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지난 2일 "불법적인 WEA 서울총회 개최 시도 당장 중단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세 차례에 걸쳐 반대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한교연까지 반대 대열에 가세하면서, 한국교회 내 WEA 총회 반대 여론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교연은 성명에서 내년 WEA 서울총회가 불가한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그 핵심이 "WEA 총회를 유치할 자격이 없는 서울의 대형교회가 WEA의 복음주의 정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는 WEA 고위인사들과 모의해 총회 개최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 

내년에 WEA 서울총회를 개최하겠다고 나선 건 예장 합동측 소속의 사랑의교회와 오정현 목사다. 그런데 사랑의교회나 오 목사에겐 WEA 멤버십이 없다. 정회원도 아닌 일개 교회와 개인이 세계복음주의연맹 총회를 유치한다는 건 법 상식에도 어긋난다. 

내년에 WEA 총회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알음알음 소문으로 떠돌다 지난달 15일 조직위 출범식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교계에 확인됐다. 그런데 취재에 의하면 WEA 내부 인사들이 지난해부터 수차례 한국을 드나들며 대형교회들과 접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의사를 타진했다가 거절당하자 그 다음 찾아간 곳이 사랑의교회였던 셈이다. 

사실 한기총은 지난 2009년 6월에 WEA 정회원으로 가입한 후 그 이듬해인 2010년에 WEA 총회를 한국으로 유치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금권선거 문제로 지난 2012년 한교연과 나누어지면서 모든 게 무산되고 말했다. 그런 배경으로 볼 때 WEA 고위인사들이 유관 기관인 한기총이나 한교연과 이 문제를 상의하지 않고 처음부터 대형교회를 타겟으로 삼은 목적에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현 시점에서 국내에서 WEA 총회가 개최되는 것이 부적절해 보이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내용 말고도 차고 넘친다. 먼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WEA에 대한 국내 보수권의 부정적인 여론일 것이다. 

WEA는 급진적인 WCC 운동을 우려한 세계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결정한 기구다. 신학적으로 '에큐메니칼'(Ecumenical)을 지향하는 WCC에 맞서 '에반젤리칼'(Evangelical)을 지향한다. 그런데 지금 WEA가 '에반젤리칼'에 기반한 복음주의 기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WEA의 기본 정체성과 추구해 온 방향성의 문제라기보다 현재 WEA를 쥐락펴락하는 일부 인사들의 드러난 일탈 행위 때문일 것이다. 

법적으로 WEA를 대표하는 사람이 국제이사회 굿윌 샤나 의장이다. 이 사람은 오래전부터 한국교회가 경계하는 '신사도운동' 관련 의혹을 한몸에 받고 있다. 직전 사무총장인 슈마허는 신학적 배경이 모호한 데다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 논란으로 얼마 전 사임했다. WEA 총회 유치를 목적으로 국내 대형교회 목회자와 여러 번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전직 사무총장도 로마 교황청에 찾아가 교황 앞에 머리를 조아렸던 인사다. 이처럼 여러 가지 문제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WEA 전직 사무총장 등이 여전히 WEA 실권자 행세를 하며 은밀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사랑교회 측이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선의로 총회 개최를 수락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책임을 면키는 어려워 보인다. WEA 관련 인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사랑의교회와 오 목사가 속한 예장 합동 총회에서 이미 크게 문제가 됐던 사안이다. 교회 측이 얼마 전 WEA 의장 샤나를 강단에 세우려다가 갑자기 취소한 것도 이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WEA 관련 인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그 실체를 알고도 이 일을 추진했다면 더 큰 문제다. 이는 한기총과 한교연 등 연합기관과 소속 교단이 우려한 대로 한국교회 보수권이 분열과 반목으로 큰 상처를 입더라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일설에 의하면 오 목사를 비롯한 몇몇 교계 인사들이 지난달 22일 국가조찬기도회 직후에 WEA 총회 준비를 위한 모종의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있다. 지난 인천 로잔대회 때처럼 국제적인 행사에 정부로부터 국고지원을 받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교계에 파다한 설이 사실이라면 한국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움에 봉착한 윤석열 정부를 돕기는커녕 더욱 곤경에 빠트리는 일이 될 수 있다. 로잔대회가 끝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기독교계가 또다시 정부에 수십억 원의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는 건 국민 감정에도 부합하지 않다. 위기에 처한 윤 정부를 생각해서라도 즉각 철회하는 게 도리다. 

한교연은 성명에서 WEA의 위상에 먹칠을 한 인사들을 향해 "WEA라는 이름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하루속히 WEA를 자진해서 떠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노력으로 실추된 WEA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이 총회보다 급선무"라며 WEA 일부 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을 선결과제로 제시했다. 

이 모든 정황을 고려할 때 지금은 대형교회와 몇몇 교계 인사들이 나서 WEA 총회를 개최할 시점이 아니다. 복음적인 연합기관을 회원으로 인정하는 규약과 정신을 깨면서까지 자격이 없는 개교회와 손잡고 굳이 총회를 개최하려는 WEA 최고위층 인사들의 목적이 오로지 "돈"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들이 한국교회 연합기관과 교단, 신학교 등의 잇단 경고를 다 무시하고 불법적인 총회 개최를 계속 추진한다면 한국교회에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게 될 것이고, WEA를 복음적인 노선으로 원상회복할 기회마저 놓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