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 정신문화 강력 존재감
유력 사업가·정치가, 연예계 등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향력 미쳐
무당들 상담과 치료행위 직관적
혼령 힘 빌어, 정신과 육체 치유
체계성 없어 고등종교 발전 못해
한국인과 무속: 무속이 한국인의 정신문화 속에서 발휘하는 막강한 영향력
한국인의 삶에 가장 깊은 영향을 주는 '전통' 종교는 무엇일까? 이 물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교와 선불교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한다. 바로 '무속'이다. 기간으로만 따지자면 무속이 유교, 불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일찍 이 땅에 자리잡았다.
유교는 주전 200년경 위만의 무리를 비롯한 진나라 유민들이 고조선으로 들어오면서 한자와 함께 처음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고, 불교는 주후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당시 중국 승려에 의해 불상, 불경이 전해지면서 한반도에 퍼지기 시작했다. 반면 무속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한반도 내부에서 자생하여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까지 국교의 위치를 차지했던 불교, 그리고 조선의 국교였던 유교 입장에서 본다면 무속은 괴력난신을 믿는 미개한 미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교육기관도, 의료기관도, 그리고 언론매체도 없던 시절 무당들은 실질적으로 각 향촌의 운명을 일러주는 카운셀러이자 병을 치료해주는 의사의 역할을 맡았다.
무당들의 카운셀링과 치료 행위는 매우 직관적이었다. 그들은 무슨 심오한 도(道)나 철학적 이론을 가르치지 않았다. 무당들은 단지 혼령의 힘을 빌어 점을 치고 귀신의 괴롭힘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정신과 육체를 치유하는 능력을 보였다.
이들의 점술과 치유활동이 진정으로 효력이 있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도무지 의지할 곳 없는 상태로 큰 어려움에 처하거나 병이 든 전근대 한반도 뭇 백성들에게 샤먼, 즉 무당이란 그야말로 삶의 마지막 희망, 최후의 보루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만 무속은 체계성이 없어, 고등종교로 발전할 수 없었다. 샤먼들은 신접하고 점치며 치유하는 방식이 제각각이었고, 효력 또한 들쭉날쭉했다. 오죽하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생겨났을까.
어쨌든 무속은 뭇 한국인들의 정신문화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전통종교 가운데 하나였고, 양자역학이나 뇌신경과학,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조차 꽤 많은 수의 한국인들에게 삶의 지침과 위로를 제공하고 있다.
서민이나 교육 수준이 낮은 이들만 무당을 찾는 것도 아니다. 무당에게 점을 보는 이들 가운데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 각자의 영역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선 주자나 국회의원 후보들의 상당수는 선거 전 무당에게 당선 여부를 묻는다. 사업가들 중에도 어떻게 사업을 진행해야 큰 재물을 얻을 수 있는지 무당에게 묻는 이들이 많다.
일례로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어도어의 전 대표이사 민희진 프로듀서 같은 경우, 하이브로부터 자신의 사업체를 떼내기 위해 무당에게 문의한 뒤 행동방향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무당에게 사업의 앞날을 묻는 전 어도어 대표 민희진의 대화 기록.
귀신이 영적 문제 원인이란 믿음
비과학 다양한 무당들 증언 일치
무조건 미신 치부할 수만은 없어
가톨릭 구마사제 직책 활용 대응
기독교는 명확한 대답 못 내놓아
무속인들조차 무시, 무력한 모습
한국인과 귀신: 귀신 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무속과 손을 놓은 개신교
지난 7월 11일 티빙이 공개한 <샤먼: 귀신전>은 실제 귀신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이들이 무당을 찾아가 해결책을 구하는 사례들을 추적해 보도한 탐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아직까지 많은 한국인들이 영혼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당에게 의존하는 실정이 면밀하게 그려진다.
이 프로그램 속에 그려지는 무당들의 역할은 과거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신접한 이가 영적인 고민거리를 안고 찾아온 이를 위해 점을 치거나 굿판을 열어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무당들이 내놓는 진단이나 대책이 다 제각각인데다가 과학적 근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술로 귀결된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무당들의 증언 가운데는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죽은 자의 영혼, 즉 귀신이 영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믿음이다.
한국 기독교계는 개화기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큰 규모로 민족의 복음화를 달성했다. 기독교적 시각으로 볼 때 무속은 신접한 자에게 운명을 묻고 병고침을 구하는 이교적 풍습으로 인간의 영혼을 저주와 멸망으로 이끄는 악하고 부정적인 행위이다. 그래서 초기 한국선교 당시 기록이나 간증을 살펴보면, 기독교 사역자들과 무당 혹은 무속에 의존하는 이들 사이 의견충돌이 발생하는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 산업화로 인해 무속의 힘은 과거 조선시대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 여기에는 독실한 기독교인 독립운동가였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무속타파 운동의 영향도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농촌 근대화 및 계몽운동이었던 새마을 운동 영향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속의 영향력은 여전하게 살아남아 오늘날 향촌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 심지어는 온라인과 모바일 네트워크 속에서도 무당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계는 아직 귀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무속처럼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 기독교계뿐 아니라 서구 기독교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귀신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에 속한 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구체적 정체에 대해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기대어 몇 가지 추론을 제시할 뿐이다.
그에 비해 무속인들은 아주 직관적이고 단정적인 어조로 귀신을 죽은 자의 영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대중적 설득력 측면에서 보면 직관적이고 단정적인 무속의 주장이 이론적이고 신중한 기독교계의 주장보다 훨씬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꽤 많은 수의 무당들이 경험한 귀신들의 특징 가운데는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귀신의 특성과 일치하는 내용들이 존재한다.
▲무속인들은 아주 직관적이고 단정적인 어조로 귀신을 죽은 자의 영혼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귀신이 신접한 자들에게 죽은 사람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삼상 28:6-25), 귀신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신질환을 일으킨다는 것(눅 8:26-39), 그리고 귀신들린 이들은 심한 병을 앓을 수 있다는 것(눅 13:10-13)과 같은 내용은 무당들의 증언과 성경의 가르침이 일치하고 있다.
무당들이 말하는 귀신의 특성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와 몇 가지 일치한다 해서, 귀신이 죽은 자의 영혼이라는 무당들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 기독교인들이 주지해야 할 점은 무당들의 영적 경험을 무조건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경험한 바를 성경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하고 귀신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 보다 온전한 기독교적 해결책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구마사제라는 직책을 유지함으로써(이 방법이 옳든 옳지 않든 간에) 그나마 나름의 방식으로 초대교회의 모범에 따라 귀신 문제에 대응하려 노력하고 있다. 반면 개신교회는 사실상 귀신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의 문제에 대해 거의 손을 놓은 모습이다.
심지어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귀신으로 인한 문제를 순전히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보는 무신론자 혹은 과학주의자들의 입장에 동조하기도 한다. 이는 아직 근대 과학주의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19세기 후반 주로 미국인 선교사들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배우고 받아들인 한국 기독교계의 태생적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사정들 때문에 현재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귀신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재현할 의지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유독 귀신에 결부된 영적인 문제에 대해 무속인들에게조차 무시당할 정도로 무지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 있다.
▲<샤먼: 귀신전>의 프리젠터(다큐멘터리 진행자) 역할은 배우 유지태와 옥자연이 맡았다. 유지태는 독실한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영적 현상에 관심이 있어 해당 역할을 맡게 됐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