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7일 아침, 남가주 하늘에는 낯선 구름이 잔뜩 떠 있었습니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먹구름이 파란 하늘 사이에서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또 산타모니카 쪽에서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짙은 회색빛 구름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그저 이례적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던 구름은 퍼시픽 팰리세이즈(Pacific Palisades)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연기였음을 나중에야 알게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불이 때마침 불어닥친 강풍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습니다. 불길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람에 이리저리 날린 불씨가 산과 들을 태우더니 나중에는 학교와 교회, 집과 가게마저 집어삼켰습니다. 불이 시작된 지 사나흘이 지나도록 진화율은 0%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산불은 패서디나/알타데나, 스튜디오 시티/할리우드 힐스, 실마, 웨스트 LA 지역으로 번지면서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을 피해 피난길에 나섰고, 집주인들이 떠난 자리에는 화재로 전소된 집들의 처참한 모습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뉴스에 의하면 강제 대피령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18만 명이라고 합니다. 단전 조치를 당한 사람들은 불편하다는 말도 못 하고 추위와 불안에 떨면서 며칠을 지내야 했습니다. 불에 탄 건물이 처음에는 수천 채라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수가 점점 늘어 지금은 만 채 이상이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화재가 시작된 퍼시픽 팰리세이즈는 말리부와 산타모니카 사이에 있으면서,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형성된 아름다운 타운입니다. 1921년 ‘감리교 남가주 연회(Southern Annual Conference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의 지도자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퍼시픽 펠리세이즈 지역의 땅을 구입하여 새로운 타운을 개척하기로 했습니다. 타운이 생긴 후에 교회가 들어서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인데, 이 지역은 교회가 먼저 생기고 나중에 타운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감리교 지도자들은 자연과 신앙, 예술과 교육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이상적인 커뮤니티를 꿈꾸며 이 지역을 설계하면서 교회와 학교를 세었습니다. 교회와 학교 주변으로 집들이 들어서면서 타운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지역이 감리교회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도로 이름에 나타납니다.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중심 도로인 ‘선셋 길’과 ‘비아 데 라 파즈(Via De La Paz)’ 동북쪽에 있는 여러 도로의 이름은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Albright, Bashford, Carey, Drummond, Embury, Fiske, Galloway, Hartzell, Iliff, Kagawa’ 등의 도로 이름은 모두 감리교 목사 혹은 선교사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Albright St.은 ‘제이컵 올브라이트(Jacob Albright)’ 감독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독일계 미국인이었던 올브라이트 감독은 독일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운동을 했던 감리교 지도자였습니다. Kagawa St.은 일본에서 기독교 사회운동을 이끌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던 감리교 선교사 ‘카가와 토요히코(Kagawa Toyohiko)’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렇게 100여 년 전에 감리교에 의해서 만들어진 퍼시픽 팰리세이즈가 이번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화재로 소중한 사람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퍼시픽 팰리세이즈 타운을 개발한 ‘커뮤니티 연합감리교회(Community UMC of Pacific Palisades)’가 있는 길의 이름은 ‘Via De La Paz’입니다. 그 뜻은 ‘평화에 이르는 길’입니다.
‘평화에 이르는 길' 위에 우뚝 서 있어야 할 교회가 이번 화재로 사라졌습니다. 비록, 교회는 불에 타 없어졌고, 감리교 목사와 선교사들의 이름을 딴 길가의 집들도 모두 불에 타버렸지만, 불에 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초창기 감리교 지도자들이 가졌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과 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화재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 하길 바라며, 잿더미 속에서도 꿈과 희망의 씨가 피어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