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왔던 곳에 다시 들어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바쁘게 나오느라 무엇인가 뒤에 두고 온 것입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때에 꼭 필요한 것들을 두고 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전화나 자동차 열쇠 같은 것입니다. 혹 오는 세월 저 앞에서 침해가 찾아 오는 것은 아닌가 때 이른 염려를 해 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니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거나 일하기가 점점 어려워 집니다. 바빠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해 왔는데, 이제는 한 가지씩 차근차근 해야 하는 때가 오는 모양입니다.

본래 다중 작업을 의미하는 멀티테스킹(multi tasking)이란 컴퓨터 산업에서 시작하여 빠르게 전문화, 표준화되어 갔습니다. 기술의 변화는 언제나 생활의 변화를 이끌듯, 이 역시 사람들의 작업과 생활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빠른 현대 사회에서 필수 불가결했습니다. 공부하며 음악을 듣는 원시적인 multi tasking에서부터 동시에 두 채널의 영화를 보는 것, 컴퓨터 창을 여러 개 띄어 놓고 여러 가지의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 그리고 간단한 조작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동시에 일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많이 발전해왔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 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처리 하고 싶은 마음과 산업 사회의 속도 문화가 점점 더 발전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multi tasking은 시간 절약, 일의 효율성, 나아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걱정입니다. 사람의 작업 능력을 배가 시켜주고, 그로 인해 여가를 늘리자고 시작한 것이 갈수록 사람을 더 많은 일의 노예로 만드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갈수록 더 많은 일을 한꺼번에 소화하기를 원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요즘 메스컴마다 로봇이나 인공 지능을 가진 제품을 설명하는 일이 많은데, 기계가 지능화 되면서 인간은 점점 기계화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편리하다는 명분 때문에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뭔가 시도하지 않으면 더 이상 제어 할 수 없을 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하나씩 두고 나오는 일이 잦다는 것은 멀티 테스킹 환경에 대한 인간 본연의 반란입니다. 몸이 아프다는 것도 알고 보면 병이기 보다는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먹지 않아야 할 것을 먹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고이듯, 뒤에 무엇인가 흘리고 사는 것은, 사람이 더 이상 넘어서서는 안 되는 길을 향해 가려는 움직임에 대한 조용한 경고입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만 해도 되었던 이전 사람들에 비해, 하루에 여러 가지, 아니 한 시간에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우리네 삶의 정황, 그래서 점점 비인간화되는 상황에 대한 무의식적 슬픔입니다.

두고 오는 물건을 집어 들며 다짐해봅니다. 땅을 보고 사느라 바빠진 것이기에, 하늘을 보고 살겠다고, 그리고 의도적으로 조금 천천히 걸어가겠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