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루케이도 목사. ⓒ토마스 넬슨
맥스 루케이도 목사. ⓒ토마스 넬슨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맥스 루케이도 목사의 기고글인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준비하라'(Be ready when Jesus comes again)를 8일 개제했다. 

루케이도 목사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오크힐스 교회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모든 사람이 아기 예수님을 사랑한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누운 아기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매년 12월이면 우리는 이 장면을 잔디밭이나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재현한다. 가게에서는 플라스틱 당나귀와 나무로 만든 구유를 팔고, 사람들은 손으로 조각한 마리아, 요셉,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수집하곤 한다. 

우리는 구유 속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우리는 또한 온유한 메시아 그리스도를 좋아한다.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양들이 그의 곁에 모이고, 요한이 그의 가슴에 기대며, 마리아가 그의 발에 향유를 붓는 모습들. 현명한 조언을 하고, 군중을 먹이고, 결혼식에서 포도주를 채우는 상냥한 랍비의 모습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구유 속 그리스도의 모습은 어떨까? 멋지다. 자비로운 그리스도의 모습은? 기쁘다. 하지만 다가올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라면, 하늘에서 말 타고 우렁차게 내려오는 모습이라면, 적들의 왕관으로 관을 쓰고, 자신의 자녀들을 해치는 자들을 멸망시키러 오시는 모습은 어떻겠는가? 

세상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덜 익숙하다. 하지만 곧 세상은 이러한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성경에서 300번 이상 언급되며, 평균적으로 25절에 한 번씩 등장한다. 성경은 재림에 대한 소식을 강물이 넘쳐 흐르듯 이야기한다. 

절망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오리라" (요한복음 14:3)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사도행전 1:11).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대해 언급했고 (디모데전서 6:14) 베드로는 주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언했으며 (베드로후서 3:10), 유다는 "수많은 거룩한 자들과 함께 주님이 오실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유다서 14절). 

우리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하나님의 성육신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라는 아름다운 절정으로 이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 아기로서 다시 오셔서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기다려야 하지만,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왕의 도착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 경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이는 마치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무명용사의 묘를 지키는 경비병들과도 같다. 

그곳에서 경비를 서는 남성과 여성들은 비할 데 없는 충성을 보여준다. 그들은 유니폼을 준비하는 데 8시간을 할애한다. 장갑은 소총의 그립감을 높이기 위해 젖은 상태로 착용된다. 신발 안에는 뒤꿈치가 딱딱하게 클릭하는 소리를 내기 위한 장치가 부착된다. 

경비병은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스물한 걸음을 걸은 뒤 21초 동안 멈춘다. 그 후, 소총을 반대쪽 어깨로 옮기고 다시 걸음을 걷는다. 이 과정을 교대 때까지 반복한다. 여름에는 30분, 겨울에는 60분 간격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8월의 더위와 1월의 추위 속에서도, 심지어 묘지가 폐쇄된 밤에도 그들의 임무는 멈추지 않는다. 2003년 허리케인 이사벨이 지나갔을 때에도 경비병들은 결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바람이 몰아치고 나무가 쓰러졌지만, 그들은 경비를 계속했다. 1921년 이후로 매일, 매년 이러한 경계가 유지되어 왔다. 놀랍지 않은가? 

한 가지 질문을 생각해보면 이들이 죽은 무명 용사들을 기리며 보여주는 충성을 우리가 살아 계시고 다시 오실 왕을 위해 보여줄 수는 없을까? 이 병사들이 희생을 기리며 경비를 서는 것처럼, 우리가 가장 큰 희생을 치르신 왕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을까? 

우리는 그의 부대의 일원이며, 그의 군대에 입대된 병사들이다. 언젠가 그와 함께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그를 위해 봉사할 수는 없을까?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다. 오늘 당신의 왕을 기리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어떤 잘못을 용서할 수 있을까? 어떤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까? 어떤 선물을 드릴 수 있을까? 어떤 훈련을 시작할 수 있을까? 어떤 희생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랑의 행동을 보일 수 있을까? 

우리가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부름받은 사람 답게 행동하길 바란다. 만왕의 왕이 이끄는 군대의 병사들처럼 말이다. 구유 속 그리스도는 이제 왕관을 쓰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곧 오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