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지난 3월 5일 수요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기해 올해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의 전통은 부활절 전 40일간의 금식 기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AD 325년 니케아 정경(The Canons of Nicaea in 325 AD)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종교학자들은 이 전통이 부활절을 위해 특별한 영적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전통이 비록 성경에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복음의 확실성을 믿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 없이는 복음을 논할 수 없기에 우리는 특별히 시간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특히 십자가의 도를 가슴에 깊이 새기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D. Martyn Lloyd-Jones,1899-1981) 목사님은 갈 6:14절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서 “많은 일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일어나지만, 기독교와 정반대되는 헛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첫 번째 일은 어떤 것이 참된 메시지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전하고 십자가상에서 죽임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전파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기독교 메시지의 진수입니다.” 라고 설교합니다.

한편 에이든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 목사님은 그의 책 “이것이 예배다”에서 “그러므로 나는 십자가 속죄의 보혈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 에서는 단 한 시간도머물고 싶지 않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속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 에서는 ‘가인의 예배’가드려질 수밖에 없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20세기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이 설교가들의 공통점은 “십자가.” 그것만이 기독교가 전해야 할 전부라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분쟁을 안타까워하며 쓴 고린도 전서 전반부에 보면 사도바울이 그들에게 전하려 했던 핵심은 바로 십자가의 도였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이 십자가의 도를 찬양으로 잘 표현한 곡 중 하나는 조성은 작곡가가 쓴 “십자가” 라는 안템입니다. 그녀는 ‘치욕의 십자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이 곡을 만들게 됐다’고 이야기 합니다. 전반부 고통과 수난의 길,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길을 아무 말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표현할 때는 단조를 사용하여 특유의 어둡고 호소력이 있는 모습으로 선율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길, 무거운 발걸음은 리듬을 통해 연속해서 표현합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십자가 사랑의 뜨거운 감격을 장조로 변화시켜 짧게 표현하고는 간주에 멜로디를 통해 그 깊은 의미를 묵상하게 합니다. 이어 다시 고난의 길을 반복하여 단조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짧은 간주에 이어 승리. 영광의 십자가를 장조로 사용하여 환희를 드러내며 역설의 십자가를 표현하며 종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은 페니 크로스비 여사(Fanny J. Crosby, 1820-1915)가 가사를 쓰고 윌리엄 돈( William Howard Doane, 1832 - 1915) 이 작곡한 찬송가 “십자가로 가까이(Near the Cross)”의 후렴구를 첨가했습니다. 십자가의 영광은 낭만주의 시대 찬송가의 흔한 은유입니다. 이 땅의 고통 그리고 하늘의 기쁨이 함께 공존하는 십자가는 우리가 피난처와 위안을 얻기 위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궁극적으로 역설의 축복을 표현할 수 있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바로 알려면 고통의 십자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순종과 헌신을 보이기 이전에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원한다면 치욕의 십자가. 그 맛도 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을 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십자가를 바로 경험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2세기 말 3세기 초, 로마의 기독교 말살 정책으로 기독교인들을 향한 핍박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 로마의 한 관료가 황제에게 보낸 편지 한 편을 소개합니다. 이 편지 속에는 디오그네투스라는 황제의 보좌관에게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존재인지 상세히 보고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마치 그들은 지나는 사람들처럼 살고 있다. 그들은 시민으로서 그들의 역할을 다하지만 마치 외국인들처럼 고난을 겪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박해한다. 그들은 가난 속에서 살지만 많은 사람들을 부요하게 한다. 그들은 불명예를 당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는 영광이다. 치욕을 당하면 축복으로 대답하고 모욕을 당해도 변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모든 선행의 대가로 그들은 마치 범죄자처럼 처벌을 받는다.” 이처럼 당시 기독교인들은 분명 십자가의 참된 진리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세상에서 십자가의 도를 선명하게 그리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번 사순절을 시작하며 이 기간에 우리가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면 비통한 가운데 계신 하나님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욕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면 또한 그분의 변화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는 바른 십자가의 도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