국 정상회담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사람이 먼저다"라며 걸핏하면 인권을 내세웠다. 그런데 북한에 '소대가리'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연신 굽실거린 게 국민 생명 보호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통치 철학인 '평화 쇼' 때문이었다는 게 문제다. 이마저도 미·북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임기 말까지 '종전선언'을 통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즉 '가짜 평화'에 집착했으니 국민의 생환 문제가 안중에 있었겠나.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는 통치자의 최우선 순위에 속한다. 그런데 소위 '골든 타임'을 놓치는 바람에 10여 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거다.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마땅한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 해결에 유엔 인권이사회까지 나선 형국이니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 무거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북한이 우리 국민을 10년 넘게 강제로 억류하고 있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공식 입증된 이상 북한은 지체없이 세 선교사를 석방해 가족 품을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탄핵 정국 장기화로 무작정 손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북한과 다각도로 접촉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송환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북한이 순순히 응할 리 없겠지만 반응이 올 때까지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는 게 중요하다. 북한도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려는 게 아니라면 이 문제를 반드시 풀고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