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확산된 대통령 탄핵 반대 '시국 선언'이 각 신학대로 번진 가운데 일부 신학대가 신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고의로 방해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를 둘러싸고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은 지난 12일 오후 교문 밖에서 탄핵 반대 '시국 선언' 집회를 열었다. 그런데 앞서 집회 참여 의사를 밝힌 학생들의 명단이 특정 교수에 의해 교수 단체 채팅창에 게시되고 해당 교수가 집회 참석 학생에 대해 징계 가능성까지 언급한 사실이 드러나 말썽이다.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자 학교 측이 적극 해명에 나선 모습이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탄핵 반대 집회와 관련해 교수가 학생들의 징계를 거론하며 협박성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으나 그 과정에서 도리어 이중적이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학교 측은 최근 발표한 입장문에서 "본교는 학문의 자유와 신앙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존중하며, 학교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학교 안에서 탄핵 찬성이나 반대 집회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하고 학생을 지도해 왔다"라고 밝혔다. '학교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교내 탄핵 반대 집회를 허락하지 않은 이유라는 거다.
이어 "심각한 대립과 분열이 일어나는 탄핵정국에서 학교 정문 밖 외부 공간에서 갖는 집회이지만 학생들이 평안한 집회를 갖고, 타 대학에서 일어난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책임이 있어, 보직교수가 교수 단톡방에 집회 사실을 알리고 당일 학생 지도를 당부한 것"이라며 해당 교수를 감쌌다.
그런데 해명성 입장문이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꼴이 됐다. 이 대학 김철홍 교수는 "'학교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학교 안에서 탄핵 찬성이나 반대 집회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학교 측 입장에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장신대 교수평의회가 지난해 12월 13일에 윤 대통령을 즉각 탄핵하라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느냐는 거다.
당시 장신대 교수 65명은 '장신대 교수평의회 일동' 명의로 발표한 시국선언문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즉각적인 탄핵과 직무 정지를 요구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이것이 학교 측이 말하는 "학교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부합한 행동이냐고 따졌다. 결국, 학교가 정한 원칙을 학생에게는 추상과 같이 지킬 것을 요구하면서 교수들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건 '내로남불'이 아니냐는 거다.
장신대 김운용 총장은 지난해 12월 학교 홈페이지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이 또한 학교 측 입장문에서 밝힌 원칙에 비추어 볼 때 '학교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한 원칙을 위반한 게 된다.
학교 측이 학생들의 탄핵 반대 '시국 선언' 집회에 학교 '로고'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을 놓고도 시끄럽다. 장신대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외부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탄핵 반대) 학생들에게 학교 '로고'를 사용하지 말도록 지시했다는 건데 교수들과 심지어 총장까지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 입장을 선언한 마당에 무슨 정치적 오해를 피한다는 것인지 쉬 납득이 안 된다.
지난해 12월 장신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장로회신학대학교 재학생·졸업생 시국선언문'이 올라왔다. 여기에 첨부된 사진엔 장신대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깃발에 "윤석열을 탄핵하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탄핵에 찬성하는 이들은 '로고'와 학교 이름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데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이 사용해선 안 된다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조치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선 지난 7일 학생들이 대학원 게시판에 부착했던 대자보가 또다시 학교 직원에 의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감신대 정상화를 위한 복음주의 학생연합' 소속의 학생들이 윤 대통령 탄핵 반대 및 학내 좌경화를 우려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자 대학원 교무처 직원들이 이를 곧바로 뗀 것이다.
이날 학생들이 게시한 대자보는 지난 2월 13일 같은 학생들이 학교 게시판에 붙였다가 2시간 만에 학교 측에 의해 떼어진 대자보와 동일한 내용이다. 같은 내용의 게시물이 학교 측에 의해 두 번이나 연속해 훼손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학생들은 이를 부당한 인권 침해로 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등 공식적인 문제 제기에 나설 방침이다.
감신대 측이 학생들의 대자보를 고의로 뗀 유일한 근거는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데 있다. 즉 사전검열을 받지 않고 부착한 게시물은 다 불법이니 함부로 떼도 괜찮다는 논리다. 그런데 대자보란 학내에서 누구라도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는 일종의 소통 창구다. 이를 특정 행사를 알리는 공고문이나 홍보성 포스터와 같이 취급하는 건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과거 조선시대에도 '신문고'를 두어 신분 성별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했다. 만약 무슨 말을 하든 관청에 허가받고 하도록 했으면 이런 제도를 시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군부 독재시대를 연상케 하는 사전검열이 신학대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자체가 전근대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부 신학대에서 탄핵 반대 의견을 드러낸 학생들을 중심으로 여진이 계속되는 건 겉으로 드러난 현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보인다. 학생들의 신앙적 결단에 따른 자유의사 표명을 신학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마치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양 하잖게 취급하는 건 단순히 신학교 학내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닐 것이다. 미래 한국교회 미래에 닥칠 불행을 그대로 방치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